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4월/4월 8일

강계학살사건

산풀내음 2017. 2. 18.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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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계학살사건

 

강계군 읍내의 3·1운동은 중학교 교사들인 김경하(金京河)와 정준, 교회 장로인 한봉민(韓奉珉) 등이 주동이 되어 일어났다. 이들은 3 20일경부터 20여 명의 동지를 규합하고 2,000여 장의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제작하는 등 치밀한 준비를 하여 장날인 4 8일을 기해 시위를 벌였다.

 

교회 종소리를 신호로 모여든 수천 명의 군중들은 '대한독립만세'라고 쓴 플래카드를 앞세우고 읍내 중심가를 평화적으로 행진했다. 이때 일본군 수비대는 읍의 북문 성루에 계획적으로 매복하고 있다가 시위군중이 북문에 이르자 갑자기 총격을 퍼부었다.

 

이렇게 하여 시위 주동자인 정준과 천도교인 김병찬(金秉贊), 상인 손주송(孫周松), 전도사 인국원의 부인 한()씨 등이 죽었고, 부상자도 여러 명 발생했다. 그리고 이 시위투쟁으로 검거된 20여 명 가운데 어린 학생인데도 90대의 태형을 언도 받은 김명하(金明河)와 탁창국은 결국 태독으로 죽었다.

 

일본군의 학살 만행은 어뢰면 풍용리에서도 있었다. 풍용리에서 4 16일에 수천 명이 시위를 벌이자 헌병대는 만포에 있던 수비대 50명을 불러 해산에 불응하는 군중들에게 발포했고, 이때 현장에서 10여 명이 학살되고 20여 명이 검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