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7월/7월 30일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교육정상화 및 과열과외 해소방안’ 발표

산풀내음 2017. 6. 22. 20:21

19807 30,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교육정상화 및 과열과외 해소방안’ 발표

 

“맏아들이자 외아들인 동진군에겐 3학년 때부터 가정교사가 딸려 착실히 발판을 다져왔다. 4학년 때 진학 성적이 월등했던 D국민학교로 진학했다가 사립국민학교에 눈이 뜨이자 다시 적지 않은 전입학금을 내고 옮겼다. 그때마다 정든 친구들을 잃은 아들은 울먹였지만 세상에서 부러울 것 없다는 KS마크(경기중-서울대)의 자랑스러운 학부모가 되기 위해서 그 정도의 불만쯤이야.(경향신문 1968 513일자 ‘스위트·홈 진단-(2)일류병’)

 

1968년 학부모들의 교육열을 풍자한 기사 중 일부다. 이 기사에 등장하는 국민학교 6학년 동진군은 ‘KS마크’를 달아주려는 엄마의 교육열로 인해 새벽 530분부터 밤 12시까지 강행군을 이어간다. 한 가정교사는 학생이 공부 중 졸지 않게 하려고 “졸다가 머리가 앞으로 숙여지면 국민학생 심군의 목에 노끈이 걸려 목을 졸라 잠을 깨는 방법”까지 고안했다(경향신문 1966 1217일자).

 

전후 폐허만 남은 한국 사회에서 돈 없고, ‘빽’ 없는 사람들이 유일하게 믿을 것은 ‘교육’이었다. 빈곤층부터 중상층까지 온 국민이 교육에 열을 올렸다. 언론은 연일 개천에서 용이 된 학생들의 사연을 앞다퉈 알렸고, 어린 학생들의 ‘4시간 수면’은 미덕이 됐다.

 

학부모들의 ‘치맛바람’이란 단어도 1960년대에 등장했다. 부모들은 아이의 성적과 진학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감내할 수 있는 ‘전사’가 됐다. 1964년 ‘무즙 파동’, 1967년 ‘창칼 파동’은 당시 학부모들의 열성적인 치맛바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좋은 학군을 위해선 ‘삼천지교(三遷之敎)’나 위장전입도 불사했다. 1968 9월에는 학부모 3명이 자녀의 서울 전입이 제대로 안되자 문교부 장관실 앞에서 농성을 벌이다 이를 막은 경찰과 멱살잡이를 해 종로서에 구속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런 교육열에 국가가 처음 제동을 건 것이 1968 7월 발표한 ‘중학교 무시험 진학제도’였다. 권오병 당시 문교부 장관은 “종래 일반 국민들이 국민학교 어린이들에게 너무 과도한 입시교육, 과외공부를 시킨 결과 소위 일류병과 입시준비교육이 우리 사회에 가장 큰 병폐가 돼왔다”고 말했다.

 

60년대 중학교 입학 시험 모습. 아직 초등학생들이 사뭇 진진하게 시험을 치르고 있다.

‘중학교 무시험 진학제’ 도입1968년 학생들이 중학교 배정을 받기 위해 수동식 추첨기로 직접 추첨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1974년 박정희 정권은 “과외 등 입시준비교육으로 정상적인 학교교육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면서 고교평준화 정책을 시행했다. 중학교에 이어 고등학교의 평준화가 실시되면서 명문 중에 입학하려 초등학생이, 명문 고에 입학하려 중학생이 피를 말리는 경쟁을 하는 폐단은 사라졌다. 그러나 아이들이 받는 ‘경쟁 압박’은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았다. ‘어느 대학을 가느냐’가 인생의 성패를 결정하는 사회구조는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입시전쟁이 고스란히 3, 6년 뒤로 미뤄졌을 뿐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마침내 1980 7 30일 전두환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는 과외금지를 주안점으로 한 ‘교육정상화 및 과열과외 해소방안’을 확정 발표했다. 이른바 7·30조치로 불리는 이 방안의 주요내용은 81학년부터 대학본고사를 폐지하고 예비고사 성적 및 고교내신 성적만으로 신입생을 선발하며, 대학정원 10만 명 증원, 졸업정원제 실시, 중고교 교육과정 축소, 방송통신대학 확충, 교육방송 실시 등이었다.

 


1988년 비밀 과외를 하다 적발된 학원 강사들이 경찰서로 연행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과외금지방안은 처음에는 규제대상을 모든 공직자를 포함한 사회지도층 인사의 자녀로 한정하고, 학원수강 금지대상도 중고교생으로 규정했으나 세부시행과정상에서 모든 과외의 금지 및 입시목적의 재학생 학원수강금지로 확대됐다.

 

재수생 학원을 제외한 모든 과외가 원칙적으로 금지됐다. 공직자가 과외 교육을 시키다가 발각될 경우는 파면을 감수해야 했다. 기업체 사장이 걸리면 세무조사가 이어졌다. 대학생들의 '몰래바이트'도 적발되면 퇴학 등 중징계를 받았다. 국보위는 과외 놔두면 나라 망친다는 각오로 과외를 잡도리하려 들었다. 이것은 '안보의 문제'라는 것이었다광주의 피를 입가에 흘리며 "하지 말라면 하지 말란 말이야"라고 으르렁거리는 머리털 없는 괴물의 서슬 앞에서 '과외'란 단어는 얼어붙었고 곧 산산조각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