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사진/경북

청량산과 청량사의 아름다움에 푹 빠지다.

산풀내음 2018. 10. 11. 23:03

10월 6일은 경북 봉화에 위치한 청량사에서 산사음악회가 열릴 계획이었다. 2001년부터 시작해 산사음악회의 원조라 불리우기도 하고, 내가 좋아하는 김경호, 박미경, 박남정 등 인기가수도 출연한다고 하여 이미 한달 전부터 계획잡았던 것이었다. 나와 산사음악회와의 인연이 아직 부족해서인지 태풍 '콩레이'가 우리의 만남을 허락하지 않았다. 산사음악회는 20일로 연기되었고 그날은 아들 녀석 부대개방행사 참가 겸 실무배치 후 첫 면회를 위해 포항 해병 1사단을 방문해야 하기에 너무나도 많이 아쉬웠지만 다음 기회로 미룰 수 밖에 없었다. 

올해 청량사 산사음악회는 볼 수 없지만 그래도 항상 사진으로만 봐왔던 천년 고찰 청량사 부처님께 인사 올리는 것은 더이상 미루고 싶지 않아 10월 9일 찾아 뵙게 되었다.



청량산은 예로부터 수산, 타자산으로 불리다가 조선시대 이후 청량산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청량산을 오르기 위한 들머리로는 하청량, 선학정, 입석 세곳이 있다. 일반적으로 하청량으로 들어가면 청량산의 주봉인 장인봉(의상봉, 870m)에 다다르기에는 가장 짧은 코스이지만 가파르다는 단점이 있고, 선학정으로 오르면 청량사를 거쳐 장인봉에 오를 수는 있지만 청량사까지 콘크리트길이라 산의 맛이 덜하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입석을 청량산의 들머리로 삼는 듯하다. 이곳을 등산의 기점으로 삼아 오르면서 청량사 응진전, 총명수, 김생굴 등을 오르는 길에 자연스럽게 들릴 수 있다는 매력도 있다.

참고로 하청량에서 입석까지의 도로변에는 사람이 걸을 수 있는 도로가 잘 마련되어 있어서 서로 다른 포인트에서 들머리와 날머리를 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또한 청량폭포가 있는 하청량에서 올라가면 선학봉과 장인봉 사이로 나오게 되는데, 그 중간 즈음에 병풍바위로 가는 길이 있다. 그런데, 입석에서 차량 통제를 하고 있던 분께 들은 바에 따르면, 이 길은 통상적으로 마련해 놓은 산행로가 아니어서 풍광은 너무 좋지만 비전문가에게는 다소 위험하다고 한다. 그래서 이 길은 다음 기회를 미루었다. 내가 청량산을 즐긴 루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입석 - 응진전 - (중간중간에 청량사를 조망할 수 있는 곳이 나온다) - 김생굴 - 자소봉(보살봉, 자소봉 직전에 탁필봉으로 가는 삼거리가 나온다) - 탁필봉 - 연적봉(그냥 지나쳐 가지 말고 반드시 연적봉으로 올라가 보자) - 자란봉 - 청량산 하늘다리 - 선학봉 - 장인봉(의상봉, 871m) - 선학봉 - 하늘다리 - 자란봉 - 뒤실고개 - 청량사 - 청량정사 - 입석​(총 5시간 30분. 부처님께 인사 드리는 시간 등을 빼고 그냥 주욱 훑어본다면 3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청량산 입석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0시 즈음이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하청량, 선학정, 입석에 모여 산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당초 계획한데로 입석에서 시작하여 응진전과 김생굴을 거쳐 자소봉(보살봉)으로 가는 길을 택했다. 입석에서 자소봉까지는 1시간 10분 정도면 충분히 도달할 수 있는 거리이지만 오감으로 청량산을 즐기기에는 2시간도 부족할 것이다. 응진전에서 부처님과 16나한님을 친견하는 것 뿐 만아니라 중간중간에 나오는 볼거리들과 더불어 청량사를 조망할 수 있는 아름다운 포인트가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다.

석가삼존불과 16나한을 모시고 있는 응진전은 원효대사가 머물렀던 곳으로 청량산에서 경관이 뛰어난 곳에 든다. 입석에서 등산로를 따라 20분정도 오르면 만난다. 뒤로는 거대한 금탑봉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고, 응진전 뒷편, 요사채와 응진전 사이의 절벽에는 감로수가 흐른다. 원나라 황족이었지만 남편 공민왕이 행했던 개혁정치와 반원정책을 적극 지지했던 노국공주도 이곳 응진전에서 기도를 하였다고 한다.

