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5월/5월 20일

아멜리아 에어하트 여성 최초로 대서양 논스톱 횡단비행에 성공

산풀내음 2017. 4. 6. 23:38

1932 5 20,

아멜리아 에어하트 여성 최초로 대서양 논스톱 횡단비행에 성공

 

미국의 여성비행가 아멜리아 에어하트(Amelia Mary Earhart, 1897 7월 24 ~ 1939 1월 5 사망 공식발표) 1932 5 20일 여성최초로 뉴펀들랜드에서 아일랜드까지 대서양을 논스톱 횡단 비행했다. 거센 바람과 연료탱크가 새는 등의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그는 3,241Km 13시간 30분 만에 돌파했다. 미국은 열광했고 전세계가 들끓었다. 에어하트는 그로부터 석 달이 지나 로스엔젤레스에서 뉴욕까지 미국 대륙을 단독 횡단했고 1년 뒤에는 하와이에서 미국 본토까지 논스톱 비행했다.

 

 

1897년 미국 캔자스의 애치슨이라는 작은 도시 출신으로 극성맞은 개구쟁이 소녀였으나, 시대가 요구하는 조신한 숙녀가 되는 길을 찾아 여학교 나와 간호사 교육도 받고 군병원에서 일하다 사회복지사가 되어 이민자 출신 아이들을 돌보기도 했다. 제1 세계대전 당시 의무병으로 종군하기도 했는데, 이때 위문공연차 온 공군의 곡예비행단을 보고 매료되어 비행사로 전향했다고 한다.

 

1921부터 비행훈련을 받기 시작해 같은 해 7월 개인 비행기를 구입, 1년 후 1922 10월에 고도 4300m의 기록을 세웠고 1923에 들어서 국제항공연맹에 인정받아 16번째 여성 파일럿으로 정식 등록되었다. 1932년 여성 최초로 대서양 횡단 비행에 성공, 이어서 태평양 횡단, 아메리카 대륙 종단까지 일취월장 승승장구, 국민 영웅이 되어 그 무렵 태어난 여자아이 중에는 아멜리아란 이름이 많았다 한다.

 

아멜리아의 활약 뒤에는 그녀를 지지하며, 멋진 활동을 책으로 엮어내는 남편이 있었다. 허술한 창 밖으로 휘익 날아간 지도를 주우려 불시착을 감행하고 날개가 떨어져나가면 또 잠깐 쉬며 그걸 찾아 이어 붙이고 날아야 했던 목숨을 건 대모험의 이야기들을 더 잘 듣고 싶어하는 독자들을 위해 강연을 주선하며, 아내의 훌륭한 기록 경신을 위해 물심양면 헌신적인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남편 George와 함께

 

1936 7월에 그녀는 록히드 L-10 엘렉트라를 퍼듀대학교로부터 인수받았고, 적도를 따라서 29,000마일(47,000 km)를 비행하는 세계 일주 비행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계획은 샌프란시스코-하와이-홀란드 섬-오스트레일리아 순서로 비행했다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항법사를 바꾸고 이후로는 자력비행을 한다는 좀 복잡한 계획이었는데 이게 나중에 비극의 원인이 되고 만다.

 

1937 3 17일에의 1차 시도는 캘리포니아에서 이륙해 하와이에 도착하는 것으로 실패하고 만다. 2차 시도는 1937 6 11차와 반대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비행하는 것으로 마이애미에서 이륙해 남아메리카, 아프리카, 인도, 동남아시아 중간중간을 거치면서 1937 6 29일에 뉴기니 섬 라이에 도착했다. 그들은 22,000마일(35,000 km)을 이동했고, 7,000마일(11,000 km)를 남겨두고 있었다.

 

1937 7월 2 에어하트와 누넌은 라에에서 출발했다. 그들의 목적지는 하울랜드 이었다. 미국 해안경비대의 연안 감시선 이타스카 호가 하울랜드 에서 에어하트와 교신하며 섬 주변에 도착할 때까지 안내하도록 배치됐다. 이때 통신상의 문제로 갑자기 연락이 두절되고 편향통신이 되고 만다. 에어하트 측에서 미군 함정으로 보내는 통신은 잘 들리지만 미군 함정에서 에어하트 측으로 보내는 통신이 잡히지 않게 된 것. 해군 함정에서 마지막으로 수신한 음성은 "고도 1,000피트, 위치는 알수없고 태양선을 향해 비행중. 연료가 부족하다"라는 말 뿐이었는데 이 메시지가 주파수가 불안정했는지 해안경비대뿐 아니라 주변에 있던 다른나라 함선, 심지어는 주변에 있던 일본 어선에까지 전달되었다고 한다. 결국 이 메시지를 끝으로 에어하트의 행방은 묘연해졌다.

 


At left, a vintage Lockheed Electra similar to the one she flew on her last flight.

 

실종 소식을 접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직접 수색을 지시했지만 흔적을 찾지 못해 결국 해상 추락사로 결론지었다. 당시 비행기 파편조차 발견되지 않은 실종은 숱한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지나친 유명세에 지쳐 실종 자작극을 벌여 다른 사람으로 살고 있다거나 2차 세계대전을 앞두고 남태평양에 주둔하던 일본군에 붙잡혀 처형당했다는 설이 나돌았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그의 실종을세계 7대 실종사건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2012 3 20일 미 국무부 지원을 받아 에어하트 실종사건을 조사해온역사적 항공기 회수를 위한 국제그룹(TIGHAR)’ 20일 미 국무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에어하트 실종 한 달여 뒤 영국 탐사팀이 남태평양의 키리바시 니쿠로마마섬 근처를 찍은 사진에서 비행기 착륙장치로 추정되는 물체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해안가를 찍은 흑백사진의 좌측 부분에 흐릿한 검은 물체가 수면 밖으로 나온 것을 찾아냈다. 발견된 물체는 에어하트의 쌍발비행기 록히드 엘렉트라호 착륙장치의 받침대, 바퀴 모양과 일치했다.

 

“빨간색 선 안에 비행기 파편” 역사적 항공기 회수를 위한 국제그룹(TIGHAR) 20일 미국 국무부 청사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1937년 세계일주비행 도중 실종된 여비행사 아멜리아 에어하트의 추락 추정장소를 찾는 데 실마리를 제공했다며 공개한 사진.

 

이 단체는 이전의 조사를 통해 에어하트와 항법사 프레드 누난이 산호섬인 니쿠로마마 인근 암초에 불시착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두 사람은 외딴 섬에서 1주일가량 생존했으며, 비행기는 높은 파도 때문에 바다로 씻겨 내려가 흔적이 발견되지 않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 단체는 착륙 장소로 추정되는 주변 심해를 탐사하면 비행기의 잔해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