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6월/6월 13일

미군장갑차에 치여 여중생 2명 사망

산풀내음 2017. 5. 7. 15:09

2002년 6월 13일,

미군장갑차에 치여 여중생 2명 사망

 

2002 6 13일 오전 10 45분경 경기도 양주군 광적면 효촌리 56번 지방도에서 대대 전투력 훈련을 위해 이동 중이던 부교 운반용 장갑차가 앞서 갓길을 걷고 있던 여중생 신효순, 심미선양을 깔고 지나가 두 명 모두 그 자리에서 숨졌다.

 

사고 도로는 인도도 따로 없는 편도 1차선의 좁은 도로로, 주민들은 평소 갓길을 인도 삼아 통행해 왔다. 그런데 유족들은 당시 사고 차량의 너비가 도로 폭보다 넓은 데다 마주 오던 차량과 무리하게 교행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이번 사고는 이미 예견된 살인행위였다고 주장했다.

 

미군에게 살해당한 심미선과 신효순. 사람을 이런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 진정어린 사과와 진상규명은 차치하고 100만원으로 사건을 무마하려고 한 미국넘들을 이해할 수가 없다.

M113 armored personnel carrier

 

어릴적부터 단짝친구였던 미선과 효선(조양중학교 2학년)은 이 날이 지방선거 투표일이어서 학교가 쉬었고 마침 친구 생일파티가 있어서 마을에서 600m 정도 떨어진 식당으로 가고 있던 중이었다.

 

그리고 미 2사단 44공병대 소속 궤도차량들은 이날 아침 일찍 무근리 훈련장에서 전술평가를 하고 오전 9 20분께 덕도삼거리 부근 집결지로 행진을 시작했다. 메이슨 대위가 군용 지프를 타고 맨 앞에 있었고 그 뒤로 M113 장갑차가 뒤따르고 있었다. 56번 지방도로를 달리다가 커브길에서 미처 미선과 효순을 발견 못하고 사고가 난 것이다. 그런데 왜 발견을 못한 것일까? 궤도차량에는 전방을 주시하며 운전병에게 방향 지시를 하는 병사가 있었는데 …, 그리고 앞에 메이슨 대위의 선도차량도 있었는데사고를 과실로 내기도 어려운 상황이었을텐데

 

미군당국은 사고 당일 미8군사령관의 유감의 뜻을 전하고, 다음날인 6 14일에는 미 2사단 참모장 등이 분향소를 직접 방문해 문상하고, 피해 유가족에게 각각 위로금 100만원씩을 전달하는 등 발 빠르게 사고 수습에 나섰다. 하지만 정작 사고의 진상 규명에는 소극적으로 나왔다.


눈물의 장례식

 

미군측은 6 14일 저녁 사고현장에서 유족들을 상대로 일방적인 브리핑을 진행한 데 이어 6 19일 미2사단에서 한미 합동조사 결과를 공식 발표했다.

 

미군측은 “이번 사고는 결코 고의적이거나 악의적인 것이 아닌 비극적인 사고”임을 강조하며 사고 원인으로 차량 구조상 오른쪽 시야에 사각지대가 있어 운전병이 학생들을 발견할 수 없었고, 관제병이 커브를 돌아 약 30m 전방에서 학생들을 발견하고 운전병에게 경고하려 했지만 소음과 타 무전 교신 등에 의한 통신 장애로 제때에 경고가 전달되지 못해 발생한 우발적 사고라고 주장했다.

 

또한, 당시 차량은 시속 8~16 km의 속도로 중앙선을 넘지 않고 계속 직진 운행 중이었으며 마주 오던 장갑차는 서로 교행하지 않고 사고 차량과 1m 떨어진 지점에서 정차했다고 밝혀 그 동안 유족들이 제기해온 사고차량이 마주 오던 장갑차와 교행하면서 갑자기 우측 갓길로 틀었을 가능성에 대해 전면 부인했다.

