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6월/6월 28일

제6회 스웨덴월드컵서 브라질 우승, 펠레 일약 스타로 부상

산풀내음 2017. 5. 21. 07:11

1958 628,

6회 스웨덴월드컵서 브라질 우승, 펠레 일약 스타로 부상

 

6 FIFA 월드컵은 1958 6 8일부터 6 29일까지 스웨덴에서 개최되었다. 이번 대회는 역사상 가장 뛰어난 공격수인 브라질의 펠레와 가장 뛰어난 골키퍼인 소련의 야신이 동시에 출전했다. 펠레(Pele, 1940 - ) 17살 소년이었고, 야신은 1956년 멜버른 올림픽에서 소련을 금메달까지 끌어올린 백전노장이었다.

 

그러나 펠레는 자신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한 반면, 야신은 준준 결승전에서 홈팀 스웨덴에 2골을 허용하며 주저 앉고 말았다. 아마추어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사실 펠레, 가린샤, 디디, 바바로, 이어지는 브라질의 공격 4인방은 역대 최강이었다.

 

브라질은 소련, 잉글랜드, 오스트리아와 함께 4조에 속했다. 첫 상대는 오스트리아로 3 0으로 상큼한 출발을 하였지만, 다음 상대인 영국과는 0 0으로 무승부였다. 그리고 다음 상대는 소련이었다. 당시 소련은 역대 최고의 골키퍼라 불리는 레프 야신이 버티고 있었다. 소련은 월드컵에는 처녀 출전국이었지만 1956년 올림픽에서 우승한 대표팀의 주축 멤버들을 그대로 끌고 온터라 그들의 실력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었다.

 

이 경기는 브라질에게 매우 중요한 경기였다. 소련에게 지면 개최국인 스웨덴과 8강전에서 붙게 될 가능성이 높았고, 만약 잉글랜드가 오스트리아와의 경기에서 이기면 탈락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비센치 페올라 감독의 4-2-4 전략과 더불어 펠레와 가린샤 등의 활약으로 소련을 2:0으로 누르고 8강에 진출한다. 비록 펠레는 이 경기에선 득점을 올리지는 못 했지만 가린샤, 디디, 바바 등 팀 선배들과 함께 월드컵 사상 최고의 골키퍼로 평가 받고 있던 야신이 지키고 있는 소련의 문전을 유린해 2-0 완승을 이끌어낸 1등 공신이라 할 수 있었다.

 

다음 4강의 상대는 프랑스. 프랑스에는 쥐스트 퐁텐과 레이몽 코파라를 앞세워 순항하고 있었다. 그리고 명성에 걸맞게 퐁텐의 선제골로 프랑스가 앞서나가게 된다. 그러나 펠레는 여기서 월드컵 최연소 헤트트릭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우며 당대 최고의 골잡이 퐁네트가 이끄는 프랑스를 5:2로 격파했다.

 

드디어 8강에서 소련을 2:0으로 그리고 4강에서 서독을 3:1로 누르고 결승에 진출한 개최국 스웨덴과 6 28일 결승을 치르게 되었고, 결국 5:2로 스웨텐을 누르고 브라질이 월드컵 우승컵을 웅켜졌다.

 

Pele and his Brazil teammates pose before the 1958 World Cup final against Sweden in Stockholm. (AP)

 

이날 브라질 승리의 원동력은 신장 168cm, 체중 67kg 17세 소년 펠레였다. 스웨덴은 전반 4분 만에 닐드 리트홀름이 골을 넣으면서 기세를 잡았다. 그러나 브라질은 곧바로 반격에 나서 바바가 두 골을 넣은 덕분에 전반을 2 1로 마칠 수 있었다. 경기는 스웨덴이 생각한 것처럼 풀려나가지 않았다. 펠레는 다시 한번 그의 능력을 증명했다.

 

2-1로 앞서던 후반 10. 날아오는 공을 가슴 트래핑으로 수비수 오른쪽으로 떨어뜨리며 따돌린 펠레는 공이 그라운드를 맞고 튀어 오르자 다시 오른발로 높이 띄워 달려드는 수비수를 따돌린 뒤 떨어지는 공을 발리슛하는 환상의 묘기를 연출했다. 이 공이 골문으로 보기 좋게 빨려 들자 ‘적군’ 스웨덴 관중들도 이 흑인 소년 펠레의 놀라운 개인기에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바로 이 골이 ‘월드컵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골’로 불리는 골이다.

 

가히 이번 스웨덴월드컵은 훗날 ‘축구황제’라는 칭호를 얻은 펠레를 위한 대회였다. 수줍음 잘 타는 앳된 얼굴의 17세 소년 펠레는 등번호 ‘10’을 달고, 프랑스전 해트트릭과 결승전 2골 등 6골을 터뜨리며 브라질에 첫 줄리메컵을 안겼다.

독일축구의 ‘카이저(황제)’ 프란츠 베켄바워는 훗날 펠레를 두고 “누구와도 절대로 비교할 수 없는 가장 위대한 선수”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전문가들도 아직까지 감히 펠레에 근접할 선수는 없다고 입을 모았다.

 

- 6회 스웨덴 월드컵에서의 펠레의 명장면들 -



펠레를 스타로 만드 발리슛



 

에드손 아란테스 도 나스시멘토(Edison Arantes do Nascimento, 1940 10 23 ~ )가 본명인 그는 브라질 미나스 제라이스주의 빈민가에서 태어났지만 축구공 하나로 명예와 부를 얻었다. 펠레(Pele)진주라는 뜻의 애칭이다. 펠레는 13세에 브라질 프로축구 산토스에 입단하면서 본격적으로 축구의 인생을 걸었다.

 

그리고 1969 11 20일 브라질 북쪽 살바도르에서 열린 909번째 경기에서 1,000골을 달성하는 기록을 세웠다. 당시까지 1,000골이상 보유자는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빈더(Franz Binder)와 브라질의 아르투르 프리댄라이히(Art(h)ur Friedenreich)로 펠레는 역사상 세번째 1000골 보유자가 되었다. 펠레의 통산 1000골 기록달성을 축하하며 기록달성 다음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우정당국은 우표2백만장을 발행했으며, 브라질 정부는 이 날을 공휴일로 선포하였다.

 

펠레는 은퇴할 때까지 선수시절을 통해 총1,364게임에 출전해 무려 1,281골을 성공시켰다. 펠레는 1971 7 18일에 은퇴하였다가 1974년 미국에 축구 붐을 일으키겠다고 코스모스에 입단, 마지막 투혼을 불사르고 1981년 재은퇴하였다. 1998년 초 카르도스 대통령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감투가 거북하다고 체육부 장관직을 던져버리고 축구해설가로 마이크를 잡은 펠레, 그는 영원한 자유인이었다.

 

그리고 브라질은 1958년 스웨덴 월드컵 우승 이후 1971년 펠레의 은퇴하기 전까지 1962년 칠레월드컵, 1970년 멕시코월드컵에서 우승해 ‘3회 우승한 나라가 영구 보유한다 FIFA의 규약에 따라 줄리메컵을 영구히 소유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