응진전 뒤로 돌아가면 감로수를 만날 수 있다. 물맛이 참 좋다.

응진전에서 자소봉 가는 길에서 본 청량사

김생굴은 경일, 금탑 양 봉우리 사이에 있는 천연동굴로 김생이 이곳에서 10년간 글씨 공부를 하였기에 김생굴이라 이름 붙여졌다. 김생과 봉녀가 글씨와 길쌈 기술을 겨루었다는 설화가 전해져 내려오기도 한다.


"김생은 경일봉 아래 바위굴에서 글씨공부에 전념한지 9년 만에 명필이 되었다는 자신감을 갖고 하산하려 했다. 이때 한 젊은 여인(청량봉녀)이 나타나 길쌈솜씨와 글씨솜씨를 겨루어보자 제의하였다. 김생은 처녀의 제의를 수락하여 굴속에서 불을 끄고 서로의 실력을 발휘하였다. 다시 불을 켠 뒤 비교해보니 처녀가 짠 천은 한 올도 흐트러짐 없이 가지런하였는데 김생의 글씨는 그만큼 고르지 못하였다. 이에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은 김생이 1년을 더 연마하여 10년을 채운 뒤 명필이 되어 세상으로 나갔다고 한다."



자소봉을 찍고 능선을 따라 탁필봉과 연적봉을 거쳐 청량산의 최고봉인 장인봉(의상봉)으로 갔다. 워낙 평탄한 길이라 40-50분이면 여유있게 도달할 수 있다. 당연히 청량산의 명물 하늘다리를 지난다. 자소봉에서 조금 이동하면 큰 바위이 나오는데 이것이 탁필봉이다. 탁필봉을 지나 조금 더 가면 바위 위로 올라가는 계단이 나온다. 연적봉으로 올라가는 길이다. 이 계단을 지나치고 그냥 자란봉으로 이동하면 크게 후회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청량산하면 최고봉인 장인봉을 많이 이야기하지만 장인봉은 작은 나무들로 시야가 가려져 최고봉이라는 것 이외에는 특별한 것이 없다고 할 것이다. 오히려 청량산의 최고 포인트는 연적봉이라 할 수 있다. 계단을 타고 조금 올라가면 3-4평 남짓의 작은 공간이 나오는데 이곳에서 보는 산야의 아름다움은 감히 글로 표현할 수가 없다. 


연적봉에서 바라본 모습


자란봉과 선학봉 사이에는 2010년 5월에 완성된 청량산의 명물 '하늘다리(지상에서의 높이 70m, 길이 90m, 폭 1.2m)​'가 있고, 선학봉에서 15분 정도 더 가면 장인봉이 나온다. 장인봉 직전에는 청량산에서 가장 가파른 곳을 통과해야 하지만 다리가 잘 놓여져 있어서 그닥 힘들지는 않다. 돌아오는 코스는 자란봉을 지나면 나오는 뒤실고개에서 청량사로 하산하는 길을 택했다. 


청량산의 명물 하늘다리

하늘다리에서 바라 본 모습


그리고 청량사에서는 청량정사(해우소나 설법당으로 가는 이정표를 따라가면 나온다)로 가는 길을 통해 다시 입석으로 돌아왔다. 청량정사에서 입석으로 돌아오는 이 길 또한 청량산을 방문하면 반드시 걸어보아야 할 길로 추천하고 싶다. 두사람이 동시에 지나가기에는 빠듯한 좁은 숲속 오솔길로 지나는 자체로 마음 깊숙히 자리잡은 상념이 사라지게 한다. 중간 즈음에 있는 나무데크길이 유일하게 아쉬움을 남기게 할 뿐이다.

청량산을 즐기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내가 걸은 길을 기준으로 걷기만을 한다면 3시간이면 충분할 것이다. 다만 3시간이란 시간은 청량산의 맛을 제대로 즐기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최소한 6시간은 잡아야 할 것이다. 연적봉에서의 탁트인 전망과 청량산의 더없이 호젓한 오솔길을 반드시 느껴보아야 하겠지만, 그래도 그 정점은 청량사라 할 것이다. 청량사의 전체적인 모습도 아름답지만 청량사의 구석구석 어느 곳도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다. 이 아름다움을 사진으로 제대로 담지 못하는 내 자신이 원망스러울 따름이다.


