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11월/11월 15일

북한 제1땅굴 발견

산풀내음 2016. 10. 15. 07:03

1974 11 15,

북한 제1땅굴 발견

 

197411 15일 오전 750분쯤 군사분계선 남측을 정례적으로 순찰하던 민경대원들이 경기 연천 고랑포(高浪浦) 북동쪽 8km 지점인 군사분계선 남방 약 1.2km 지점에서 지표의 공기구멍에서 증기가 새어 나오는 것을 발견, "온천이 나오는가 보다"고 농담을 하고 지나려는 것을 선임하사인 구정섭 중사가 월남전의 동굴작전에서 얻은 체험으로 이상이 있음을 직감 굴토작업을 시작했다.

 

대원들의 굴토작업이 시작되자 북한초소에서 약3분간 3백여 발의 기관총 사격을 가해왔으며 간헐적으로 1시간 15분 동안 교전이 벌어졌다. 이날 발견된 땅굴은 북한이 우리측 남방한계선을 향해 너비 90cm, 높이 1.2m, 길이 지하 45m, 길이 약 3.5km에 달하는 콘크리트 구조물로, 첫 조사를 했을 때 굴속에는 먹다 남은 밥과 국이 있었으며 터널 곳곳에서 폭발물들이 발견됐다.

 

전술능력은 1시간에 1개 연대의 무장병력이 통과할 수 있고, 궤도차를 이용하면 중화기와 포신(砲身)도 운반할 수 있다. 1974 1115일 땅굴 수색 중 북한의 방해 매설물로 인해 한·미군 장교 2명이 사망하고 6명이 부상당하였다.

 

발견 당시 유엔군사령부는 북한측에 땅굴현장을 공동조사하자고 제의하였으나 북한은 이를 거부하면서조작된 것이다”, “우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억지선전만 계속하였다. 그러나 땅굴 속에서 발견된 소련제 다이나마이트, 북한제 전화기, 북쪽에서 남쪽방향으로 작업진척 일정을 기록한 흔적 등이 북한에서 파 내려온 땅굴임을 분명히 입증해 주었다.


 

또한 제1땅굴이 7.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된 이후 발견됨으로써, 북한의 음흉한 남침야욕을 만천하에 폭로했으며, 23땅굴을 발견하는 기폭제가 됐다.

 

2땅굴은 1975 3 24일 강원도 철원 북쪽 13km 지점인 군사분계선 남방 900m지점에서 발견되었다. 너비 2.1m, 높이 2m, 깊이 지하 50~160m, 길이 약 3.5km에 달하는 암석층 굴진 아치형 구조물이다. 전술능력은 1시간에 약 3만 명의 병력과 야포 등 중화기가 통과할 수 있다.이 땅굴은 제 1땅굴보다 규모가 큰 것으로 철원 북방 13km지점 비무장지대 안에서 발견되었고, 땅굴 안에 병력을 집결시킬 수 있는 광장까지 갖추어 놓았다. 2땅굴 수색 중 북한군의 방해로 한국군 7명이 희생되었다.

 

3땅굴은 남한에 침투되었다가 자수한 간첩 김부성의 첩보를 받아 수색작업을 시작한 것으로 故 박정희대통령의 무조건 찾으라는 명령하에 전두환 사단장의 주도 하에 1978 10 17일 판문점 남쪽 4km 지점인 군사분계선 남방 435m 지점에서 발견했다. 너비 1.95m, 높이 2.1m, 깊이 지하 73m, 길이 약 1.6km에 달하는 암석층 굴진 아치형 구조물이다. 전술능력은 1시간에 3만 명의 병력과 야포 등 중화기를 통과시킬 수 있다.

 

4땅굴은 북한이 전 전선에 걸쳐 남침용 땅굴을 굴착하였음을 입증해주고 있는 땅굴이다.  1990 3 3일 강원 양구 북동쪽 26km 지점에서 발견되었다. 너비 1.7m, 높이 1.7m, 깊이 지하 145m, 길이 약 2.1km에 달하는 암석층 굴진 구조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