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6월/6월 13일

`미란다 원칙` 고지 의무화 판결

산풀내음 2017. 5. 5. 23:07

1966 6 13,

`미란다 원칙` 고지 의무화 판결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당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지 않을 권리가 있으며 변호사를 부를 권리가 있다.”

 

미란다 원칙(Miranda warning, Miranda rights, Miranda rule)에 따라 경찰이 범죄 혐의자 체포 시 의무적으로 읊어야 하는 대사다. 이 미란다 원칙이 확립된 것은 한 강간범 때문이었다.

 

동영상으로 내용을 감상하시고자 한다면 아래의 링크를 눌러주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7lwGFBGCVqI&t=75s

 

1963년 미국 애리조나 주 피닉스라는 도시에서 에르네스토 미란다 (Ernesto Miranda)라는 청년이 18살 난 소녀를 강간한 혐의로 체포된다. 소녀는 사막에서 이틀 동안 끌려 다니며 강간을 당했다. 소녀는 풀려난 뒤 경찰에 가해자 이름을 댔다. 경찰은 즉시 미란다를 체포해 경찰서로 끌려왔다. 그런데 미란다는 범행을 부인했다. 이에 경찰은 더욱 강도 높은 추궁을 통해 마침내 자백을 받아낸다.

 

 

 

 

자술서 상단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인쇄돼 있었다. “나는 나의 법적 권리에 대해 완벽하게 숙지했고 내가 하는 진술이 나에게 불리하게 적용될 수 있음을 알고 있다.” 하지만 경찰이 이를 알려준 적은 없었다. 즉 경찰은 제대로 된 권리의 내용을 미란다에게 전해 주지 않았던 것이다.

 

경찰조사에서 자신의 범행사실을 자백하고 진술조서에까지 서명을 마친 미란다가 돌연 재판과정에서 강요된 자백이라며 진술을 번복함으로써 재판이 잠시 차질을 빚긴 했으나 법원은 미란다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고 최고 30년의 중형을 내렸다. () 대법원에서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미란다의 무죄를 주장하는 `미국 자유시민 연맹`이 연방 대법원으로까지 사건을 끌고 가자 1966 613일 연방대법원에서 경천동지할 판결이 나왔다.

심문 중 변호사를 입회시킬 수 있는 권리를 고지 받지 못했고, 어떠한 경우에서든 유효하게 보호받아야 하는 자기부죄 진술 거부권이 보장되지 않았음이 명백하다. 이러한 피고인의 권리를 고지하지 않은 경우에는 증거로서 허용될 수 없다!”

대법원 판사들은 5 4로 미란다의 무죄를 선고한다.

 

 

 

이 원칙적인 판결에 분노도 터져 나왔다. 당장 경찰들이범인을 잡으라는 거냐, 말라는 거냐고 아우성을 쳤다. “변호사가 달라붙어 있는 넘을 어떻게 심문하란 말이냐.” 일반 시민들도 대법원이범죄 예방이나 범죄 피해자의 권리보다는 범죄자의 권리를 더 존중하고 있다.”고 항의했다. 그러나 법의 판결은 법의 판결이었다. 미국 각지의 경찰들은 미란다 원칙이 적혀진 종이를 몰래 들고 다니며 체포한 이의 귓방망이를 잡고 그 대사를 읊어야 했다.

 

하지만 대법원에서 무죄를 인정받았다고 해서 미란다가 좋아할 일은 못되었다. 미란다의 동거녀가 새로운 증언을 했고 경찰은 다시 미란다를 체포했다. 물론 미란다 원칙을 또박또박 불러준 후에. 미란다는 10년의 징역을 살고 나왔지만 그에게는 더 큰 횡액이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미란다 원칙을 만든 그 미란다요!”를 뻐기고 다니던 그는 술집에서 시비를 일으켰고 한 남자가 미란다의 목을 칼로 그어버린 것이다. 미란다는 극심한 고통 속에 서서히 죽어갔고 사람들은 미란다를 돕는 일에 적극적이지 않았다고 전한다. 물론 미란다를 죽인 이를 체포할 때에도 미란다 원칙은 낭랑하게 암송됐다. 미란다는 그렇게 젊은 나이에 허무하게 죽지만 그 이름은 전 세계 대부분 나라의 경찰들에게 생생하게 전달된다.

 

결코 위대하지도 뛰어나지도 않았던, 아니 인간 이하의 범죄자였던 한 청년의 이름은 그렇게 인류가 발견한 인권 존중의 한 상징으로 역사에 남게 된다. 1966 6 13일 미란다 원칙이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