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7월/7월 2일

아프리카 빈곤 문제 해결 촉구하는 ‘라이브 8’ 공연, 세계 10개 도시에서 개최

산풀내음 2017. 5. 30.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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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빈곤 문제 해결 촉구하는라이브 8’ 공연, 세계 10개 도시에서 개최

 

76일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시작되는 G8(선진 8개국) 정상회담을 앞두고, 2일 세계 10개 도시에서 아프리카 빈곤 퇴치를 위해 "Make Poverty History (빈곤이라는 단어을 역사속으로 보내버리자!)"라는 구호 아래 콘서트라이브 8’가 열렸다. 이는 밥 겔도프가 자신이 지난 1984년에 개최한 Live Aid의 연장선상에서 개최한 것이었다.

 

개최 국가는 영국(런던, Hyde Park), 프랑스(파리, Palais de Versailles), 독일(베를린, Siegessaule), 이탈리아(로마, Circus Maximus), 미국(필라델피아, Museum of Art), 캐나다(배리, Park Place), 일본(도쿄, Makuhari Messe), 러시아(모스크바, Red Square). 이렇게 여덟 개 도시가 정해졌고, 아프리카를 대표해 남아프리카 공화국(뉴타운, 요하네스버그, Mary Fitzgerald Square), 마지막으로 스코틀랜드(에든버러, Place in Murrayfield Stadium)가 추가되었다.

 


 

1984년 밥 겔도프는 영국 BBC 방송에서 에티오피아의 기근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접한다. 그리고 그는 미지 유어, 듀란듀란, U2의 보노, 스팅 등 41명의 록스타과 함께 밴드 에이드(Band Aid)라는 이름으로 ‘Do they know it's christmas?’를 발표한다. (제목에서 짐작하듯이, 연말연시의 꽃인 크리스마스를 지나칠 뻔한 소외된 이웃들을 위해 만들어진 노래라고 할 수 있겠다.) 이 곡은 350만장을 판매하며 800만 파운드의 기금을 조성하는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이 음반의 성공은 미국 아티스트들을 자극하였다. 그리고 그 유명한 "We are the world"의 기획이 마련되었다.

 

밥 겔도프는 1985년 자선 콘서트 라이브 에이드(Live Aid) 기획하였다. 그 해 7 13일에 열린 이 공연은 영국 웸블리 스타디움과, 미국 JFK 스타디움을 동시에 연결하여 전세계 100개국 15억 시청자들에게 전달되었다. 1986년 밥 겔도프는 '사회를 바꿀 수 있는 음악의 힘'이라는 공로로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올랐고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명예 기사 작위도 받았다.

 

Bob Geldof

 




그럼 자선공연의 시초는 누구일까?

 

1971 3, 방글라데시(당시 동파키스탄)는 서파키스탄과 분리 독립을 위해 대립했고, 결국 갈등이 심화되면서 전쟁이 발발한다. 이 과정에서 서파키스탄이 동파키스탄의 시민들을 학살하면서 30만 명 이상이 숨지고, 1천만 명에 이르는 난민이 발생했다. 이미 전년도에 초대형 사이클론으로 어려움을 겪던 방글라데시 국민들은 굶주림, 질병과 싸워야 했고, 인도 정부가 힘겹게 이들을 지원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조국의 상황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영화감독 조지 샹카르는, 그 해 8월 그의 영화 라가의 사운드트랙을 제작하고 있었던 조지 해리슨에게 대규모 자선 공연을 제안했고, 조지 해리슨은 적극 동참하기로 한다.

 

그리고 1971 8 1, 미국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역사에 길이 남는 콘서트가 열렸다. 이 날 콘서트는 낮 12시와 저녁 7시 두 차례에 걸쳐 열렸고, 티켓 4만장은 판매 4시간 만에 매진되었다. 평소 인도와 힌디 문화에 매료되어 있던 조지 해리슨은 이번 공연의 취지를 더욱 부각시키기 위해 공연의 앞부분을 벵갈 음악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중반부부터 대형 스타들이 차례로 나오면서 공연은 절정으로 치닫고, 마지막에는 조지 해리슨이 방글라데시를 위해 작곡한 노래 Bangladesh를 끝으로 성황리에 막을 내린다.

 

이 공연을 통해 모금된 총 25만 달러는 유니세프를 통해 난민들에게 구호품으로 전달되는데 사용 되었으며, 공연 실황을 담은 음반은 1973년 그래미 시상식에서 올해의 앨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특히 이 공연은 뒤에 이어서 이야기 할 초대형 자선 공연인 Live Aid에 큰 영향을 미쳤다.

 

The Concert for Bangladesh, 1971

 

 

화제를 돌려 아프리카 원조의 실상에 대해 알아보자.

 

1960년 이후 지금까지 4500억 달러의 원조금을 포함한 1조 달러의 돈이 투입된 아프리카가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집권층의 부패와 무능 때문이다. 영국의아프리카 위원회 2010년까지 23억 달러를 원조하는 스와질란드 국민은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산다. 반면 음스와티 3세 왕은 황금 번호판의 벤츠 승용차 8대 구입에 88만 달러를 넘게 썼고, 13명의 왕비가 거처할 궁전 건설에 1400만 달러를 썼다. 나이지리아에 투입된 49억 달러의 제철소 건설비 중 절반은 독재정권의 호주머니로 들어갔고, 미국이 콩고민주공화국의 독재자 모부투에게 쏟은 돈은 전용 제트기와 리무진 구입 및 궁전 건축에 들어갔다고 영국 타임스가 2일 보도했다.

 

2002년 반()부패를 공약으로 집권한 케냐 정부 각료들은 2003 172%의 임금 인상을 통해, 전 세계에서 가장 봉급이 많은 장관 그룹에 합류했고, 지난 20년간 188억 달러의 원조를 받은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화려한 국제공항을 지었다. 데일리 텔레그래프는매년 아프리카에서 비밀 계좌로 빼돌려지는 금액은 265000만 달러 규모라고 보도했다.

 

미 케이토 연구소의 크리스토퍼 프레블은아프리카 빈곤의 진정한 원인은 오랜 실정에, 부국(富國)들의 무역 보호 정책과 농업부문 보조금이라고 주장했다. 유럽과 미국, 일본에서 옥수수·면화 재배업자들과 낙농업자들에게 제공되는 수십억 달러의 보조금이야말로 빈곤에서 탈출하려는 아프리카 농부들의 시장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