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11월/11월 18일

금강산 관광 1호선 ‘현대금강호’ 첫 출항

산풀내음 2016. 10. 17. 22:15

1998 11 18,

금강산 관광 1호선 현대금강호첫 출항

 

금강산 관광사업은 1989 1월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방북해서 북한과 금강산 남북공동개발 의정서를 체결하면서부터 시작됐다. 기본 합의 후 적지 않은 시간이 흐른 199810. 정주영 명예회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면담하고 '금강산 관광사업에 관한 합의서'를 체결하고, 본격적인 금강산 관광을 시작한다. 그리고 바로 다음달인 199811 18일 오후 543분 금강산 관광 1호선인 현대금강호가45일의 일정으로 동해항을 출발하면서 금강산 관광이 뱃길을 통해 실현됐다.

현대금강호에는 금강산 관광사업을 총지휘한 현대그룹 정주영 명예회장을 비롯한 현대 임직원과 관광객 889, 승무원과 관광안내원 466명 등 모두 1365명이 승선했다.


 

한반도 분단 이후 한국에 거주하는 일반인들이 관광 목적으로 북한지역에 들어가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동해항을 떠난 금강호는 19일 새벽 3시쯤 북방어로한계선을 통과, 출항 후 10여 시간이 지난 오전 4시쯤 북한 장전항에 도착해 구룡폭포, 만물상, 해금강 등 3개 코스로 나누어 관광한 후 22일 새벽 무사히 동해항에 도착했다. 이번 관광은 남북간 경제협력과 인적교류를 가속화하는 촉매제가 됐다.

 

1998년 시작된 이후 금강산 관광은 10여 년 동안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겪으며 발전해왔다. 이듬해인 19992월 현대그룹은 현대아산을 설립, 관광사업을 전담시킨다. 20009월에는 김정일 위원장이 직접 금강산을 방문하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이전까지 바다 길로만 가능했던 금강산 관광은 20029월 도로 연결 착공식을 시작으로 육로 관광으로 확대된다. 북한은 그 해 11월 금강산 관광지구법을 발표하고 50년간 토지이용증을 발급하기도 했다. 20032월 마침내 육로를 통한 관광이 시작되고, 다양한 형태의 관광상품이 개발되며 관광객들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20056월에는 금강산 관광객이 100만 명을 돌파하고, 이를 기념해 금강산 현지에서 열린 음악회를 개최하는 등 관광사업이 무르익게 된다. 이처럼 금강산 관광이 호조를 보이자 이에 고무된 현정은 회장은 같은 해 7월 김정일 위원장과의 면담 자리에서 개성과 백두산 관광 합의까지 이끌어 냈다. 이날의 합의는 200711월 공식적인 합의서 체결까지 이어진다. 200712월 개성관광이 시작되었고 금강산 관광객은 200만 명 돌파 직전이었다.

이렇듯 금강산 관광은 그 동안 개성공단 사업, 남북철도 연결사업과 함께 3대 경협사업으로 남북교류의 상징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2008711일 오전 450분경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금강산관광지구에서 당시 만 53세의 대한민국 국적 여성 관광객 박왕자가 조선인민군에 의해 피살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남북관계는 급랭하게 되었다. 북한은 군사 경계지역을 침범하였다고 주장했지만 시신을 부검한 의료진은 인민군 초병이 무방비 상태의 민간인인 피해자를 등뒤에서 조준사격 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발표했다.

북한은 모든 책임을 남한으로 돌렸고 결국 대한민국 정부는 2008 7 12일 관광 출발 금지, 7 13 15 30분 전원 철수 조치를 통해 금강산 관광을 중단시켰다

 

 

20098월 현정은 회장이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 관광 재개 등 5개항에 합의했지만 우리 정부의 인정을 받지 못했고, 이후 수 차례 이어진 당국자 회담에서도 접점을 이끌어 내지 못했다. 북한은 금강산국제관광특구법을 발표한 20115, 현대그룹에게 부여했던 독점사업권을 취소했다. 그 해 8월에는 금강산에 상주하던 인력들이 전원 철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