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11월/11월 1일

오스만 투르크 제국 멸망

산풀내음 2016. 10. 11. 20:32

192211 1,

오스만 투르크 제국 멸망

 

1922 11 1, 무스타파 케말이 주도하는 ‘투르크 대()국민의회’가 술탄(황제)제를 폐지함으로써 623년 역사의 오스만투르크 제국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1258년 징기스칸이 세운 몽골제국이 페르시아를 점령 이 지역의 셀주크제국을 멸망시킨다. 그 해 몽골의 세력이 미치지 않은 아나톨리아의 동북부 지방에 오스만 베이(1258-1326)라는 인물이 태어난다. 그는 아나톨리아에 흩어진 셀주크 틔르크 계의 유민을 흡수 통일하여 1299년 대제국을 세우고 스스로 황제 오스만1세가 되었다.

 

지속적으로 영토를 확장하여 1453년에는 당시 21세였던 황제 술탄 메헤메트 2세가 콘스탄티노플의 비잔틴제국을 멸망시키고 유럽인들의 자존심을 여지없이 짓밟았던 대()제국을 만들었다. 북으로는 우크라이나로부터 남으로는 아라비아 반도의 예멘까지 확대되어 흑해와 에게 해 페르시아 만이 오스만 제국의 내해가 된다. 비잔틴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폴(이스탄불)이 수도가 되었다.

그리고 제10대 군주인 쉴레이만 1(재위 1520 - 1566) 때에 이르면 오스만 제국의 국력은 더할 나위 없이 막강해져 능히 다른 나라를 압도하기에 이르렀으며, 그 영역은 중앙유럽북아프리카에까지 확장되었다.

 


 

그러나 술탄의 무능, 지배계급 내부의 알력, 산업 침체 등이 거듭되면서 16세기 후반부터는 점차 쇠락의 길로 들어섰다. 19세기 발칸반도 국가들의 독립 러시는 제국의 기반을 뿌리째 흔들었고, 1차대전의 패전은 오스만 제국을 열강들의 각축장으로 전락시켰다.

 

1차 세계대전에 패전국이 되어 전범 국가로 지목됨으로써 세브르 조약의 결과, 1914 이전의 영토를 대부분 상실하고 소아시아와 유럽의 일부만을 지니게 되었다. 1921그리스한테 침공을 받아 심각하게 위협을 받게 되는데, 한때는 국가의 존망이 위기를 겪기도 하였다.

 

이러한 때 제국의 보존을 위해 영국이나 미국의 보호령으로 두자는 의견이 제국 내에서 제기됐지만 케말(Mustafa Kemal Atatürk, 1881 5월 19 ~ 1938 11월 10)은 단호히 이를 거부하고 투르크 민족 중심의 독립국가 건설을 꾀했다.

케말이 민·군의 지지에 힘입어 오스만 의회로부터 자신의 독립안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내자 영국은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고 의회를 해산시켰다. 그러나 케말은 새로운 ‘투르크 대()국민의회’를 구성하며 이에 맞섰다. 그의 관심은 과거 오스만 제국의 광활했던 영토가 아니라 투르크 민족 만의 독립된 영토였다. 따라서 투르크 영토 안에 있는 타국의 존재를 인정할 수 없었던 케말은 해결책을 독립전쟁에서 찾았다.

 

1922경부터 케말 파샤의 지휘 아래 그리스군을 격파했고 1923년에는 앙카라를 회복했고, 이에서 도주하는 그리스군을 이스탄불에서 또 대파함으로써 그리스 영토 일부까지 실지를 회복하는 등 그 영토가 1923 7월 연합국과의 로잔 조약으로 현재의 터키 공화국의 영토로 고정되었다.

 

한편 1922 11 1일 술탄제를 폐지해 오스만 제국을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했고, 1923 7월 로잔조약으로 독립전쟁을 마무리한 후 1923 10 29일 터키공화국 수립을 선포했다. 그리고 케말이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