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4월/4월 15일

에이브러햄 링컨 미국 대통령 피살

산풀내음 2017. 2. 28. 21:24

18654 15,

에이브러햄 링컨 미국 대통령 피살

 

남북전쟁이 끝난 지 5일 후인 1865 4 14(금요일) , 링컨 대통령이 워싱턴 DC에 있는 포드극장 2층에서 연극우리 미국 사촌(Our American Cousin)’을 관람하고 있을 때 한 사내가 2층 대통령 박스석에 들어섰다. 링컨은 5일 전 남군의 로버트 리 장군이 북군의 그랜트 장군에게 항복함에 따라 남북전쟁이 사실상 끝났다고 판단, 연극을 보며 머리를 식히고 있었다.

 

사내는 수개월 전부터 링컨을 납치하려 했으나 기회가 닿지 않아 살해 쪽으로 방향을 바꾼 남군 출신의 배우 존 윌크스 부스(John Wilkes Booth, 1838-1865)였다. 부스가 슬며시 링컨의 뒤로 다가가 데린저 권총의 방아쇠를 잡아당겼다. 링컨은 곧 고꾸라졌지만 총소리도, 부인 메리의 비명소리도 연극에 몰입한 관객들의 폭소에 파묻혀 들리지 않았다. 1013분경이었다.

 

에이브러햄 링컨의 암살. 왼쪽부터 헨리 래스본, 클라라 해리스, 메리 토드 링컨, 에이브러햄 링컨, 윌크스 부스

 

같은 시각 수어드 국무장관도 집에서 부스의 공범에 의해 피격됐다. 부스는 근처에 있었던 레스본 소령에게까지 칼을 휘두른 뒤 1층으로 뛰어내려시크 셈퍼 티러니스!(Sic semper tyrannis!)”를 외쳤다. 남군의 주 무대인 버지니아주의 구호독재자의 것은 독재자에게로!”라는 뜻의 라틴어였다.

 

현장을 벗어난 부스는 남쪽으로 도주하던 중 4 26일 발각돼 살해됐고, 링컨은 밤새 치료를 받았으나 이튿날인 4 15일 오전 7 20분경 숨을 거뒀다. 시신은 4년 전 대통령으로 취임한 그를 태우고 고향을 떠나 워싱턴으로 달려왔던 기차에 실려 다시 그의 고향 스프링필드로 돌아갔다. 56세였다


링컨 장례식 기차는 9개의 승객칸과 화물칸, 그리고 링컨대통령 시신과 아들 시신을 함께 실은 칸으로 구성됐다. 아들은 3년전 12살때 사망한 링컨의 아들인 윌리엄(William)이었다. 가능한 많은 국민들과 마지막 가는길을 같이하기 위해 특별 장례 코스를 정해 기차는 달렸다. 중간에 강을 건너기위해 배에 실려 가기도 하면서 멀리 멀리 달렸다.

 

증기 기관차 앞머리에는 꽃들로 단장한 링컨대통령의 영정사진이 걸려있었다.



Lincolns funeral train route and burial site

Lincoln's tomb, Oak Ridge Cemetery

 

링컨을 살해한 부스는 배우로 남부맹방의 지지자였다. 부스의 공범은 루이스 파월(Lewis Powell)데이빗 헤럴드(David Herold)로 그들에게 국무부 장관 윌리엄 수어드의 암살도 명령했다. 부스의 목적은 링컨, 수어드, 부통령 앤드류 존슨을 암살하여 워싱턴을 혼란에 빠뜨리고, 미국 정부(북부 연방)를 전복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부스는 링컨 암살에 성공했지만, 정부 흔들기는 그의 예상을 빗나 갔다. 수어드는 부상당했지만 생명을 건졌고, 존슨의 암살을 명령받았던 조지 애체롯은 암살을 단행할 담력이 없었고,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워싱턴을 떠났다.

 

John Wilkes Booth and his escape route

 

암살 이후, 수십 명의 암살 용의자들이 체포되어 투옥되었다. 암살과 약간의 관련이 있다고 밝혀진 모든 사람 또는 도주 중 부스나 헤럴드와 사소한 접촉이라도 한 사람들은 모두 투옥되었다. 최종적으로 8(남자 7명에, 여자 1)으로 좁혀졌다. 새뮤얼 아놀드, 조지 애체롯, 데이빗 헤럴드, 새뮤얼 머드, 마이클 오래플린, 루이스 파월, 에드먼드 스팽글러 (포드 극장의 무대담당자로 부스에게 말을 주어 피너츠 버로우에게 잡고 있으라고 했던), 그리고 매리 수랏(Mary Elizabeth Jenkins Surratt, 링컨 암살 사건에 가담한 하숙집 주인)이었다. 8명의 용의자는 1865 5월 1 당시 앤드류 존슨 대통령의 명령으로 군법재판소에서 재판을 받았다.

 

1865 7월 7, 수랏, 파월, 헤럴드, 그리고 애체롯은 레슬리 J. 맥네어 요새에서 교수형을 당했다. 북군 윈필드 스콧 핸콕 장군이 처형을 참관하였다. 매리 수랏은 미합중국 정부에 의해 처형된 최초의 여성이 되었다. 오래플린은 1867 황열로 옥사하였다. 머드, 아놀드, 그리고 스팽글러는 1869년 앤드류 존슨 대통령에 의해 사면을 받았다. 1875에 사망한 스팽글러는 남은 평생동안 부스로부터 말을 잡고 있으라는 요청만 받았지 그 음모와 전혀 연루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