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11월/11월 1일

미국, 세계최초로 수소폭탄 실험국회의사당 준공

산풀내음 2016. 10. 11. 20:37

195211 1,

미국, 세계최초로 수소폭탄 실험

 

1952 11 1일 오전 715분 직경 5km의 불꽃이 마샬군도 에니웨톡환초 상공에서 작렬했다. 근처에 있던 小島 엘게랍섬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세계최초의 수소폭탄 실험 순간이었다.

 

아이비 마이크의 폭발 후 형성된 버섯구름

 

‘아이비 마이크(Ivy Mike)’로 명명된 수소폭탄 1호는 수소폭탄의 아버지로 불리는 에드워드 텔러(Edward Teller, 1908-2003)1951년 폴란드의 수학자 스태니슬로 울람의 구상(분열 폭탄을 핵융합을 위한 기폭제로 쓸 수 있다는 것)을 토대로 한 ‘텔러-울람’ 설계를 가지고 처음 만들어냈다.


1941년 미국에 귀화한 헝가리의 물리학자 에드워드 텔러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맨해튼 계획에 참가해 1945 7 16일 앨러모 고도에서 시험된 최초의 원자폭탄 실험에 입회했다. 하지만 텔러는 원자폭탄보다 핵융합폭탄 개발에 마음을 뺏겼다. 그는 프로젝트에 함께 참여한 동료 수학자 울람으로부터 핵융합폭탄의 결정적 구상을 얻어낸 것이었다.

 

우라늄 원자핵을 분열시키는 과정에서 나오는 열에너지를 이용하는 원자폭탄과 달리 수소폭탄은 수소 원자핵의 융합반응을 이용한 핵폭탄이다. 원자폭탄을 폭발시킬 때 발생하는 에너지 때문에 수소의 동위원소인 중수소나 삼중수소가 핵융합을 일으키고 이 과정에서 엄청난 에너지가 방출된다.

 

수소폭탄의 아버지를 불리는 에드워드 텔러


세계 최초의 수소폭탄아이비 마이크의 폭발력은 TNT 104 만 톤으로 히로시마 원자폭탄의 450에 달했다. 아이비 마이크는 기폭제 역할을 하는 큰 원자폭탄과 중수소가 동원됐다. 중수소는 극저온 상태의 용기에 액체 상태로 담겨 있었기 때문에 ‘습식’이었다. 그러나 ‘습식 수소폭탄’은 폭탄의 원료인 중수소를 액상으로 보존하기 위한 별도 냉각장치가 필요한 등 제조상 어려움으로 상용하는 무기로 쓰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런 단점을 보완하여 리튬과 수소의 고체 화합물을 사용하는 건식 수소폭탄이 1953 8 12일 소련에 의해 개발, 성공하였다. 그러나 이것의 위력은 TNT 40만 톤 수준이었다. 그리고 소련의 8년 뒤인 1961 10 30일 폭탄의 제왕이라고 할 수 있는 무려 TNT 5800만 톤 급의 수소폭탄을 실험 성공하였다. 무려 히로시마 원자폭탄의 3800에 해당하는 위력이다.

소련 다음으로 영국이 1957년 수소폭탄 핵실험을 했지만 위력은 TNT 30만 톤 정도로 미국이나 소련이 만든 것에 비해 성능이 떨어졌다. 중국이 1967 300만 톤 급 수소폭탄 핵실험에 성공했고, 프랑스가 1968년에 개발에 성공했다.

 

현재까지 실험한 수소폭탄 중 가장 강력한 것으로 알려진 러시아(소련)의 ‘차르 봄바’ 1961년 실험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