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12월/12월 12일

유엔총회, 대한민국을 유일한 합법 정부로 승인

산풀내음 2016. 11. 4. 22:02

1948 12 12,

유엔총회, 대한민국을 유일한 합법 정부로 승인

 

미국이 소련과의 협의가 아니라 유엔을 통한 한국 문제 해결로 정책을 바꾼 때는 1947 9월이었다. 두 달 뒤인 11 14일 제2차 유엔총회는 남북한 동시 선거 결의안을 채택했다. 그러나 1948 1월 소련은 유엔 한국임시위원단의 방북을 막았다. 북한에서는 2 8일 조선인민군 창군이, 이틀 뒤에는 '조선임시헌법 초안'이 발표되는 등 단독정부 수립 준비가 끝나가고 있었다. 2 26일 유엔 소총회는 남한만의 총선 실시를 결의했다. 7 20 5·10 총선으로 구성된 국회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된 이승만은 8 11일 장면이 이끄는 제3차 유엔총회 파견 대표단을 임명했다. 대한민국 수립이 선포되기 4일 전이었다.

 

이승만은 공산주의 팽창을 막는다는 점에서 이해가 일치하는 우방을 설득하는 데 주력했다. 가톨릭 교단을 대표해 정계에 진출한 장면을 수석대표로 보내 세계 외교가의 '보이지 않는 손' 로마 교황청의 지원을 얻게 했다. 각국 대표를 설득하는 데 여성의 역할이 크다고 판단해 모윤숙, 김활란 두 여성 대표도 포함했다. 즉 정부는 장면 수석대표를 단장으로 조병옥, 정일형, 김활란 등 7명의 ‘초미니 대표단’을 파견했다.

 

1948년 대한민국 승인을 얻기 위해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3차 유엔총회에 참석한 대표단. 아래 왼쪽부터 모윤숙, 조병옥, 장면, 김활란, 위 왼쪽부터 정일형, 김우평, 장기영(張基永·훗날 체신부 장관과 서울시장 역임), 김진구

 

1948 9 21일 오후 3 30분 프랑스 파리 샤요궁(Palais de Chaillot)에서 유엔총회는 개막됐다. 샤요궁은 파리 중심부 센강 북쪽 강변에 에펠탑을 바라보며 서 있다. 이름과 달리 군주가 살던 궁궐은 아니다. 1937년 세계박람회장으로 세워졌지만 거대 건축물을 궁(Palais)으로 칭하는 프랑스의 관례에 따라 궁으로 불린 것이다.

 

한국 문제 안건은 제3차 유엔총회 회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인 12월에 들어서도 상정될 기미가 없었다. 장면 등 우리 대표단은 각국 대표를 일일이 찾아 다니며 지원을 호소했다. 12 6일 회기 종료 6일을 앞두고 총회 상정을 위해 넘어야 하는 관문인 제1위원회(정치위원회)에서 한국 문제가 토의되기 시작했고 한국 대표 초청 동의안도 채택되었다. 다음 날 대표단원들은 옵서버석()에서 내려와 1층에서 대한민국 승인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수석대표 장면의 연설을 들을 수 있었다. 128일 제1위원회는 한국독립승인안의 총회 상정을 결정했다.

 

마침내 12 12일 일요일 오후 5 15분 대한민국 승인과 신()유엔한국위원단을 파송해 통일을 도모할 것을 결의하는 미국, 중화민국, 호주의 공동 동의안이 486(기권1)으로 가결됐다. 반면 이에 대항해 소련이 상정한 5·10 총선 결과 폐기와 유엔한국위원단의 해체 동의안은 466(기권3)으로 부결됐다.

 

장면 수석대표의 수첩 메모. 12 12일 기록에‘한국 문제 표결. 찬성 48, 반대 6, 기권 1(스웨덴), 결석 3’이라고 썼다(왼쪽). 3차 유엔총회 결의안 195. 대한민국을 한반도(in Korea) 유일 합법 정부로 적시했다(오른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