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사진/경북

호거산 운문사와 사리암 이야기

산풀내음 2018. 9. 4. 22:32

경북 청도 호거산에 위치한 운문사를 다녀왔다. 우연한 기회에 운문사 사리암 카페(http://cafe.daum.net/omssla)에 가입하게 되었고 올라온 글을 읽으면서 많이 궁금했었던 사찰이었다. 경부고속도로 건천IC를 나와 30여km를 달리면 대천 삼거리가 나온다. 그곳에서 좌회전을 하니 새롭게 지어진 듯한 운문댐(자료를 찾아 보니 1993년에 지어진 것이란다)에서는 시원하게 물을 내뿜고 있었다. 폭포수 같이 우렁차게 흘러내리는 물을 보면서 들어선 운문사 가는 길. 운문호를 따라 난 이 길은 아마도 내가 다녀본 길들 중 열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아름다운 길이었다. 8월의 녹음이 우거지 길 옆으로 청록빛 물 가득한 운문호의 모습은 그냥 스쳐지나가는 것만으로도 그 동안의 피로가 녹아내리는 듯했다. 지금 돌이켜보니 이때 잠깐 차를 세워 그 아름다움에 취해도 보고 카메라에도 담아 봤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이 후회스럽다.

운문사는 대표적인 비구니 사찰이다. 신라 진흥왕 21년(560년), 한 신승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며, 진평왕 30년(608년) 원광국사에 의해 1차 중창되었다. 운문사는 고려 충열왕 때 일연선사께서 주지로 계시면서 『삼국유사』 의 집필을 한 곳이기도 하다. 해방이후 잠시 대처승이 거주하기도 하였지만, 1950년대 교단정화 이후 비구니 정금광 스님이 1955년 초대 주지로 취임하여 제 8차 보수.중창하였다. 1958년 비구니 전문강원이 개설되었고, 1987년 승가대학으로 개칭되어 승려 교육과 경전 연구기관으로 수많은 수도승을 배출하고 있는 사찰이다. 80년 말까지 일반은 출입할 수 없었으나 90년 초에 일반인에게도 개방되었다고 한다.

운문사의 첫 인상은 '이렇게 정갈할수가 있을까'였다. 모든 것이 잘 정돈되고 조화로웠다. 폭풍이 지나간 후의 더없이 맑고 파란 하늘과의 조화로움이 그 아름다움을 더한다. 범종루를 지나면 우리를 가장 먼저 반겨 주는 것은 '처진 소나무'이다. 천연기념물 제 180호로 지정된 운문사 처진 소나무는 주변의 인공적인 압력 없이도 늘어져서 넓게 자라는 나무로 유명하다. 수령 500년에 이르는 이 소나무는 어느 선사가 이곳을 지나다가 시들어진 나뭇가지를 꽂아둔 것이 뿌리를 내렸다고 전해지고 있다.

일주문과 같은 역할을 하는 듯한 범종루

범종루를 들어서면서 찍은 사진, 오른편에 만세루와 처진 소나무가 보인다.

수령 500년의 처진 소나무


처진 소나무 뒤에는 200여 평의 넓은 공간을 누각으로 조성해 놓은 만세루(萬歲樓)가 있고 그 오른 편에 운문사의 주불전인 대웅보전(大雄寶殿)이 있다. 대웅보전에는 과거․현재․미래의 삼세불(三世佛)과 대세지, 문수, 보현, 관세음보살 등 사대(四大) 보살을 모셔져 있다. 비구니 사찰이라는 선입견을 가져서인지 대웅보전에 모셔진 부처님의 자혜로움 가득한 모습이 흡사 여성스러웠다.


만세루

비로전

비로전


운문사 경내를 둘러보고 다시 범종루를 막 나서니 뒤에서 범종의 소리가 들려왔다. 은은하게 들려오는 종소리에서 나의 모든 번뇌가 사라지는 듯하다. 그 소리에 이끌려 나는 다시 사찰로 들어왔다. 


운문사에는 4개의 암자가 있는데 그 중 사리암은 나반존자 기도처로 유명하다. 나반존자는 석가여래께서 돌아가신 후 미륵불이 출현하기까지 부처님이 계시지 아니한 동안 중생을 제도하려는 원력을 세운 분으로 부처님의 부촉을 받고 항상 천태산상에서 선정을 닦으며 열반에 들지 않고 말세 중생의 복밭이 되어 미륵불을 기다리는 존자이다. 나반존자를 모신 전각을 천태각(天台閣) 또는 독성각(獨聖閣)이라고 하는데, 사리암 천태각은 조선 헌종 11년(1845)에 신파대사(新派大師)가 초창하여 나반존자상을 봉안하였다고 한다.

운문사에서 사리암 주차장까지는 약 2km 정도 떨어져 있다. 약간의 고민 끝에 차를 타고 이동하였는데 조금 지나면서 금방 후회를 했다. 차 한대 정도 지날 수 있는 좁은 도로이기 때문이 아니라 개울을 따라 나 있는 길이 너무나도 아름다워 차로 이동하면 그 아름다움을 제대로 만끽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혹 사리암을 가고자 하는 분이 있다면 천천히 시간을 가지고 걸어서 갈 것을 권해 드리고 싶다. 천천히 즐기면서 가도 30분이면 충분할 듯하다. 

사리암 주차장에서 사리암을 올라가는 길도 더없이 아름답다. 약간의 경사가 있어 쉬운 길만은 아니지만 천천히 비탈길을 30분 정도 올라가면 사리암에 도달한다. 어쩌면 운문사에서보다 더 많은 분들이 이곳이 있다. 관음전에도 사리굴에도 모든 신도분들이 천태각에 모셔져 있는 나반존자를 향해 지성으로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중생의 삶이 너무나도 팍팍해서인지 기도하는 모든 분들의 모습에는 간절함이 깊이 베어있는 듯 했다. 

운문사 사적에는 사리암은 고려초 보양국사(寶壤國師)가 930년에 초창하였고 조선 헌종 11년(1845)에 정암당(靜庵堂) 효원대사가 중창하였으며 1924년 증축, 1935년에 중수하였다고 한다. 사리암의 사리굴(邪離窟)에는 얽힌 설화가 있다. 운문산에 있는 4개의 굴(사리굴(邪離窟), 화방굴(火防窟), 호암굴(虎巖窟), 묵방굴(墨房窟)) 중 동쪽에 위치한 사리굴은 옛날에는 이 굴에서 쌀이 나왔다고 한다. 한 사람이 살면 한 사람 먹을 만큼의 쌀이 나오고 두 사람이 살면 두 사람이 먹을 만큼의 쌀이 나왔다고 한다. 



사리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