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7월/7월 25일

최초의 시험관 아기 탄생

산풀내음 2017. 6. 16. 22:46

19787 25,

최초의 시험관 아기 탄생

 

1978 7 25, 영국 올드햄 병원에서 2.6kg의 건강한 여아가 태어났다. 영국의 데일리 메일지와 이브닝 뉴스지는 1면에 각각 `ITS A GIRL` `SUPER BEBE`라는 제목을 대문짝만하게 달아 이 사실을 크게 보도했다. 신의 고유영역으로 여겨온 `인간 탄생`의 일부 비밀을 인간이 훔쳐봤기 때문이다. 인류 최초의 체외수정아(시험관 아기, The world’s first test tube fertilization baby)가 탄생한 것이다. 아이의 이름은 루이스 브라운(Louise Joy Brown).

 

The team who pioneered in-vitro fertilization. on the left Cambridge, physiologist Dr. Robert Edwards holding the world's first test tube baby, Louise Joy Brown and (on the right) gynecologist Mr. Patrick Steptoe. (July 25, 1978).

 

1년 전, 나팔관이 막혀 아이를 가질 수 없었던 아기 엄마 레슬리 브라운이 상담 차 찾은 사람은 올드햄 병원 산부인과 의사 패트릭 스텝토와 케임브리지 대학의 생리학자 로버트 에드워즈(Robert Edwards, 1925 - 2013)였다. 두 사람은 12년 동안 시험관 아기 실험에 매달려 최소한 100번 이상의 실패를 맛봤지만 이 분야에서만은 베테랑이었다. 연구팀이 레슬리의 난자와 남편 존 브라운의 정자를 시험관에서 수정시킨 수정란을 48시간 후 레슬리 자궁에 착상시키는 데 성공함으로써 루이스는 예정보다 3주 빨리 제왕절개수술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다. 루이스 브라운은 2004년에 결혼하였고 3년 뒤인 2007년에 자연분만으로 건강한 아들을 낳았다.

 

Robert Edwards (L) attending birthday of first test tube baby Louise Brown from right holding her son Cameron) and her mother Lesley Brown (C)

 

인륜을 거스른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았다. 특히 바티칸은 `자연의 섭리에 반한 근원적 악`이라며 강력한 어조로 비판했다. 일부 과학자들도 위험성이 완전히 제거될 때까지 실험을 멈춰야 한다는 의견이었지만 `시험관 아기` 행진은 멈추지 않았다.

 

불임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환경오염·스트레스·잦은 음주 등 다양하다. 선천적인 신체결함이 이러한 외부요인과 맞물려 아이 만들기를 방해한다. 가령 수정이 되려면 정액 1mL 안에 2000만 개 이상의 정자가 있고, 그 중에서 활발하게 운동하는 정자 수가 60%를 넘어야 한다. 하지만 환경오염은 정자의 활동성을 낮춘다. ‘정상 정자’라고 하더라도 사정할 때 정자가 나가는 길인 정관이 막히면 불임의 원인이 된다. 난자의 배란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거나 나팔관이 막혀 있어도 아이를 갖기 어렵다.

 

 

불가능으로 여겨졌던 일이다. 시험관 아기는 불가능을 가능하게 했다. 그래서 ‘현대의학의 기적’이라는 평을 듣는다. 과학학술지 ‘네이처’는 2008년 시험관 아기 탄생 30주년을 기념하며 “30년 뒤에는 인공 정자, 난자, 자궁으로 100세 노부부도 아기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시험관 아기가 ‘무조건 좋다’고 말하긴 어렵다. 우선 시험관 수정이 성공할 확률은 35세 미만 여성의 경우 30%수준으로 낮은 편이다. 적지 않은 비용도 부담이다. 난소를 활성화하는 호르몬을 주입해 난자를 얻는데, 이 호르몬으로 인한 부작용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일각에서는 출산율을 높이는 시험관 아기가 결과적으로는 출산율을 낮출 것이란 주장도 나온다. 2008년 미국 캘리포니아대 욘 올센 박사는 ‘영국의학저널’에 “인공수정으로 태어나는 아이가 많아진다는 건 생식기능에 문제가 있는 유전자를 물려받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뜻”이라며 “세계의 불임률을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에드워즈 박사의 시험관 아기 시술법은 1980년대 들어 미국의 하워드 존스 부부가 과배란 유도법을 개발하며 좀 더 발전했다. 에드워즈 박사는 자연 배란에만 의존해 시험관 아기 시술에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과배란 유도로 여러 개의 난자를 쉽게 얻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국내에서의 시험관 아기 연구는 1980년부터 시작했고 1985 1985 10 12일 서울대병원 장윤석 교수팀에 의해 45번째 시도에서 이뤄진 쌍둥이가 첫 시험관 아기였다.

 

로버트 에드워즈는 시험관 아기의 공로로 2010년에 노벨 생리, 의학상을 수상하였다. 그러나 스텝토 박사는 복강경을 이용해 난소에서 난자를 채취하고 수정란을 다시 자궁에 착상시켜 시험관 아기 시술에 핵심적 역할을 했지만 1988년 숨져 노벨상 수상의 영광을 얻지는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