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11월/11월 23일

사진잡지 ‘라이프(Life)’창간

산풀내음 2016. 10. 19. 20:10

1936 11 23,

사진잡지 ‘라이프(Life)’창간

 

헨리 루스(Henry Robinson Luce, 1898 4월 3 ~ 1967 2월 28) 1923년 예일 대학교 재학 당시 동창 브리턴 헤이든(Briton Hadden, 1898-1929)과 함께 세계 뉴스를 다루는 타임(TIME)’을 창간해 5년 만에 흑자를 내면서 기존 신문과 잡지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1930년에는 격주간 종합 경제지인 포춘(Fortune)’을 창간했고 이어서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사진의 이점에 착안해 1936 11 23일 정가 10센트의 주간 사진잡지 ‘라이프(Life)`를 창간했다. 이후 그는 1952 주부용 잡지하우스 앤드 (House & Home)’1954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Sports illustrated)’ 등도 발행했다.

 

헨리 루스 부부

브리턴 헤이던, 그는 비록 31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하였지만 당시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저널리스트로 이름을 날렸다. 그는 타임지의 독특한 스타일을 만들어 낸 장본인이기도 하다.

 

빨간 네모 바탕에 ‘LIFE’란 흰 제호를 가진 사진잡지가 탄생한 것이다. 창간호 표지는 당시 뉴딜정책의 하나로 진행 중이던 포트맥 댐 사진이 차지했다. 9개 면에 걸쳐 댐 건설 노동자와 가족사진이 게재됐는데 1면에는 제왕절개로 탄생한 아기의 사진을 싣고 ‘라이프는 시작되었다’라고 제목을 뽑았다. 이 포토스토리는 포토저널리즘의 범위를 확장시키는 기폭제가 된다. 창간사에서 핸리 루스는 이렇게 썼다.

 

“인생을 보기 위하여, 세계를 보기 위하여 대사건의 증인이 되고 가난한 자와 거만한 자의 거동을 관찰하자. 기이한 물건들, 기계, 군대, 집단, 정글과 달에 걸린 그림자를 보자. 수천 킬로미터씩 떨어진 먼 곳의 일들, 벽 뒤에 방 속에 숨겨진 일들, 위험해질 일들, 남성에 의해 사랑 받는 여자들, 또 수많은 어린이들을 보자. 보고, 보는 것을 즐거워하자. 보고 또 놀라자. 보고 또 배우자.

 

창간호 표지

 

라이프는 때마침 불어 닥친 미국의 경제 불황과 함께 세계대전이 눈앞에 다가옴을 예감한 대중들의 위기 의식과 맞물려 이를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은 소비자 심리에 부응했다. 46만부로 시작한 라이프는 창간 3개월 만에 100만부, 창간 3년 만에 200만부를 넘어섰고 1970년에는 850만부라는 경이적인 부수를 기록했다.

 

 

특히 《라이프》는 제2차 세계 대전 보도로 큰 빛을 발했고 여러 공신 중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종군기자 로버트 카파(Robert Capa). 1938년 스페인 내전 때 찍은 ‘병사의 죽음’은 ‘라이프’의 지명도를 높이는 데 큰 기여를 한다. 1944년 초점이 심하게 흔들린 노르망디 상륙작전 사진에 ‘라이프’가 붙인 한 줄의 설명. “그때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보통의 경우라면 폐기됐어야 할 사진이었다.

 

로버트 카파의 어느 인민전선파 병사의 죽음 (Spanish Loyalist at the Instead of Death, 1936). 이 사진의 감동은 구도나 표정, 배경의 아름다움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역사 속의 극적인 순간을 함께 하였고,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담아낸 현장성에 있는 것이다.

 

라이프의 성공은 한편으로 미국의 대규모 광고 상업 시대가 낳은 것이기도 하다. 농업국가에서 거대한 산업국가로 대전환을 이룩한 미국은 기하급수적으로 대규모 기업집단이 등장하여 대중의 소비를 촉진시킬 수 있는 대규모 광고전쟁에 돌입하였다. 이 전쟁에는 화려한 컬러 광고 사진이 기동성 있는 보병이 되었다. 기업은 컬러 광고 사진과 막대한 광고료를 라이프 편집자에게 건넸고 이를 바탕으로 라이프는 걸작 대형 사진 시대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30여 년 동안 지구촌 곳곳을 누비며 역사의 현장을 기록했던 라이프도 1972년 첫 휴간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포토저널리즘의 전성기 속에서 승승장구한 라이프도 TV라는 영상매체의 등장과 함께 쇠락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특히 당시 광고수입을 TV에 뺏겨 경영난에 빠진 것이 그 이유였다. 그 후 연말 등에 특별호로 종종 출판되다 1978년 월간지로 복간됐으나 끝내 경영난을 이겨내지 못한 채 결국 2000 6월부터 두 번째 휴간에 들어갔다. 2004년부터는 60개 신문 일요판 부록으로 끼워지는 신세로 명맥을 유지하다 2007 4월을 끝으로 종적을 감췄다. 창간한 지 71년 만이었다.

 

헨리 루스의 또다른 야심작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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