 

하지만 이 발표는 설사 차량 구조상 시야가 제한되더라도 운전병의 고개 방향에 따라 그만큼 시야가 확보될 수 있는 점 통신 장애란 통신장비 고장이거나 헬멧을 착용하지 않는 이상 발생하기 어렵다는 점 궤도차량의 경우 마찰계수가 커서 8~16km의 느린 속도로 운행한다면 제동장치 작동 시 보통 그 자리에서 정지하게 되는데, 어떻게 피해학생 두 명이 일렬로 누워 두개골이 다 깨질 정도로 완전히 밟고 지나갈 수 있는지 우측 갓길 주변에 갑자기 우측으로 궤도를 틀면서 생긴 것으로 보이는 아스콘이 깨지고, 풀이 눌린 흔적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는지 등의 의혹들에 대해 속 시원한 대답을 해주지 못하고 있다.

 

특히, 차량 속도의 경우 지난 현장 브리핑 때는 16~24km라고 했다가 절반으로 줄여서 발표했다. 주민들에 대해 훈련사실을 사전 통보했는지에 대해서도 처음에는 통보했다고 했다가 마침 그 자리에 참석한 마을이장이 전혀 그런 사실이 없다고 반박하자 죄송하다며 바로 말을 바꾸기도 했다. 거기에다 6 28일 미2사단 공보실장이 라디오 프로에서 “그 누구도 책임질만한 과실이 없다”고 말하면서 비난여론은 급속히 확산되어 갔다.

 

사태가 점차 심상치 않게 발전할 낌새를 보이자 미군당국은 7 3일 운전병과 관제병을 과실치사죄로 미 군사법원에 기소하는 한편, 라포트 주한미군사령관의 사과를 전했다. 그와 별도로 한국 검찰도 관련 미군들에 대해 자체조사를 벌이기로 했다. 이는 유족들이 지난 6 28일 차량 운전병과 관제병, 2사단장 등 미군 책임자 6명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의정부지청에 고소하고, 미측의 재판권 포기를 요청한 데 따른 것이다.

 

하지만 미군측은 신변 위협을 이유로 검찰의 소환조사에도 제대로 응하지 않았고, 더 이상 명분이 없던 법무부는 7 10, 사상 처음으로 미측에 재판권 포기 요청서를 보냈다. 그러나 8 7일 미군당국은 “동 사고가 공무 중에 일어난 사고이고, 이제껏 미국이1차적 재판권을 포기한 전례가 없다”는 이유를 들어 재판권 포기를 거부했다. 한국 검찰이 자체 수사 결과 미군측의 수사와 기본적으로 같은 결과를 발표한 지 이틀만이었다.

 

이후 11 18일부터 23일까지 동두천 캠프 케이시 내 미 군사법정에서 열린 군사재판에서 배심원단은 기소된 미군 2명 모두에게 무죄 평결을 내렸다. 재판장에서부터 배심원까지 모두 현역 미군인으로 구성된데다 사건의 진상조차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진행된 재판 결과란 어차피 뻔한 것이었다. 이들 미군은 무죄 평결이 있은 지 5일만인 11 27, 짤막한 사죄성명을 발표한 뒤 유유히 한국을 떠나갔다.

 

이는 곧 수많은 한국민들의 저항을 불러왔다. 너무도 비상식적인 재판 결과에 그 동안 이 사건에 별 관심이 없던 사람들까지 항의대열에 합류하면서 전국민적인 반미열풍을 불러왔다. 이에 위기를 느낀 미군당국은 11 27일 주한 미 대사를 통해 부시 대통령의 간접적인 사과를 전하고, 12 13일에도 부시 미대통령이 김대중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다시 한번 유감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 당국간 SOFA 개선방침에도 합의했다. 하지만 국민들의 분노를 가라앉히는데는 역부족이었다. 미군당국은 이번 사고와 관련해 무죄 평결 직전 사고차량 소속 중대장, 중대 선임하사, 소대장, 소대 선임하사 등 훈련 지휘관 4명에게 견책의 징계를 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기도 했다. 한편, 유족들은 국가배상을 신청해 2002 9, 각각 19천여만원 상당의 배상금을 받았다.

