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4월/4월 2일

윌슨 미국 대통령, 1차 세계대전 참전승인 요청

산풀내음 2017. 1. 29. 21:09

19174 2,

윌슨 미국 대통령, 1차 세계대전 참전승인 요청

 

1917 4 2일 미국의 윌슨 대통령이 의회에서 1차 세계대전(1914. 7 -1918.11)에 참전승인을 요청했다. 독일의 '무제한 잠수함 사건' '짐머만 전문사건'이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1차 세계대전 발발 당시 미국은 순수한 무역거래라는 명목 하에 연합국 측에 막대한 양의 전쟁물자를 공급하며 실리를 챙기면서도 참전만은 거부한 채 중립을 지켜오던 중이었다. 독일의 도발은 윌슨 뿐만 아니라 미국을 분노하게 만들어 참전승인 요청 후 이틀이 지난 4 4일에 상원에서 82 6, 4 6일에는 하원에서 373 50의 압도적인 표 차이로 윌슨의 대독 참전 결의안을 승인했다.

 

 

하지만 당시 미 육군의 보유병력은 19만에 불과했고 신병의 선발과 훈련은 최소 6개월이 걸렸기 때문에 연말쯤에 가서야 17만여 명이 유럽에 파견돼 진용을 갖출 수 있었다. 미국의 참전 초기에는 여전히 독일에 전황이 유리하게 전개됐지만 미국이 전시체제로 전환을 완료한 1918년에 이르자 전세가 역전돼 그 해 11월 독일의 항복으로 1차 세계대전은 연합국의 승리로 끝났다.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는 흑인부대의 행진 (1916)

US Submarine K.5 in 1919


Women Working In an Aircraft Factory in World War 1

 

미국은 200만여 명이 전선에 투입돼 5만여 명이 전사하고 20만여 명이 부상했다. 하지만 승전국으로서 미국의 위상은 획기적으로 변화해 19세기 말 연평균 12억 달러였던 대외수출은 1차 세계대전 중에 연평균 65억 달러로 증가했고, 전후에도 47억 달러 이상의 활황을 유지했다.

 

미국은 1920년 말에는 116억 달러의 전쟁채권을 포함해 270억 달러의 해외자본을 갖게 돼 세계 최대의 채권국이 됐고, 전쟁 전에는 19억 달러에 못 미쳤던 금 보유량도 전후 몇 년 사이에 46억 달러로 늘어나 전 세계 금 보유량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게 됐다. 미국의 세기가 시작된 것이다

 

1차 대전 후 미국의 윌슨 대통령은 패전국들을 너무 가혹하게 다루지 말자는 골자의 '14개 조항'을 주장했다. 14개 조항은 전쟁의 근본적 원인들을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결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패전국들에게 너무 심한 비난을 가하고 막대한 배상금을 물리면, 그 나라는 더 이상 회복할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게 될 것이고 그 나라 국민들의 원망을 사게 될 것이라고 했다. 또한, 모든 국가는 스스로 운명을 결정할 권리가 있다는 '민족 자결주의' 원칙을 내세웠다.

 

 

윌슨의 이 원칙들은 미국의 숨은 의도가 포함되어 있었다. 당시 미국은 영국과 프랑스에 비하여 산업화는 훨씬 앞섰지만, 그들의 물건을 쉽게 팔 수 있는 식민지는 상대적으로 턱없이 부족했다. 따라서 패전국도 너무 가난하게 되면 물건을 살 능력이 없어지게 되어 미국 입장에서 좋지 않게 되고, 영국과 프랑스의 식민지가 독립하게 되면 거대 자본과 고도로 성장한 미국의 산업이 진출할 수 있는 시장이 더욱 넓어지기 때문에 미국입장에서는 좋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윌슨의 민족 자결주의는 역시나 무시되었다. 오히려, 영국과 프랑스는 패전국인 독일을 거의 재기 불능 상태로 만들기를 원했다.

 

그러던 중, 1919년 파리 강화 회의에서는 '베르사유 조약'이 맺어졌다. 이 조약은 독일에게 거의 재앙이나 마찬가지였는데, 독일은 안 그래도 전쟁을 치르느라 심각한 자금난에 빠져있었는데, 연합국은 독일에게 1,320억 마르크를 배상하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이 베르사유 조약으로 인해, 전 세계는 얼마 가지 않아 또 하나의 재앙(2차 세계대전)을 맞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