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10월/10월 15일

당시 동양최대의 소양강댐 준공

산풀내음 2016. 10. 5. 20:25

1973 10 15,

당시 동양최대의 소양강댐 준공

 

소양강댐은 경부고속도로(1970), 서울지하철 1호선(1974)과 함께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직접 챙긴 3대 국책사업 중에 하나였다. 총 사업비 321억 원이 투입된 소양강댐은 1967 4 1일 가배수로 터널공사를 시작으로 착공, 66개월 만인 1973 10 15일 준공됐다. 소양강댐 사업비 321억 원을 현재 화폐 가치로 환산하면 6600억 원의 수준이다. 1967년 댐 착공 당시 정부 예산은 1643억 원에 불과했다. 건설 당시 소양강댐은 동양 최대, 세계 4위에 해당하는 규모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댐의 시대를 열어젖혔다. 1965년 섬진강댐, 1970년 남강댐 다음 세번째 다목적댐인 소양강댐(1973)이 완공됐고 이후 안동댐(1977), 대청댐(1981), 충주댐(1986) 등 박정희 시대에 착공한 댐이 차례로 완공됐다. 당시 동양 최대의 다목적댐이자 사력댐이었던 소양강댐은 박정희 정권과 우리나라 댐의 자부심이었다.

 

소양강은 오대산 부근에서 발원해 남으로 흐르다가 춘천시 인근에서 북한강과 합류하는 총길이 166.2km의 강이다. 한강의 고질적인 홍수를 해결하고 부족한 용수와 전력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이 강을 통제할 필요가 있었는데 해결책은 다목적댐을 짓는 것이었다.


그 결과 1973 10 15, 6년 반 동안의 난공사 끝에 동양최대를 자랑하는 소양강댐이 준공됐다. 높이는 수풍댐보다 높은 123m였고 총 저수량은 화천, 춘천, 청평 등 한강수계 5개댐 저수용량의 거의 2배에 가까운 29t이었다. 유역면적은 2,703㎢이고, 만수 시 수면적 64.3㎢ 이다. 한국의 총 수력 발전용량 62KW 3분의1에 해당하는 20KW의 발전용량은 준공 후 바로 불어 닥친 오일쇼크 때 큰 도움이 됐다. 공사과정에서 37명이나 숨졌고 18000명의 주민들이 정든 고향을 떠나야 했다.

 

원래 설계는 콘크리트 중력식 댐으로 설계됐으나 공사를 맡은 현대 정주영 회장이 현장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흙과 모래·자갈 등을 활용해 만들자고 제안해 변경됐다. 당시 철근·시멘트 등 건설자재 생산능력 부족과 열악한 도로 사정에 따른 자재운송 문제, 비용 절감 등이 변경 사유였다. 시멘트에 비해 외부 충격에 강하다는 것도 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