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11월/11월 1일

유서 깊은 창경궁이 창경원으로 …

산풀내음 2016. 10. 11. 20:28

190911 1,

유서 깊은 창경궁이 창경원으로

 

창경궁은 성종 15(1484), 세조비 정희왕후, 예종비 안순왕후, 덕종비 소혜왕후를 모시기 위해 옛 수강궁터에 지은 궁이다. 유서 깊은 창경궁이 치욕의 역사를 맞는다. 일제는 전각 60여 채를 헐어내고 1909 11 1일 동물원과 식물원을 만들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동물원이었고 동양에서는 네 번째였다. 1911 4 11일에는 박물관을 짓고 이름도 아예 창경원으로 바꿨다.

 

왕이 농사를 짓던 논은 춘당지라는 연못으로 만들어 여름에는 뱃놀이, 겨울에는 스케이트를 즐겼다. 케이블카, 회전목마 등 위락시설도 설치했다. 궁궐이 종합놀이공원이 된 셈이다. 일본사람들은 봄이면 벚꽃 아래에서 음란한 음주가무도 서슴지 않았다. 대한제국의 국권과 황실의 권위를 말살하려는 흉계였다.

 

개원 첫해 총 72 361마리의 동물로 시작한 창경원은 1936년에는 192 675마리까지 식구를 불렸다. 하지만 광복 직전 미군의 폭격에 따른 맹수류의 피해를 우려한 일제가 1945 7 25 150여 마리를 독살하는 수난을 겪었으며 6.25 전쟁 당시에도 큰 피해를 입었다.

 

전쟁 통에 폐허가 된 창경원은 1954년부터 재건됐다. 이후 궁궐의 훼손과 좁은 부지의 문제로 1977년 과천으로의 이전 계획이 추진되었고 1984 5 1, 창경원의 동물원은 과천에서 서울대공원 동물원으로 개장됐다. 창경원은 1983 12 31일 마지막 관람객을 맞은 후 문을 닫으면서 치욕의 시간을 마감하고 창경궁으로 복원됐다. 일제가 심은 벚나무는 대부분 여의도 윤중로로 옮겨졌다.


일제 강점기 당시 들어선 일본식 건물

1930년대, 동물원 모습

1963, 동물원과 놀이공원으로 바뀌어 버린 창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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