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2월/2월 14일

라피크 하리리 전(前) 레바논 총리, 베이루트에서 차량폭탄 공격 받아 사망

산풀내음 2016. 12. 15. 22:43

20052 14,

라피크 하리리 전() 레바논 총리, 베이루트에서 차량폭탄 공격 받아 사망

 

 

하리리 (Rafic Baha El Deen Al-Hariri, 1944 11월 1 ~ 2005 2월 14)시돈에서 수니파 이슬람 교도의 아이로 태어났다. 1969년 건축 회사 시코네스트 (CICONEST) 를 설립하고 기업인으로서 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오네스트는 석유 가격 상승의 영향으로 전례 없는 건축 경기가 활성화 된 1970년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빠르게 성장해, 하리리는 사우디아라비아 건축 업계의 유력자가 되었다.

 

1975년 기독교도 우파인 팔랑헤당 민병대가 팔레스타인 게릴라 기지를 습격한 것을 계기로 내전이 일어나자 레바논을 형제국으로 간주해 온 시리아는 1976 4월 정규군을 투입, 수도 베이루트를 침공했다. 1990까지 계속된 내전에서 15만에서 23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인구의 1/4인 백만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으며, 35만 명이 난민이 되었다.

 

레바논 내전이 끝난 1990, 하리리는 레바논에 돌아와, 내전 이후의 국가 재건에 참여하였다. 1992~1998, 2000~2004년 레바논의 총리를 지냈으며, 기업인으로서의 경험을 살려 국제적 지원을 받는 수완을 발휘하였다. 첫 번째 총리 재임 중이었던 1996, 이 해 열린 총선에서 베이루트 선거구에 출마해 최다 득표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레바논 내전 종식 이후에도 레바논 주둔을 계속하려는 시리아군의 철수 문제를 둘러싸고, 시리아 성향의 레바논 대통령 에밀 라후드의 임기를 연장하는 헌법 개정안이 시리아의 압력으로 의회에서 통과되자, 하리리는 이 영향으로 일어난 정국 혼란 중에 2004년 총리에서 물러났다.

 

2005 2 14, 하리리는 베이루트에서 동행자들과 함께 차량 폭탄테러 공격으로 암살되었으며, 하리리를 암살한 이슬람주의 조직은 하리리가 사우디아라비아 체제를 지원하고 있던 것을 암살의 이유로 제시하였다.

 


 

그러나 이 사건은 30여년간 레바논에 군을 주둔시키면서 레바논 정국(政局)을 사실상 장악했던 이웃국가 시리아의 ‘조직적인 개입’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유엔 조사단은 하리리 전 총리 폭탄테러 사건에 대한 조사 보고서를 20일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에게 제출했다. 54쪽 분량의 이 보고서는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동생 마헤르 아사드와 매형 아세프 쇼카트 정보국장이 하리리 암살을 계획했다고 밝혔다. 또 지난 12일 자기 사무실에서 권총 자살한 가지 카난 전 내무장관 등 다른 5명도 사건 용의자로 지목했다.

 

 

보고서는 다섯 차례나 총리를 지낸 하리리가 국내 반()시리아 여론을 등에 업고 재집권을 시도하자, 시리아 정부 관리들이 레바논의 친()시리아 세력과 결탁해 테러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하리리를 제거했다는 잠정 결론을 내렸다. 이에 대하여 그동안 “100% 무관하다”며 결백을 주장해 온 시리아는 보고서가 공개된 뒤 “보고서 내용은 사실이 아니며 비전문적이고 정치적이다”고 비난했다.

 

이 사건은 1990년대 점령 지배에 대한 레바논 국민의 불만을 폭발시켰으며, 이 영향으로 백향목 혁명 (Cedar Revolution) 이 일어나 반 () 시리아 세력이 확대되고, 결과적으로 정권도 친 시리아 성향 정권에서 반 시리아 성향 정권으로 바뀌게 되었다.

 


Over 800,000 Lebanese took to the streets of Beirut on March 14, 2005, the one month anniversary of the assassination of former Prime Minister Rafik Hariri.


 

레바논 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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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즈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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