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9월/9월 17일

미스아메리카 최초로 흑인여성 선발

산풀내음 2016. 8. 21. 12:45

19839 17,

미스아메리카 최초로 흑인여성 선발

 

미국의 미인대회에 있어 재능, 두뇌, 미모 등에 중점을 두는 미스 아메리카에 사상최초로 1983 9 17일 흑인여성이 선발됐다. 이날 미스 아메리카에 선발된 바네사 윌리엄스(Vanessa Lynn Williams)는 스페인계의 혼혈흑인으로 시라큐스대에서 음악과 춤을 전공하는 20세의 학생이며 키 168cm에 균형 잡힌 몸매를 지니고 있었다.


 

1921년 시작 당시에는 미스아메리카에 흑인이 참가할 수 없었지만 1950년대 후반부터 참가가 허용되었고 이제까지 최고성적은 1980년의 5위였다. 이날 대회에는 2위 선발자도 흑인이었다. 이로써 흑인도 아름다움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대회가 됐다.

 

바네사 윌리엄스는 1963 3월 뉴욕에서 태어났으며 부모가 모두 음악학위를 가진뮤직 패밀리출신으로 유년기부터 피아노, 바이올린, 플루트 등 다양한 악기를 다루었으며, 목소리 또한 빼어났다.

1981년 시라쿠스(Syracuse) 대학 연극예술학과에 진학하여 뮤지컬 배우로서의 꿈을 구체화시켜 나가던 중, 완벽한 얼굴과 몸매 덕에 그녀는 결국미스 뉴욕을 거쳐 역사상 최초의 흑인미스 아메리카에 오르는 영광을 맞이한다.

 

그러나 영광도 잠시 윌리엄스가 대회 출전 전 찍었던 누드 사진이 성인 잡지 펜트하우스에 실리며 미스 아메리카로서의 품위를 해쳤다는 이유로 1984 7 21일 미스아메리카 조직위원회로부터 자격 박탈을 통보 받았다. 1983 9월 미스아메리카에 뽑힌 뒤 10개월 만의 일이고 인종차별주의자들의 모욕적인 메일과 살해 협박에도 의연했던 그는 사흘 뒤 기자회견에서 ‘왕관’을 벗었다.

 

1982년 시라큐스대 2학년이던 윌리엄스는 사진작가 톰 치아펠의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일하던 중 그의 권유로 모델이 됐고 누드 컷도 찍게 된다. 그녀가 유명해지자 작가가 동의도 안 받고 사진들을 판 거였다. 첫 제안은플레이보이가 받았다. 발행인 휴 헤프너는관심이 컸지만 권리 문제가 미심쩍었다. 우리는 제안을 거부했는데, 그녀가 최초의 흑인 미스 아메리카라는 사실도 감안했다고 훗날 인터뷰에서 말했다.

 

펜트하우스 9월호는 ‘Miss America, OH God! She’s Nude’ 라는 제목과 함께 문제의 사진을 실었다. 미국공영방송 PBS는 그 특별판으로 펜트하우스가 약 1,400만 달러를 벌었다고 추산했다. 펜트하우스는 이듬해 1월호에도 남은 사진들을 싣는다. 그 제목은, 비열하게도, ‘Oh God! I did it again’이었다.


 

바네사 윌리엄스의 누드를 게재한 펜트하우스 표지.

 

절망은 그러나 곧 전화위복의 기회로 다가온다. 다시 노래에 열정을 쏟아 펑키의 대부 조지 클린턴(George Clinton)의 백업 보컬로 참여, ‘Hey good looking’, ‘Do fries go with that shake?’와 같은 곡에서 가능성을 타진했다. 곡 자체는 인기를 얻지 못했지만 윌리엄스의 매력에 관심을 가진 윙 레코드(Wing Record)는 그녀에게 본격적인 가수로서의 길을 열어주게 된다.

 

그녀는 1987년 영화 ‘환상의 발라드’에 출연하면서 재기의 발동을 걸기 시작했고 이듬해인 1988년에 음반 ‘Right Stuff’를 발표한다. ‘어번 R&B’ 장르를 선보인 그녀는 이 앨범에 수록된 3곡을 빌보드 차트 10위권에 올리며 재기에 성공했다. 즉 첫 싱글인 ‘Dreaming’이 차트 정상을 밟았으며 ‘He’s got the look’, ‘Darling I’가 내리 인기를 얻었고, 연이은 인기행진으로 그 해 최우수신인 부문을 포함한 그래미상 3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는 광명을 맛본다. 덩달아 미국흑인지위향상협회(NAACP/National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Colored People)에서 이미지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91년 작 ‘The Comfort Zone’도 데뷔 앨범의 성공을 확대 재현했다. 수록곡인 발라드 곡 ‘Save the best for last’ 5주간 빌보드 1위를 차지하는 대박을 터뜨렸고, ‘Running back to you’ 등이 인기를 누리며 앨범 역시 더블 플래티넘(200만장)의 성공을 거둔다.

 

그리고 2015 9 13일 열린 ‘2016 미스 아메리카’에 심사위원으로 참석한 윌리엄스는 주최 측으로부터 사과를 받았다. 왕관을 내려 놓은 지 32년 만의 일이었다.

사건 이후 윌리엄스는 미스 아메리카 직위를 사임했지만 당시 조직위원회가 사퇴 압력을 행사했다는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이날 대회에서 샘 해스켈 미스 아메리카 조직위원장은 이례적으로 윌리엄스의 직위 박탈에 대해 깊이 사과했다.

 

해스켈은 “윌리엄스는 영광과 품위를 지키며 살아왔고 지난 1984 (누드 사진으로 인해) 미스 아메리카 사퇴를 강요 받은 당시에도 분명히 그러했다”며 “당시의 발언과 행동에 대해 사과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윌리엄스 당신은 영원한 미스 아메리카”라고 덧붙이며 사실상 복권을 선언했다.

 

그리고 그녀는 “성공이 가장 최고의 복수였다”는 윌리엄스의 발언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역사속에 오늘, 9월 > 9월 17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0) 2016.08.21
88 서울올림픽  (0) 2016.08.21
사라호태풍 참사  (0) 2016.08.21
광복군 창설  (0) 2016.0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