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12월/12월 15일

유태인 학살범 아이히만, 이스라엘 법정에서 사형 선고

산풀내음 2016. 11. 5. 19:31

1961 12 15,

유태인 학살범 아이히만, 이스라엘 법정에서 사형 선고

 

전직 나치스 친위대 장교 '마지막 해결사' 아돌프 아이히만 (Karl Adolf Eichman, 1906. 3. 19-1962. 5. 31) 1961 12 15일 이스라엘 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 1906년생인 아이히만은 제2차 세계대전중에 독일과 독일 점령하의 유럽 각지에 살고 있던 유대인의 체포-강제이주-살해를 계획하고 지휘했다. 1941 1 20일 베를린 근교 반제에서 열린 이른바 '반제회의'에도 참석, 유대인 절멸을 의미하는 '최종 해결책'을 결정한 멤버 중 한 명이었다.

 

독일이 패전한 뒤 미군에 잡혔으나 이듬해 수용소를 탈출하여 이탈리아와 중동 등지에서 머물다가, 1950년 가족을 데리고 대서양을 건너 아르헨티나로 도망가 그곳에서 리카르도 클레멘트라는 가명으로 아르헨티나 시민권을 얻은 뒤 부에노스 아이레스 근처의 자동차 공장에서 기계공으로 은신해 있었다. 그러나 아이히만은 이스라엘 비밀정보부 모사드(Mossad)의 끈질긴 추적끝에 1960 5월에 아르헨티나에서 납치돼 이스라엘로 비밀리에 압송되어 재판을 받게 됐다.

 

아이히만의 젊은 시절 모습() 재판을 받고 있는 모습()

아이히만의 가짜 여권

 

1961 4 11일부터 시작된 재판은 모사드(Mossad)의 아이히만 납치가 국제법을 위반했고, 나치 전범을 처벌하기 위해 1950년에 제정된 법률이 사후입법이므로 형벌 불소급의 원칙을 위반하고 있다는 점 등을 둘러싼 이스라엘 검사와 독일 변호사간의 법정공방이 뜨거웠으나 이스라엘 법정은 검사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아이히만은 1962 5 31일 자정에 교수형에 처해졌다.

 

정식명칭은 '중앙공안정보기관(Central Institute for Intelligence and Security)으로 모사드는 Institute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다. 1949년 다비드 벤구리온 총리의 제안으로 설립된 이스라엘의 정보기관으로 놀라운 정보수집능력과 수단을 가리지 않는 공작 능력으로 악명 높다. 주요 목표는 이스라엘의 주적인 팔레스타인 하마스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레바논 헤즈볼라를 감시하고 테러를 가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