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5월/5월 25일

의혹 투성의 박지원 구속

산풀내음 2017. 4. 16. 15:12

2006 5 25,

의혹 투성의 박지원 구속

 

박지원(1942- ) 전 문화관광부 장관이 2006 525대북송금 사건의 대법원 파기환송심 선고공판에서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등의 혐의가 인정돼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에서 구속됐다. 이에 따라 다음달로 예정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방북 수행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박지원의 현대 비자금 150억 원 수수 혐의는 대법원 파기환송 취지대로 무죄가 선고됐다. 서울고법 형사2(재판장 이재환)는 이날 박씨에게 징역 3년 추징금 1억원을 선고한 뒤, 보석을 취소하고 구속했다.

 

재벌 총수나 박지원이나 같은 전략?? 좋은 것(?)은 빨리 배운다.

 

재판부는 박씨가 2002SK그룹한테서 7천 만원, 아시아나항공에서 3천 만원 등 모두 1억원을 받은 혐의에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의 알선수재죄를 적용했다. 또 박씨의 남북교류협력법 위반과 직권남용, 외국환관리법 위반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 재판부는박씨가 당시 대북송금 사실은 숨기고 정상회담 사실만 발표했고, 돈 조달 방법도 공식적인 논의를 하지 않다가 현대라는 사기업으로 하여금 남북교류협력 자금 조달 부담을 지운 것은 죄질이 나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이기호 대통령 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이 실정법에 저촉되지 않고 대북송금을 할 수 있는 방안을 냈음에도 산업은행에 부당대출을 지시하고 45천만 달러를 송금한 점, 국민적 동의를 얻지 않고 대북송금을 강행해 국론분열을 초래한 점, 대통령을 최측근에서 보좌하는 입장에서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는데도 두 차례에 걸쳐 대기업 회장한테서 돈을 받은 점은 사회적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재판부는 현대비자금 150억 원 수수 혐의에 대해서는검찰이 제시한 영사신문 진술서는 박씨와 이해관계가 상반된 김영완씨의 진술을 토대로 한 것으로, 형사소송법상 증거능력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판결 선고 후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박 전 장관은 측근에게 “6·15 남북공동선언이 3주년 될 때 들어왔는데(구속됐는데) 6주년을 앞두고 또다시 들어왔다. 참 기막힌 우연의 일치라며 착잡한 심경을 내비치기도 했다. 두 어르신(김대중 대통령 내외)께 죄송하다는 뜻을 전하기도 했다.

 

지난 2003 6월 대북송금 특검에 긴급 체포된 이래 2 8개월, 햇수로 4년째 법정 싸움을 벌여온 박 전 장관은 이날 다섯 번째 판결 선고를 받았다. 그는 이날 판결 선고 전에는꽃은 네 번 졌어도 녹음방초(綠陰芳草)의 계절은 다시 왔다 4년째 계속되는 법정공방이 끝나는 것 아니냐는 희망을 표현하기도 했다. 그는 3년 전 구속 수감되면서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며 조지훈 시인의낙화를 읊었었다.

 

법원의 판결 선고가 날 때마다 검찰과 박 전 장관의 희비는 엇갈렸다. 1~2심이 그의 150억 원 수수 혐의를 인정해 징역 12년에 추징금 148억 원을 선고했으나, 그는 뇌물수수에 대해서만큼은결백하다고 주장했다. 2004 11월 대법원 판결로 반전이 이뤄졌다. 대법원이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150억 원 수수 부분을 무죄 취지로 판단하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낸 것이다.

 

이 판결에 대해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 측은박 전 장관은 이미 1년여 형을 살았고, 지병이 있어서 보석 상태인데 법정구속 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고 밝혔다. 김 전 대통령측은 또대북송금 등 사건의 다른 당사자들이 사면복권이 된 상황이라며남북관계는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김 전 대통령의 다음달 방북과 관련해 법원이 정상을 참작했어야 했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박지원 관련 의혹 들

 

'학력위조 논란', '한빛은행 불법대출 의혹', '불법 대북송금', '박연차 로비 사건', '현대비자금 150억 수수설' 등 쏟아져 나오는 의혹을 열거하기도 힘들 지경이다. 온갖 비리 의혹과 관련해 매번 '단골'로 등장했던 그의 전력이 너무나도 화려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의혹에 대해 박지원은 애매모호한 답변으로 회피하거나 거짓말을 한 전과도 있다. 이는 그에게 큰 약점으로 작용한다. 특히 환자복을 입은 채 휠체어를 타고 법정에 나서며 '선처'를 구하는 모습을 똑똑히 기억하는 국민들은 그가 언제 또 '휠체어 꼼수'를 써먹을지 궁금해하고 있는 실정이다.

 

1) 전두환 찬양?

 

박지원이 과거에 전두환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은 사실인 것 같다. 그러나,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내란음모 사건으로 미국에 강제 망명 와서 있을 때인 1983년에 미국 워싱턴에서 그를 만나고 무릎을 꿇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선생님, 제가 잘못 살아왔습니다. 저의 삶이 부끄럽습니다. 민주화를 위해서 벽돌 하나라도 놓는 그런 생각으로 살겠습니다.”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아무를 힘이 없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국민적 존경과 지지를 받는 분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알려진 사실이다. 따라서 진정 참회하고 민주열사로 변화한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기회를 모색한 것인지는 그 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양다리 전략?)

