1959년 9월 17일,
태풍 사라호 참사(사망-실종 924명, 수재민 98만5천명)
대한민국 사상 최강, 최악의 태풍 사라호가 추석 당일인 1959년 9월 17일 새벽부터 당일 밤 12시까지 전남-경남 지역은 물론, 중부내륙지역을 강타했다.
사라호 태풍은 9월 12일 괌 섬의 서쪽 해상에서 발생하였으며 9월 15일 오후 3시경 일본 오키나와 현의 미야코 섬 남동쪽 약 100 km 부근 해상에 이르러서는 중심기압 905 hPa, 최대풍속은 10분 평균으로 70 m/s, 1분 평균으로는 85 m/s 에 달하는 슈퍼태풍 급 태풍이 되었다. 그 후 조금씩 진행 방향을 북북서로 바꾸어 16일 새벽에는 동중국해에 진입, 동시에 전향을 시작하여 한반도를 향해 북상했다.
태풍이 북상하면서 다소 동쪽으로 치우침에 따라 부산 부근을 통과하는 경로가 되어, 한반도의 대부분이 태풍의 가항반원에 들어가 최악의 상황은 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중심기압 945 hPa 의 강력한 세력으로 한반도에 접근한 태풍 사라의 위력은 한반도에 영향을 미쳤던 과거의 다른 태풍에 비해 월등한 것으로, 상륙을 하지 않았음에도 남부 지방에서는 전례 없는 폭풍우가 내렸다.
한반도가 태풍의 직접적인 영향권에 놓였던 시간은 10시간 남짓에 불과했지만, 이 태풍으로 924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고, 98만 5천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건물 121,037동과 선박 9,329이 피해를 입었고, 경작지 216,325 정보가 침수됐다. 사라호 피해는 그전까지 최고의 홍수피해로 기록된 이른바 ‘을축년 대수해’(647명 사망-실종)보다 규모가 훨씬 더 컸다.
당시의 기상 예보는 거의 초보적인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을 뿐 만 아니라 라디오 보급률마저 낮아 기상예보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중앙관상대가 그 전날까지도 “이번 태풍은 대륙까지는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며 17일에는 대체로 날씨가 갤 것”이라고 예보, 국민들을 무방비 상태에 빠뜨린 것도 피해가 커진 원인 중 하나였다.
사라(Sarah)는 아브라함의 아내 이름이라고 한다. 1978년 이전에는 태풍 이름을 악명 높았던 여자의 이름으로 했다가 이후 남녀평등의식이 강해지면서 남녀의 이름을 번갈아 부쳤다. 2000년부터는 태풍의 영향을 받는 14개 국가에서 각각 10개씩 제출한 140개의 이름을 28개씩 5개조로 나누어 국가별 알파벳 순서에 따라 부쳐지고 있다.
1959년 밴플리트장군 부산 태풍 사라호 피해 시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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