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6월/6월 29일

1986년 멕시코 월드컵서 `축구의 신` 마라도나 등장

산풀내음 2017. 5. 22. 20:08

1986 6 29,

1986년 멕시코 월드컵서 `축구의 신` 마라도나 등장

 

1980년대 중반으로 들어오면서 세계 축구는 또 한 번 커다란 변화를 맞게 된다. 그때까지 축구는 공격과 수비로 양분돼 있었다. 그러나 1980년대로 넘어오면서 허리, 즉 미드필드의 중요성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흔히 말하는 '현대축구'의 효시격인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경기를 지배하기 위해 허리를 먼저 점령해야 했고, 이를 위한 압박과 치열한 중원 싸움이 본격화됐다.

 

1970년 열린 정기 총회에서 FIFA(국제축구연맹) 13회 대회 개최국을 콜롬비아로 결정했다. 하지만 문제는 월드컵 개최를 3년여 앞둔 시점에서 일어났다. 1983년 콜롬비아는 자국의 경제 상황이 어려워 FIFA에 대회 개최 포기 신청을 했다. 경기장은 물론이고 대회를 준비하는데 들어가는 막대한 자금을 동원할 능력이 도저히 없었기 때문이었다. FIFA는 다급해졌다. 우여곡절 끝에 멕시코로 결정되었다. 1968년 올림픽, 1970년 월드컵, 1979년 유니버시아드대회, 그리고 1893년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 등 대규모 국제대회 경험이 많은데다 짧은 기간에 경기장 및 관련시설을 보완할 수 있는 나라였기 때문이다. 월드컵 역사상 최초로 2번째 대회를 개최하는 나라가 탄생했다.

 

그러나 유럽의 강한 반발에 부딪혔다. 지난 1970년 대회에서 고지대 핸디캡을 톡톡히 맛본 유럽은 FIFA에 개최국 변경을 주장했다. 하지만 FIFA의 입장은 강경했다. 그리고 1985년 멕시코에 발생한 대지진의 여파로 월드컵이 무산될 위기도 있었다. 1985 9 19일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 시티를 강타한 리히터 규모 7.8의 대지진과 이틀 뒤 6.8의 여진이 이어지면서 도시 전체를 아비규환으로 만들었다. 2만여명의 사상자와 1천억 달러의 재산 피해를 낸 대재앙으로 멕시코는 커다란 위험에 빠졌지만 온 국민이 하나로 뭉쳐 지진 피해를 복구하고 착실하게 월드컵을 준비했다.

 

1985 Mexico City

 

121개국이 참여한 예선을 거쳐 본선에 진출한 24개국 (개최국과 전 대회우승자 포함) 1986 5 31일부터 1986 6 29일까지 멕시코 12개 경기장에서 52경기를 치뤘다. 개최 자체가 불투명했던 멕시코 대회였지만. 이 대회에서 펠레에 이어 또 한 명 `축구의 신`이 등장했다.

 

 

1986년 월드컵은 그야말로 마라도나(Diego Armando Maradona Franco, 1960 10월 30 ~ )를 위한 대회였다. 지난 두 차례 월드컵에서 마라도나는 아픔을 맛봤다. 1978년 대회에서는 대표로 발탁됐지만 당시 아르헨티나 감독이 '다음에 기회가 있다.'며 선배들에게 양보할 것을 요청해 물러났고, 1982년 대회에서는 상대팀의 집중 마크를 당해 재능을 다 발휘하지 못했다.