 






누가 ‘한줌의 반미주의자’라고 했던가? ‘대~한민국’을 외치던 바로 그 자리가 ‘소파(SOFA) 개정’을 외치는 목소리로 메워졌다. 127일 광화문 네거리에서 열린 미군 장갑차 희생 여중생 추모집회에는 17000여명(경찰 추산)의 시민, 학생이 모였다. 중·고·대학생과 주부, 부모 손 잡고 나온 초등학생까지 참석자들의 면면은 다양했다. “미국 대사관으로 쳐들어가자”는 구호가 나오기도 했으나, 추모집회는 별다른 불상사 없이 평화롭게 진행됐다. 이날 촛불시위를 비롯해 주말인 7, 8일 여중생을 추모하고 소파 개정을 촉구하는 반미 집회가 서울 부산 광주 등 전국 곳곳에서 열렸다.

의정부 미군기지 앞에서 효순이와 미선이를 살려내라며 시위하는 시민들을 바라보며 비웃는 미국 흰둥이와 깜둥이 그리고 군속으로 보이는 갈보년. 이 년이 깔렸어야 하는데 세상은 정의롭지 못하다.

 

 

6 13일 여중생 2명 미군 궤도차량에 깔려 사망. 8군 사령관 유감 성명 발표

6 19일 한․미 합동 조사 결과 발표

6 26일 여중생 범대위 결성 및 1차 범국민대회

6 27일 유가족, 의정부지청에 미군 관련자들 고소

7 3일 미군측, 운전병과 관제병을 과실치사 혐의로 미 군사법원에 기소, 주한미군사령관 유감 표명

7 10일 법무부, 미측에 1차적 재판권 포기 요청

7 20일 법무부, 피해자 1인당 196백여만원의 배상금 지급 결정

7 29일 의정부지청, 미군 피의자 2명에 대한 소환 조사

7 30일 주한 미대사, 한국 국방장관과 만난 자리에서 사과 표명

8 2일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 한미 외무장관 회담시 사과 표명

8 5일 의정부지청, 사고 조사 결과 발표

8 7일 미군측, 한국 정부의 형사재판권 포기 요청 공식 거부

8 9일 주한미군사령관, 국방부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다시 한번 사과 표명

8 13일 토머스 B. 파고 미 태평양사령관, 국방부 장관에게 사과 전달

8 29일 존 볼튼 국무부 국제안보차관, 한미협회 연설에서 파월 국무부장관을 대표하여 사과 표명

9 18일 여중생 추모비 제막식

11 18~20일 미 군사법정에서 관제병 재판 진행. 무죄 평결

11 21~22일 미 군사법정에서 운전병 재판 진행. 무죄평결

11 27일 부시 미대통령, 주한미국대사 통해 간접 유감 표명

12 2~11일 여중생 범대위 미국에 대표단 파견, 항의시위

12 5일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 한미 국방장관 공동기자회견에서 유감 표명

12 11일 한미 외교․안보 당국간 회의에서 SOFA 운영 개선 특별팀 구성 합의

12 13일 부시 미 대통령, 김대중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유감 표명

12 14일 여중생 사건 이후 최대 규모의 범국민대회 (전국적으로 약 10만여명 집결)

12 16일 미군당국이 무죄 평결 직전 사고차량 소속 중대장, 중대 선임하사, 소대장, 소대 선임하사 등 훈련 지휘관 4명에게 견책의 징계를 한 것으로 뒤늦게 알려짐

 

자료 :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http://usacrime.or.kr/doku/doku.php?id=start

 



약자의 설움 ... 더 강해져야 한다. 미군에 의한 안보가 아니라 우리의 힘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