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10월/10월 4일

강재구 소령, 부하 구하고 순직문장의 구성

산풀내음 2016. 9. 2. 23:09

196510 4,

강재구 소령, 부하 구하고 순직

 

1965 10 4일 오전 10시경, 베트남으로 파병을 앞둔 맹호부대 제1연대 10중대 훈련장에서 수류탄 투척 훈련 중이던 사병 1명이 순간적인 실수로 수류탄을 잘못 던지는 바람에 1개 중대 병력들이 모여있는 한 가운데에 수류탄이 떨어졌다. 순간 이를 본 중대장 강재구(1937~1965) 대위가 스스로 수류탄 위로 몸을 던져 부하들을 구하고 자신은 장렬히 산화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강대위는 인천에서 출생해 서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육군사관학교 16기로 입교, 1960 육군사관학교 졸업 후 육군 소위로 임관하였다. 그는 1963년 온영순씨와 결혼, 아들 병훈군을 슬하에 두었다. 그러나 부하를 구하려다 폭사한 강재구 대위의 다섯 유족은 15평짜리 집을 팔고 빚 20만원을 짊어진 채 인천시 부평동 256 단칸 셋방에서 어렵게 살고 있었다. 옹색한 살림을 펴보겠다고 파월을 지원한 강 대위를 말렸던 홀 어머니 김원춘씨 또한 한 달 전 9 1일 뇌일혈로 숨진 터라 유가족들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강 대위는 박정희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그 숭고한 희생 정신을 기려 소령으로의 1계급 특진과 함께 4등 근무공로훈장이 추서되었다. , 그가 속했던 대대는 이날로부터 '재구 대대'라 명명되었다. 그의 모교 서울고교에는 기념비가 건립되었고 육군사관학교에는 동상을 세워졌으며 육군에서는 '재구상'을 제정, 매년 모범 중대장을 선발 시상하고 있으며 1973년에는 강원도 홍천에 '강재구 공원'이 건립되었다.

 

그리고 아들 강병훈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340점 만점에 320점을 받고 1983년 서울대 전자공학과에 입학했다. 당시에 박정희 대통령은 아들 강병훈이 원한다면 육사에 특채를 약속했지만 육사 대신 서울대를 택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