 

절치부심하며 기다린 1986년 월드컵. 마라도나는 무르익은 기량을 뽐내며 26세의 많지 않은 나이로 세계 축구계를 평정했다. 월드컵이 시작되자 아르헨티나는 이탈리아, 불가리아, 대한민국과 함께 A조에 편성되었다. 첫경기에서 아르헨티나는 마라도나의 3어시스트로 대한민국을 농락하며 3-1의 승리를 거둔다.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동점골을 넣으며 1-1 무승부를 만들고, 불가리아를 상대로 어시스트를 추가하며 2-0 승리를 이끌어내고 아르헨티나는 조 1위로 16강전에 진출한다. 16강에서는 우루과이를 만나고, 마라도나는 시종일관 압도적인 개인전술을 보여주며 우루과이를 휘젓고 다닌다. 일부에서는 이 우루과이전이 마라도나의 이 대회 최고의 경기력이라고 평가하는 전문가들도 많다. 결국 1-0으로 아르헨티나가 승리하고 8강에서 잉글랜드를 만나게 된다.

 

특히 6 22일 잉글랜드와의 8강전에서 아르헨티나의 마라도나는 ``으로 거듭났다. 그는 잉글랜드 골키퍼와 11 상황에서 공중에 뜬 공을 손으로 건드려 넣었다. 주심은 보지 못했고, 경기가 끝나고 마라도나는 "신의 손에 의해서 약간, 나머지는 마라도나의 머리에 의해서 득점한 것"이라고 애매한 인터뷰를 했는데, 그 때문에 Hand of God goal이라 불리운다. 하지만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바비 롭슨 "추악한 사기꾼의 손이다."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그가 두 번째로 뽑아낸 골은 완벽한 개인기로 빚은 신기(神技)였다. 마라도나는 센터라인에서부터 잉글랜드 수비 5명을 제치며 드리블한 뒤 득점하고 포효했다.

 


Hand of God Goal

 

그 후 8강에서 스페인을 잡고 올라온 시포가 이끄는 벨기에와의 준결승전에서 혼자 2골을 넣으며 벨기에를 침몰시켰다. 이 경기에서도 벨기에의 중앙에 겹겹히 쌓인 수비진을 30미터가량 돌파하며 골을 넣어버리는 압도적인 기량을 보여준다.

 

드디어 서독과의 결승전, 마라도나는 비록 골을 넣지는 못했지만 결승골을 어시스트해 아르헨티나에 월드컵을 안겼다. 숱한 화제 속에 끝난 멕시코 월드컵은 지금도 전세계 축구팬에게 `마라도나의 월드컵`으로 기억되고 있다.

 

Against Belgium Maradona touched the ball 98 times, more than in any other game at the World Cup.

 

어려서부터 모두에게 인정받는 초특급 유망주였으며 1976 10 20, 16세의 나이로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 소속으로 데뷔하여 아르헨티나 리그의 역대 최연소 출전 기록을 경신했다. 또한 역대 최연소인 16세에 국가대표로 뽑혔고, 1982년부터 1994년까지 네 차례 월드컵에 출전해, 1986년 우승, 1990년 준우승했다. 마라도나는 국가대표 외에도 그가 소속했던 아르헨티나의 보카 주니어스와 이탈리아의 나폴리팀에 무수한 우승트로피를 헌납했다.

 

보타 주니어스 시절. 1976년부터 1981년까지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에서 총 167경기 115골을 기록했다.

 

그는 경기장에서는 신이란 표현이 어색하지 않은 천재였지만, 사생활에선 끊임없이 광기를 뿜어낸 `문제인간`이었다. 그는 이탈리아 진출 후 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기자들에게 공기총을 쏘아대고, 툭하면 여자문제가 불거졌다. 공식적으로 마약 복용이 확인된 것은 1991년으로 코카인 양성판정을 받아 15개월간 출장 정지 징계를 받았다. 이후에도 마약을 끊지 못했고 1997보카주니오스에서 마지막 선수생활을 할때 조차 마약에 빠져 살았다. 이후 우루과이에서 마약 소지혐의로 체포되기도하고 2000, 2004년에 코카인 복용으로 인한 심장 발작증세로 병원에 실려가기도 했고 2004쿠바피델 카스트로의 도움으로 마약을 끊는데 성공한다. 또한 마라도나는 1994년 미국월드컵 조별 리그 도중 도핑 테스트에서 흥분제를 복용한 사실이 드러나 쫓겨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