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5월/5월 16일

산악인 엄홍길, 세계에서 8번째로 8000m급 14좌 모두 등정

산풀내음 2017. 4. 1. 15:41

2001 5 16,

산악인 엄홍길, 세계에서 8번째로 8000m 14좌 모두 등정

 

작은 탱크로 불리는 산악인 엄홍길씨가1988년 에베레스트 등정 이후 2001 5 16일 히말라야 로체봉 (8516m) 등정에 성공, 세계 8번째이자 동양인 최초로 8000m 14좌를 모두 등정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다른 8,000m위성봉인 얄룽캉과 로체샤르를 등정하여 세계 최초로 16좌 등정에 성공한 대한민국 산악계의 살아있는 전설. 다만 엄홍길의 시샤팡마 등정은 1993에 이루어졌으나 등정 실패 의혹으로 인정 받지 못한 탓에 논란을 불러왔으나, 히말라얀 데이터베이스의 국제 공인 기록인 2001의 재등정을 인정받으면서 마무리되었다. 엄씨는 이날 새벽 330 7500m 최종 베이스캠프를 출발해 5시간 45분 만인 9 15분 정상 등정에 성공했다.

 

 

엄씨는 2000 7 31일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K2 정상에 올라 세계에서 7번째로 14좌 모두를 정복했으나 그 동안 국제산악연맹으로부터 공식 인정을 받지 못해왔다. 1995년 로체봉 등정을 입증할 수 있는 사진자료가 없었기 때문이다. 히말라야 14좌 완등은 1986년 오스트리아의 라인홀트 매스너가 처음으로 성공한 뒤, 당시까지 7명밖에 이루지 못했던 전세계 등반인의 꿈이었다.

 

1960년 경기도 의정부시 도봉산 골짜기에서 태어난 엄홍길은 어려서부터 도봉산을 오르내리며 산악인의 꿈을 키웠다. 1m 68cm, 60kg의 작은 체구지만 최정예 부대인 해군 수중파괴대(UDT)에서도 잠수실력을 인정받을 정도로 엄청난 폐활량과 지구력의 소유자였다. 25세 때인 1985년 에베레스트 첫 원정과 1986년 두 번째 원정에서 정상정복에 실패했으나, 1988년 비로소 세계 최고봉에 오르면서 그의 히말라야 도전 성공사가 시작됐다. 1998년 안나푸르나 등정 때는 추락하는 셸파를 구하려다 다리가 부러지기도 했고 낭가파르바트 원정 때는 동상에 걸려 발가락을 잘라내기도 했다.

 

 

16좌를 제패한 이후에는 8,000m 고산에는 오르지 않고 있으며 현재는 자신의 이름을 딴 엄홍길 재단의 일에 집중하고 있다. 안나푸르나 등정 당시 모든 것을 베풀며 살 것을 다짐했다고 하며, 네팔에 학교를 지으면서 이 맹세를 지키고 있다.

 

2015 네팔 대지진 , 지인들과 함께 네팔에 구호 활동을 위한 자원 봉사를 하러 갔다. 네팔에 대하여 애정이 각별하다고 밝혔는데 그럴 만한 게 네팔에 초등학교도 세워주고 친구들도 많다고 했다. 후배 산악인들에게 네팔 사람들을 무시하면 내가 가만 안 둔다고 엄격한 충고를 할 정도로 네팔은 제2의 조국이라고 누누이 강조했던 만큼 이 지진 여파가 남일이 아니었으리라.

 

엄홍길 휴먼재단 :

http://www.uhf.or.kr/new/main/main.ph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