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사진/충남

광덕사 이야기

산풀내음 2018. 8. 3. 21:43

연일 무서운 날씨다. 서울의 기온은 오랜 기간동안 40도를 육박한다. 정말 덥다. 천안에서 살고 계시는 대학 선배님의 초대로 몇몇 선후배들과 함께 가게 된 광덕산에 갔던 7월 21일도 오늘 정도는 아니었지만 정말 더운 날이었다. 광덕산이 어떤 산일까하는 마음에서 검색을 하다가 광덕산의 광덕사를 알게 되었다. 광덕사는 산너머 있는 마곡사의 말사로 652년(진덕여왕 6) 자장(慈藏)이 당나라에서 가져온 불치(佛齒) 1과와 사리 10과 금은자(金銀字) 《화엄경》 《법화경》 《은중경(恩重經)》 각 2부 등을 승려 진산(珍山)에게 주어 새 도량(道場)을 연 것이 그 시작이라고 한다.

사실 광덕사가 유명한 것은 호두나무가 처음 시집온 곳이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다. 고속도로 휴게소의 대표 간식이며 천안의 상징과도 같은 호두과자가 바로 이곳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호두는 본래 호도(胡桃)에서 유래하는데 생긴 게 복숭아 씨앗과 닮았는데 오랑캐(胡) 나라에서 들어온 복숭아(桃)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호두나무가 한국땅에 전래된 시기는 몽골 징기스칸이 세계를 휩쓸던 고려 후기로 당시  고려는 원나라의 부마국으로 원나라로부터 많은 문물이 들어올 때였다. 그 때 류청신이란 사람이 충렬왕 16년 (1290) 원나라에서 호두나무 묘목과 종자를 가져와 묘목은 이곳 광덕사에 심고, 씨는 자기집에 심어 그 이후 고려에 호두나무가 퍼지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광덕사 대웅전에 오르는 계단 옆에는 보화루가 있는데, 누각인 보화루 계단 옆에는 수령이 400살이 넘은 호두나무가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후두나무의 유래와 관련하여서는 이견도 있다. 초기철기시대의 유적인 광주 신창동 저습지 유적에서 호두가 발견되기도 했고, 신라시대의 1차 사료인 민정문서에서도 인구조사 할 때 호두나무가 몇 그루인지까지 조사했던 게 남아있기 때문에 적어도 삼국시대, 멀게는 원삼국시대부터 호두는 한반도에 도입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광덕사 일주문

광덕사 호두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