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6월/6월 7일

음반 사전심의제 폐지

산풀내음 2017. 5. 3. 00:07

1996 6 7,

음반 사전심의제 폐지

 

1995 12월에 개정된 음반 및 비디오물에 관한 법률(음미법)1996 6 7일부터 발효되어, 가요음반에 관한 사전심의가 폐지되었다. 그 동안 『창작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헌 규정』이란 비판이 끊이지 않았던 이 제도의 폐지로 창작자들의 표현영역은 훨씬 넓어졌다. 반면 음반 유통에 대한 칼자루를 휘두르던 공연윤리위원회의 권한은 대폭 축소되게 됐다.

 

키다리 미스터 김’ (이금희, 1966, 단신인 박정희 대통령의 심기 불편), ‘거짓말이야’ (김추자, 1971, 불신 조장), ‘물 좀 주소’ (한대수, 1974, 물고문 연상), ‘한잔의 추억’ (이장희, 1975, 가사 퇴폐), ‘고독한 디제이’ (이재성, 1986, 다운타운 DJ 사기 저하), ‘시대유감’ (서태지와 아이들, 1995, 사회비판적 가사).

 

1996 6 7일 음반 사전 심의제가 폐지되기 전까지의 금지곡 사유는 어처구니없는 것들이 부지기수다. 특히 박정희 정권 때인 1975년엔 한 해에만 무려 225곡이 무더기로 금지곡 명단에 올랐다. 이유는 대부분 ‘퇴폐’(패배적, 자학적, 퇴폐적 가사)와 ‘불온’(국가안보, 국민총화에 악영향)이었다. ‘돌아와요 부산항에’, ‘아침이슬’ 같은 국민적 애창곡이 금지곡이 된 이유는 아직도 불분명하다. 당시 두 노래에 붙여졌던 금지 이유는 ‘사유 없음’이었다.

 

 

1970, 80년대 LP판이나 카세트테이프 맨 뒷부분에는 ‘어허야 둥기둥기’ 같은 이른바 ‘건전가요’를 첨부해야 발매가 가능했다. 당시 음반을 내려면 곡과 가사를 먼저 공연윤리위원회에 제출한 뒤 만들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야 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완성품을 다시 제출해 원안대로 만들어졌는지 건전가요를 빼지는 않았는지 ‘이중심의’를 통과해야 했다.

 

외국곡 음반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비틀스의 ‘레벌루션(Revolu-tion)’은 혁명을 비아냥거리는 가사가 들어 있다는 이유로, 러시아인을 비판한 스팅의 ‘러시안스(Russians)’는 곡명 때문에 금지곡이 됐다. 그래서 국내에서 발매된 오래된 외국곡 LP판을 보면 황당한 경우가 많다. 한두 곡의 금지곡을 삭제하거나 금지곡 대신 엉뚱한 곡을 집어넣어 오리지널 앨범에는 없는 곡이 들어간 ‘한국에만 있는 편집판’이 나왔던 것이다.

 

개정된 새로운 음비법은 가요음반에 대해 그 동안 공연윤리위원회의 사전심의를 의무화했던 조항을 `미리 심의를 받을 수 있다`고 바꿔 사전 심의제도를 사실상 폐지했다. 그러나 이와 함께 음반 발매 5일 전에 견본을 공륜에 납본토록 하면서, `헌법질서에 위배되거나 국가의 권위 또는 이익을 손상할 우려가 있는 내용, 미풍양속을 해치거나 사회질서를 문란하게 할 우려가 있는 내용에 대해서는 심의를 할 수 있다`는 단서조항을 뒀다. CF, 포스터, 재킷 등 선전물의 경우에도 똑같다.

 

이 법은 또 비디오물을 `영상이 유형물에 고정되어 재생될 수 있도록 제작된 물체로서 테이프 형태의 것과 디스크 기타 신소재 형태의 것을 말한다.`고 정의, 그 동안 관리 대상에서 빠졌던 컴퓨터 관련 영상물들을 새롭게 포함시켰다. 하지만 공중위생법을 통해 이미 관리되고 있는 컴퓨터게임 기구와 기판은 적용대상에서 제외했다.

 

외국에서 만들어진 음반이나 비디오물의 수입은 공륜의 추천만으로 가능하도록 절차를 간소화 하면서, 개인이 비영리 목적으로 들여오는 20개 이내의 물량이나 이사물품은 이를 면제시켰다. 개인 반입물의 경우에도 음란물 등 내용에 문제가 있을 때는 공륜의 심의와 추천을 거쳐야 하도록 했다.

 

외설적 가사나 헌법적 가치를 전 면 부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가요가 나와 위법성이 발견되면 음비법이 아닌 청소년보호법, 풍속영업에 관한 법률이나 국가보안법 등 실정법에 따라 처벌받게 된다. 최종적으로 사법당국의 판단에 맡겨지게 된 것이다. 자유의 폭이 신장된 만큼 그에 상응하는 자율적 책임은 가요 종사자들의 몫이다. 일각에선 『심의가 없어진 틈을 악용, 저질. 외설 가요가 급증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때문에 어느 때보다 창작자와 방송매체 등 가요 관계자들의 책임의식은 물론 옥석을 가려내는 소비자들의 안목이 절실히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