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2월/2월 25일

코라손 아키노(Corazon Aquino) 여사 필리핀 대통령에 취임

산풀내음 2016. 12. 24. 10:27

19862 25,

코라손 아키노(Corazon Aquino) 여사 필리핀 대통령에 취임

 

1986 2 25. 필리핀 국민이 20여년에 걸친 독재정권으로부터 빼앗겼던 자유와 권리를 되찾았다. 혼란이 계속되고 있던 필리핀에서 이날 코라손 아키노 여사가 임시정부를 수립, 대통령으로 실권을 장악한 것이다.

 

Corazon Aquino takes the Oath of Office before Chief Justice Claudio Teehankee, Sr. in Club Filipino, San Juan on February 25, 1986

 

1983 8 21 3년간의 미국 망명생활을 마치고 마닐라에 도착한 베니그로 아키노는 괴한의 총구에 운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그의 장례식에는 200만 명의 애도 인파가 몰렸다. 그들은 노란 면 옷을 입고 거리의 나무 가지에 노란 리본을 달았다. 대규모 반 마르코스 운동으로 번진 노란 물결의 중심에 남편의 유지를 실현하기 위해 정치에 뛰어든 '코리'(코라손 아키노의 애칭)가 있었다. 그는 다양한 노선의 반 마르코스 정치세력을 하나로 결집시킬 수 있는 유일한 상징적 존재로 자연스럽게 부상했다. 마르코스가 정치ㆍ경제적 혼란의 탈출구로 삼기 위해 1985년 야당연합의 대선 단일후보로 추대된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1986 2월 전격 실시한 선거결과는 아키노 후보의 패배였다. "국가운영 경험이라곤 전무한 가정주부에게 표를 줄 것인가"라는 마르코스의 선전이 먹힌 측면도 있지만 조직적 부정선거의 결과였다. 선거 참관인들이 선거결과를 인정하지 않았고 미국 등 국제사회도 마르코스 정부의 선거부정과 폭력을 강력하게 비난했다.

 

수백만 필리핀인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아키노는 비폭력 저항을 외쳤고 군부도 가세했다. 결국 1986 2 25일 마르코스 부부는 하와이로 망명을 떠났고, 아키노는 필리핀 최초 여성 대통령에 취임했다. 이로써 20여 년간에 걸친마르코스 왕조가 붕괴됐다. 마르코스의 망명과 아키노 정권탄생을 접한 시민들은 대통령궁주변에 모여피플 파워에 의한 독재자타도에 열광했다.

 

 

아키노(1933-2009) 여사는 1983 3월 필리핀 마닐라공항에서 마르코스 전 독재정권의 흉탄에 쓰러진 베니그노 아키노 전 상원의원의 부인으로 1972년 남편 아키노가 마르코스에 의해 투옥되자 8년간 옥바라지를 했는데, 이 시기에 남편과 야당지도자들간의 교량역할을 하면서 정치를 배웠다. 그러던 1983년 남편의 죽음으로 그녀는 평범한 가정주부에서 정치가로 변신해 반()마르코스 대열에 가담하게 된다. 그리고 이날 필리핀 최초 여성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그러나 집권 6년 동안 7차례나 군부 쿠데타에 시달렸다. 이는 필리핀 사회의 구조적 한계에 부딪혀 개혁에 실패한 탓이다. 대중적 지지에도 불구하고 경제난 등 계속적인 소요를 통제하지 못해 결국, 1992 5월 실시된 대통령선거에서 라모스에게 패배한 후 대통령직을 인계했다.

 

한편 퇴임 이후에는 해비타트 운동 등 봉사활동을 하면서 정계와는 거리를 두지만, 에스트라다 대통령의 부패혐의가 드러나자 이에 반정부 시위에 참가하였으며, 부패혐의를 받은 아로요 대통령 반정부 시위에도 참가했다. 그러나 결장암과 투쟁하던 중이던 2009 8월 1에 향년 77세의 나이로 서거했다.

 

Corazon Aquino's funeral procession, with an Honour Guard composed of one serviceman from each branch of the Armed Forces and the Philippine National Poli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