청량정사




청량산에 자리잡은 약사기도도량인 청량사는 신라 문무왕 3년(663년)에 원효대사가 세운 것으로 전하고 있다. 창건 당시 33개의 부속건물을 갖추었던 대사찰로, 봉우리마다 자리 잡은 암자에서 스님들의 독경 소리가 청량산을 가득 메웠다고 전해지는데, 조선시대 억불정책으로 급격하게 쇠락하였다. 인근의 봉우리명도 보살봉을 자소봉, 의상봉을 장인봉으로 고치도록 했을 정도다. 

청량사가 다시 옛 모습을 찾기 위한 노력을 시작한 것은 불과 30년전이다. 1984년 새롭게 주지로 부임하신 지현 스님은 지게로 손수 돌을 지어 나르는 등 3차례에 걸쳐 불사를 하면서 도량을 정비했다. 특히 포교의 중심축을 ‘받는 불교에서 주는 불교’로 전환해 2001년부터 매년 9월 산사음악회를 개최하면서 세상에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이에 더하여 2008년 5월  선학봉과 자란봉을 잇는 현수교량인 ‘하늘다리’ 개통하면서 청량사를 찾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늘었다고 한다. 지현스님으 이 모든 것이 부처님의 가피(加被) 라고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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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사의 주법당은 약사여래불을 모시고 있는 유리보전(琉璃寶殿)이다. 이곳에 모셔진 약사여래불은 지금은 개금불사(改金佛事, 불상에 금을 입히는 불사)를 한 상태이지만 본래는 종이를 녹여 만든 지불(紙佛)로 협시불인 문수보살과 지장보살과는 달리 단 한번도 자리를 옮기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유리보전의 현판은 고려 공민왕이 직접 쓴 것이다.

청량사는 풍수지리학상 길지 중의 길지로 꼽히는데 육육봉(12 봉우리)이 연꽃잎처럼 청량사를 둘러싸고 있고 이 청량사는 연꽃의 수술자리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변에는 김생굴을 포함하여 금강굴, 원효굴, 의상굴, 방야굴, 방장굴, 고운굴, 감생굴 등 8개의 굴과 4개의 약수터가 있다. 그래서 청량산에는 수많은 인재가 들어와 공부를 하였다고 한다. 원효, 의상, 이황, 김생, 최치원 등의 역사 속의 걸출한 인재들이 바로 이 청량산에서 나름대로의 뜻을 세웠댜.



청량사 유리보전(淸凉寺 琉璃寶殿). 

원효대사가 신라 문무왕 3년(663)에 처음 건립하였다고 전해지며, 지금의 건물은 조선후기에 지어진 것이다. 


『청량사가 있는 청량산에는 연대사(蓮臺寺)라는 사찰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26개의 암자가 있어서 당시 신라불교의 요람을 형성한 곳이다. 유리보전은 다포계인 듯하나 주심포계(柱心包系)와 절충한 조선 후기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는 건물이다.

공포는 외1출목(外一出目)·내2출목(內二出目)의 형식으로 첨차의 짜임이 고졸(古拙)하고, 쇠서[牛舌]의 내부 끝은 연화(蓮花) 및 용수형(龍首形)의 조각을 새기고 있으며, 정면 중간기둥 위에는 용두(龍頭)와 용미(龍尾)를 주두(柱頭) 밑에 내외로 뻗게 하고 있다.

내부는 판상(板床)이고 천장은 우물반자이며, 불단(佛壇)에는 삼존(三尊)의 좌불(坐佛)이 봉안되고 천장에는 운궁(雲宮)주 02)이 설치되어 있다. 이 건물의 큰 보 밑에 간주(間柱)를 세워 후불벽(後佛壁)을 구성한 특징은 다른 건물에서는 보기 힘든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목조지장보살삼존상. 삼존상은 1578년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시기에 조성된 불상이 매우 드물다는 점에서 임진왜란(1592-1598)을 기점으로 나뉘는 조선 전기와 후기의 불교 조각의 흐름을 파악하는데 매우 소중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