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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함께 한 보경사에서의 템플 스테이

산풀내음 2018. 11. 22. 21:55



낙산사에서 관세음보살님께 기도를 올리고 포항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리고 해병대에 복무 중인 아들을 만나 우리 가족이 선택한 휴식은 보경사 Temple Stay였다. 1박 2일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산사의 아늑함 속에서 부처님께 기도를 올리며 보낸 휴식은 더없는 좋은 기억으로 가슴에 남았다. 특히 보경사 주지 스님이신 철산 탄공 큰스님께서 차 한잔과 함께 들려주신 여러기지 말씀들은 산사에서의 기도에서 오는 아늑함 이상이었다.

12개의 폭포로 잘 알려진 내연산에 자리잡은 보경사(寶鏡寺)는 신라 진평왕 25년(602년) 대덕(大德) 지명(智明) 스님에 의하여 창건되었다. 중국 진나라에서 유학한 지명스님은 중국 백마사에서 모셔온 팔면보경(八面寶鏡)과 함께 진평왕 24년에 돌아온다.  지명스님은 왕에게 동해안 명산에서 명당을 찾아 팔면보경(八面寶鏡)을 묻고 그 위에 불당을 세우면 왜구의 침입을 막고 이웃나라의 침략을 받지 않으며 삼국을 통일할 수 있으리라고 하였다.

진평왕 25년에 왕은 신하들과 함께 동해안 북쪽 해안을 거슬러 올라가다가 해아현(海阿縣)에 이르러 산정에 오색구름이 덮여 있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여겨 산아래에 이르자 큰 못이 있었다. 지명 스님은 그 못이 불멸할 명당이라고 아뢰자 왕은 그 못을 매우고 지명 스님에 모셔온 팔면보경을 그 못 가운데에 묻고 금당(金堂)을 건립한 뒤 보경사라 하였다. 성덕왕 22년(723년)에는 각인(覺仁)과 문원(文遠)이 “절이 있으니 탑이 없을 수 없다.” 하고 시주를 얻어 금당 앞에 오층석탑을 조성하였다.

경덕왕 4년(745년)에 철민(哲敏)이 중창하였고, 고려 고종 1년(1214년) 주지 승형(承逈)이 승방 4동과 정문 등을 중수하고 종·경(磬)·법고(法鼓) 등도 완비하였다. 조선 숙종 3년(1677년)에는 도인(道仁) 등이 중창불사를 시작하여 1695년 가을에 준공하였으며, 삼존불상과 영산전(靈山殿)의 후불탱화도 조성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비로자나불과 문수보살, 보현보살을 모신 적광전, 석가모니불을 모신 대웅전,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사자를 탄 문수와 코끼리를 탄 보현보살, 16나한 등을 배열한 영산전, 석가모니의 팔상시현(八相示顯)을 나타낸 팔상전이 중심 당우로 자리잡고 있다. 이 밖에도 명부전, 산신각, 원진각(圓眞閣), 일로향각(一爐香閣), 동로각(東爐閣), 누각, 수월당(水月堂), 천왕문, 일주문, 원진국사비각, 설산당비각(雪山堂碑閣) 등이 있다.




고려시대의 5층석탑으로 높이는 약 5m. 일명 금당탑으로 불리며 도인, 각인, 문원 등이 고려 현종 14년(1023년)에 건립하였다고 한다.


적광전(경상북도 유형문화재 254호)은 내부에 비로자나불을 주존불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협시불로 모시고 있다. 조선 숙종 3년(1677)에 중창한 것으로 추정되는 적광전은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모신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계(多包系) 맞배지붕 건물이다. 초석(礎石, 기둥을 받치는 부재), 고막이 등은 통일신라기 전형적 건축 기법을 보여주고 있으며, 전면에 신방석(信防石) 부재도 남아 있어 신라 시대 고부재(古部材)를 사용해 중창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적광전 기둥 옆에 목조 사자상이 조각되어 있다.


보경사의 주불전인 대웅전(경상북도 문화재자료 231호)은 금동 삼존불좌상(제화갈라불, 석가모니불, 미륵불)과 후불탱이 봉안되어 있다. 조선 숙종 3년(1677년)에 지어진 건물이다.



★ 제화갈라불은 어떤 분인가?
범어로는 디팜카라(Dipamkara)이다. 연등불(燃燈佛), 정광여래(定光如來), 등광(燈光)여래, 보광(普光)여래, 정광(錠光)여래로 의역한다. 음역으로는 제화갈라(提和竭羅), 제원갈(提洹竭)로 표기한다. 과거세에 출현하여 석가모니불에게 수기를 준 부처님으로 유명하다. 

제9권에 과거 일월등명불에게 여덟 명의 왕자가 있었다. 그 중 법의라는 막내 왕자가 바로 이 연등불이다. 라고 한다. 증일아함경 제13권 제1에 이 부처님의 본연(本緣)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과거 구원겁에 왕이 있었다. 이름을 지주(地主)라 했다. 장차 염부제를 다스리게 되어 있었다. 왕에게는 선명이라는 대신이 있었는데 왕은 염부제의 반을 나누어 주어 다스리게 했다. 선명이 왕이 되었으며 일월광(日月光)부인과의 사이에서 등광(燈光)이라는 아들을 낳았다. 태어날 때 염부제가 돌연 금색으로 변했고 용모는 단정하여 32상을 갖추었다. 29세에 문득 깨달아 부처님이 되었다. 부왕인 선명왕은 40 억의 남녀와 함께 등광불에게 나아가 가르침을 청해 법문을 들었고 이 부처님도 또한 지주왕이 있는 곳에 이르러 왕과 신하와 백성들을 위하여 설법을 하였다. 

왕은 그 후 7만 년 동안 사사(四事)로써 등광불과 비구들을 위해 공양하고 여래가 멸도하자 다시 7만 년 동안 부처님의 사리에 공양을 하였다. 이러한 인연공덕으로 나중에 이 사바세계에 출현하여 도를 깨달아 석가모니 부처님이 된다는 얘기다. 또 이외에도 연등불과 석가모니 부처님에 대한 얘기는 상당히 많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과거 유동보살로서 인위(因位)를 닦을 때 일곱 송이의 연꽃을 연등불에게 공양하였는가 하면 연등불이 온다는 갑작스런 말을 듣고 진흙길에 자신의 몸을 엎드려 밟고 지나가시게 한 인연도 있다. 또한 연등불이 오자 어린 유동보살은 소꿉장난하던 깨어진 기왓장에 모래를 담아 연등불에게 공양하였더니 연등불이 흔쾌히 받으며 수기를 하였다고 하는 매우 아름다운 설화도 전한다. 

(출처 : 한국콘텐츠 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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