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12월/12월 2일

북아일랜드 자치정부 출범

산풀내음 2016. 10. 23.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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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아일랜드 자치정부 출범

 

북아일랜드 자치정부가 2 0(이하 현지시각)를 기해 영국으로부터 통치권한을 공식 이양 받았다. 이로써 1974년 이후 계속돼온 영국의 직접 통치는 25년 만에 끝나고, -구교간 권력 공유의 자치 체제로 들어섰다.

지난 1969년 영국 잔류를 희망하는 개신교도들과 아일랜드에 합병을 원하는 가톨릭교도들간에 충돌이 일어난 이래 지난 30년 동안 3500여명(부상자 포함 시 50,000명이 훌쩍 넘음)이 희생된 북아일랜드 사태는 이제 새로운 협력 시대에 접어든 것이다.

 

 

북아일랜드 초대 자치정부는 2일 오후 역사적인 첫 회의를 갖고, 향후 북아일랜드 운영 방향 등을 논의했다. 자치정부 수반인수석장관을 맡은 데이비드 트림블 얼스터연합당(UUP) 당수는자치정부는 더 이상 협상 장소가 아니다라면서우리는 북아일랜드 주민들을 위해 책임 있는 제도를 갖추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2일 오전 영국의 북아일랜드 담당 장관과 아일랜드 외무장관은아일랜드 남-북 위원회설치에 관한 문서를 교환했다. 아일랜드 정부는 이어 북아일랜드 영토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헌법 2조와 3조 등 관련조항을 삭제하는 조치를 취하게 된다.

앞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은 1일 하원에서 통과된통치권 이양법안을 공식 재가했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의회 연설을 통해북아일랜드의 항구적 평화를 위해서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면서그러나 우리는 거대한 첫 걸음을 내디뎠다고 말했다. 버티 아헌 아일랜드 총리는무장 해제는 평화와 민주주의를 공고히 하고 신뢰를 구축하는데 필수불가결한 요소라면서 IRA의 무장 해제를 촉구했다.

 

북아일랜드 분쟁의 뿌리는 470년 전인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534년 영국의 헨리 8세가 가톨릭교가 우세한 아일랜드 섬을 정복해 이곳에 영국 신교도들을 옮겨 살게 했다. 영국 이주민들은 19세기까지 아일랜드의 정치·경제적 주도권을 잡고 토착민들을 억눌렀다.

1916 부활절 봉기영국-아일랜드 전쟁을 거쳐 1921 영국-아일랜드 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아일랜드의 32개 주 중 남부 26개 주가 아일랜드 자유국으로 독립했다. 1년 후 아일랜드 내전이 일어났다. 1949에 아일랜드는 영국 연방에서 탈퇴한 후 아일랜드 공화국으로 완전 독립하였다.

 

 

결국 북아일랜드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을 국토로 아일랜드 공화국이 수립된다. , 신생 독립국의 안정을 원한 아일랜드 정부에 의해 북아일랜드는 버려진 것이다. 이후 북아일랜드는 끝없는 분쟁으로 세계적인 분쟁지역이 되었다. 북아일랜드의 다수파는 영국계 개신교도들이다. 북아일랜드 주민 150여 만 명 가운데 60%쯤이 신교도고 가톨릭 교도는 40%가 채 안 된다. 이들은 지역 주도권을 놓고 오랫동안 다툼을 벌여왔다.

 

카톨릭 교도에 대한 영국의 차별에 항의하는 민권운동이 본격화된 것은 1968년이었으며, 1969년부터는 아일랜드공화군(IRA, Irish Republican Army)의 무장투쟁이 본격화되었다. IRA의 투쟁이 본격화되자 북아일랜드 신교도계는 얼스터 민병대를 조직하여 IRA에 대항하였다. 영국은 1972년에 북아일랜드의 자치권을 회수하였는데, 이후 유혈폭력이 더욱 고조되었다.

 

29년간 계속된 북아일랜드 분쟁은 1998년 북아일랜드 자치정부 및 IRA 무장해제를 골자로 하는 평화협정 체결로 무장투쟁은 다소 잠잠해 졌지만 100% 해소되지는 않은 상태이다. (IRA 2005년 무장 해제를 선언하여 극소수 원칙주의자를 제외한 IRA의 무장은 공식적으로 해체된 상태. 그래도 산발적으로 무력 테러가 일어나기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