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11월/11월 22일

SOS 채택

산풀내음 2016. 10. 18. 22:19

1906 11 22SOS 채택

 

1906 11 22일 독일 베를린에서 국제무선전신회의가 29개국이 참가한 가운데 열렸다. 바다에서 일어나는 사고에 국제적으로 대비하기 위한 회의로, 조난 선박의 구조 신호를 받으면 우선 취급해야 한다는 내용 등이 결정됐다. 이 회의에서 조난 신호로 ‘SOS’가 채택됐다.

이전까지는 무선전신을 처음 개발한 마르코니가 정한 ‘CQD(Come Quick Danger, 위험! 빨리 오기 바람)’가 사용됐지만, 모스 부호로 각각 세 번씩 짧게, 길게, 짧게 보내는 ‘SOS’보다 판독이 어려웠다.

 

전파의 아버지, 마르코니는 1896년 무선전신기를 처음 발명하고, 1901년 영국·캐나다 간 대서양을 횡단하는 무선전신을 성공시켜 이 분야에 위대한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그러나 자신의 무선전신기를 선적한 배에 한해 육지와 교신할 수 있도록 배타적으로 무선전신 체계를 운영해 다른 나라들로부터 반발을 샀다.


굴리엘모 마르코니(Guglielmo Giovanni Maria Marconi, 1874-1937)

 

국제무선회의는 국제적인 무선전신 규약을 제정해 해상에서 잇따르는 대형사고에 대비하기 위한 목적이 우선이었지만 마르코니에 대한 반발심도 일부 작용한 회의였다. 회의에서는 상호통신 의무, 조난통신 절대 우선권 등의 무선조약도 결정됐고 기술적인 난제였던 주파수 분배도 해결돼 500kHz 1000kHz 2개 주파수는 해상의 공중통신용으로, 188~500kHz는 군사용으로 결정됐다.

 

이날 회의에서 채택된 사안의 하나는조난통신 절대 우선권’. ‘SOS 신호를 수신한 선박은 모든 무선통신에 우선해 구조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인근의 선박은 구조작업을 위해 발신지로 향해야 한다.

 

SOS’로 가장 큰 도움을 받은 것은 1912년 침몰된 타이타닉호였다. 영화로도 제작된 대참사에서 700명 이상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SOS’ 덕분이었다. SOS’는 ‘우리의 영혼을 구하라(Save Our Souls)’ ‘우리 배를 구하라(Save Our Ship)’ 등의 약자라는 이야기도 있으나 근거는 없다.

 

SOS 1999년 국제해사기구(IMO)가 모스 부호를 폐기하고, 조난 신호를 인공위성을 이용한 새로운 신호(MAYDAY)로 바꾸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