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10월/10월 1일

조선어학회 사건

산풀내음 2016. 8. 30. 20:40

194210 1,

조선어학회 사건 발생

 

 

한글학회의 전신인 조선어학회가 19088월 31김정진을 회장으로 하여 창립한국어연구학회를 모체로1921 12 3일 창립하였다. 그리고 1929 10 31일 당시의 명망가 108명이 중심이 되어 조선어사전편찬위원회를 결성하였다. 이은상은 조선인이 조선어를 학습하기 위하여 편찬한 사전이 필요하단 내용의 취지문을 작성하였고 이때 사전 편찬의 선행작업이 되는 한글 맞춤범의 표기법은 조선어학회가 제정하기로 하였다.

조선어학회는 1926한글날을 제정하였고 1930년에는 조선총독부의 철자법개정안을 스스로 수정하여 한글맞춤범통일안을 제정하고 1933년에 이를 발표하였다.

 

한편 가속화된 일제의 탄압으로 1934년에는 조선어학회 주관의 한글강습회가 중단되었고, 1936년 표준어 사정안을 발표한 시점을 계기로 조선어학회의 대중집회가 금지되었다. 일제는 각급 학교의 조선어 과목을 폐지하여 조선어의 금지 및 일본어의 상용을 강요하고 1940년에는 한글 일간지를 폐간시키는 등 우리 말과 글을 말살시키는 온갖 만행을 자행하였다.

 

이런 와중에 1942 8, 함흥 영생고등여학교의 한 학생이 기차 안에서 불온언동으로 심문을 받았는데 조선인 일본 경찰 야스다(한국이름 안정묵)에게 붙잡혀 조사를 받던 중, 이를 꼬투리로 이 학교 교사였던 정태진을 체포했다.

당시 조선어학회의 사전 편찬을 맡아보던 정태진으로부터 서울에서 조선어사전을 편찬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더 나아가 고문으로 조선어학회가 민족운동을 하는 단체라는 억지 자백을 받아냈다.

 

결국 1942 10 1일 이극로, 최현배, 이희승, 정인승 등 조선어학회 핵심 회원 11명이 갑자기 들이닥친 일제 경찰에 체포돼 서울 종로경찰서와 경기도 경찰부 유치장에 수감됐다. 왜 잡혀 왔는지 영문도 모른 채 이들은 하룻밤을 지낸 후 다음날 저녁 열차에 태워져 함경남도 홍원경찰서로 압송됐다.

 

조선어학회 회원들의 고초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같은 달 21일 이병기, 김선기 등이 서울에서 검거됐고 부산 동래에서 김법린이 체포되는 등 탄압은 전국으로 확대됐다. 이어 안재홍, 이인, 이은상 등이 추가로 붙잡히는 등 조선어학회 관계자의 검거 선풍은 해를 넘겨 19434월초까지 계속됐다. 결국 당시 대표적인 조선어 연구자와 후원자 33명이 체포되었고 그리고 이 때 증인으로 불려 나와 혹독한 취조를 받은 사람도 48명이나 되었다.

 

체포된 33인 중 16명은 기소, 12명은 기소유예되었다. 기소자는 예심에 회부되고 나머지는 석방되었다. 기소된 사람은 함흥형무소 미결감에 수감되었다. 같은 해 12 8일에 이윤재가, 1944 2 22일에는 한징이 옥중에서 사망하고, 장지영, 정열모 두 사람이 공소소멸로 석방되어 공판에 넘어간 사람은 12명이었다.

 

이들에게는고유 언어는 민족의식을 양성하는 것이므로 조선어학회의 사전 편찬은 조선민족정신을 유지하는 민족운동의 형태다…… .”라는 함흥지방재판소의 예심종결 결정문에 따라 「치안유지법」의 내란죄가 적용되었다.

이들에 대한 함흥지방재판소의 재판은 1944 12월부터 1945 1월까지 9회에 걸쳐 계속되었다. 이극로 징역 6, 최현배 징역 4, 이희승 징역 2 6개월, 정인승, 정태진 징역 2, 김법린, 이중화, 이우식, 김양수, 김도연, 이인 징역 2년 집행유예 3, 장현식 무죄가 각각 언도되었다.

 

실형을 받은 사람 중 정태진은 복역을 마치는 것이 오히려 상고보다 빠르다 하여 복역을 마치고 1945 7 1일 출옥하였다. 이극로, 최현배, 이희승, 정인승 4명은 판결에 불복, 바로 상고했으나 같은 해 8 13일자로 기각되었다. 그러나 이틀 뒤인 8 15일 조국이 광복되자 8 17일 석방되었다.


 

1935년 조선표준어사정회의 때의 조선어학회 회원들



1949 6 12일에 찍은 조선어학회 사건 수난자 동지회 기념 사진.

앞 줄 좌측부터 김윤경, 정세권, 안재홍, 최현배, 이중화, 장지영, 김양수, 신윤국.

가운데 줄 좌측부터 김선기, 백낙준, 정현식, 이병기, 정열모, 방종현, 김법린, 권승욱, 이강래,

뒷 줄 좌측부터 민영욱, 임혁규, 정인승, 정태진, 이석린



조선어학회에서 발간한 [한글] 6권 제10호와 11(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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