 

박지원, 전두환 빨고, 김대중 빨고, 호남 빨아대고 (한겨레 커뮤니티, 2014. 2. 13.) :

http://c.hani.co.kr/hantoma/2401835

 




전두환 도미 시절 견마지로를 다하는 박지원

 

 

2) 박지원 학력

 

박지원이 공식적으로 밝힌 학력에 따르면 진도 고성국교, 진도중(10), 목포 문태고(1961 9)를 졸업하여, 그 뒤 2년 뒤 1963 3월 광주교대에 입학한다. 그리고 1964년 단국대에 편입학 하여, 1965 415일 군입대하여 1967 923일 제대한 뒤, 1968년 복학하여 1969 2월에 졸업했다.

 

2001 1 15. "한빛은행 청문회" 위원이었던 당시 한나라당 엄호성 의원은 "박지원 전 장관이 단국대 편입학 당시 조선대학교 상학과로 속여 허위 성적 증명서를 제출, 불법으로 편입학 했다는 의혹 제기" 였다. 엄 의원은 또 “지난해 12 15일 이 같은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은밀히 단국대에 학적 변경 요청을 했다”며 박 전 장관이 단국대에 제출한 학적 정리 청원 서류를 제시했다.


학적정리 청원서에는 “본인인 광주교육대학 졸업증명서를 제출하고 귀 대학의 편입허가를 받았으나 최근 학적부를 조회한 결과 오류를 발견해 광주교대의 졸업증명서를 다시 제출하니 학적을 정리해 주길 바란다고 적혀 있다.

 

이에 대해 박지원은 “나는 분명히 광주교육대를 졸업하고 광주교육 대 성적증명서 제출하고 입학허가를 받았다”며 “학적 문제를 최근 제3 자를 통해 조선대를 다닌 적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확인해 보니 잘못돼 있어 정정신청을 했다”고 해명했다.


박 전 장관은 그러면서 “내가 동창회 고문을 하기 위해 졸업 후 교문을 수억을 들여 해줬다”며 “(편입학 당시 학력이 조선대로 돼 있는 것은) 내가 알 바가 아니며 정정신청을 해 대학으로부터 학적 정정이 됐다는 확 인서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 문제는 청문회와 관련이 없기에 답변하지 않겠다”고 일축 했다.

 

대학교 편입학에는 2가지가 있다.

정규 대학과정 1년을 마치고 대학2학년에 편입하는 방법과 대학과정 2년을 수료 후 3학년 과정에 편입하는 방법이다. 박지원 의원의 경우 대학 3년에 편입하는 케이스에 해당한다.

 

그 당시 60년대 편입학 모집 공고를 보면 다음과 같이 동일 학과 2년 이상 수료하는 자가 기본이다. 그리고 정규 대학과정 2년 이상 수료한자로서 동일 전공자를 편입학 대상자인 것이다. 물론 대학에 따라 동일 전공 여부는 다를 수 있다는 가정이 성립하더라도 대학과정 2년 이상 수료는 필수 이다.

 

따라서 공식 프로필에 적힌 1964년 단국대 입학은 부정입학일 가능성이 높다. 광주 교육대를 졸업하는 시기가 1965 2월 이라면 프로필 상의 1964년 단국대 입학은 절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1966년 대규모 위조단의 검거로 조선대 허위 증명서를 가지고 단국대 교직원들과 결탁하여 수많은 학생들을 단국대에 부정 입학시켜 준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박지원도 그 중 한 명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광주 교육대 졸업도 전혀 믿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의 자서전을 보면, ‘광주교대 (3) 재학 시 학생회장으로 당선되어, 6.3사태 데모주동자로 제적되었다고 되어 있다. 그러니까 박지원의 자서전이 사실이라면 박지원은 광주교대를 졸업하지 않았다.


만약 박지원이 끝까지 광주교대를 졸업했다고 주장한다면, 박지원의 자서전은 진실을 밝힌 자서전이 아니라 거짓말로 된 창작소설일 가능성이 크다.

 

더 웃긴 것은 단국대다. 만약 박지원으로부터 학적 정정 신청을 받았다면, 단국대는 30년이 넘은 뒤의 광주교대 졸업증명사가 진실인가를 따지는 소정의 규정절차를 밟았어야 한다. 그러지 아니하고 박지원 의원의 요구대로 학적 변경을 해주었다면 이것은 담당자의 월권이며 엄연한 불법이다.

 

자서전을 믿는다면 분명 박지원은 광주교대를 졸업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단국대 편입학 자격이 없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단국대 출신이라는 점은 원천적으로 무효가 된다. 의문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64년에 편입학한 박지원은 65 4월에 군대에 가서 67 9월에 제대하고, 68년 복학하여 1년 다니고 69 2월 졸업한다. 단국대에 편입한 지 불과 2년 만에 졸업하는 셈이다.

 

다시 말하지만, 64년은 광주교대에 다니고 있어야 할 때다. 그런 박지원이 어떻게 64년에 단국대를 다니고 군복무 기간을 뺀 나머지 1968년 한 해를 다닌 후 불과 2년 만에 졸업했을까?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다. 그리고 박지원은 후일 조선대로부터 명예박사학위를 받는다. 그의 프로필엔 지금도 조선대 명예박사학위가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




1966 3 22일 동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