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12월/12월 18일

프랑스 ‘르몽드’지 창간

산풀내음 2016. 11. 8. 21:00

1944 12 18,

프랑스 르몽드지 창간

 

프랑스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일간 신문 `르몽드` 1944 12 18일 창간됐다. 르몽드는 프랑스어로 `세계`라는 뜻이다. 이 신문의 창간자는 위베르 뵈브 베리였다. 뵈브 베리는 1861년 창간돼 1942년에 폐간된 프랑스 최고급 일간지 `르탕`의 편집국장 출신이었다. 이 영향으로 르몽드는 논조에서나 편집에서나 `르탕`의 후신이나 다름없었다.


 

전후 새로이 발족한 드골정부는 나치 점령하에서 다소라도 독일에 협조했던 신문들의 복간을 허용하지 않았고, 히틀러에 적극적으로 대항하지 않은 `르탕`도 예외는 아니었다. 드골 대통령이 뵈브 메리에게 당시 나치스에게 협력한 죄로 징계를 당하고 있던 `르탕`을 대신할 만한 민족적인 자유언론지를 창간해줄 것을 요청하자 뵈브 메리는 드골에게서 완전한 독립성을 확약받고서 그 제의를 수락했으며 곧 `르몽드`를 창간했다.

 

만화와 그림은 싣지않으며, 타블로이드 판이다. 일간이며 발행 부수가 50만부 내외이지만, 여론 주도층을 이끄는 고급 정론지라는 창간 취지를 실천하고 있기 때문에 국내외적으로 영향력이 크다. 모든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을 표방하는 이 신문은 창간 초기부터 국내외 뉴스를 깊이 있게 분석, 보도해 정확성과 독립성을 인정받았다. 또한 교정교열을 엄격하게 하여 오탈자가 없다는 평가를 받는 편집으로도 유명하다. 또한 르몽드는 전세계 독재정권의 인권탄압에 대해 국제여론을 환기시켜온 전통에 따라 북한 정권의 비정상성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탈북 난민 문제도 적극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2006 이슬람 국가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그 이유는 이슬람에서 존경하는 예언자무함마드의 모습을 풍자한 만화를 그린 내용을 실어서라고 알려져 있는데, 이로 인해 팔레스타인 측에서는 유럽 대사관을 점거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 반응을 들은 비무슬림 유럽인들이 역으로 조롱하기도 했다.

 

독립언론으로 프랑스, 나아가 전 세계에 영향력을 가졌던 르몽드도 2010 6 28일 좌파 성향 기업인들로 이뤄진 컨소시엄(라자르 투자은행 최고경영자 마티외 피가스, 이브생로랑 패션하우스 창업주인 피에르 베르제, 인터넷사업가 자비에 니엘)을 새로운 주인으로 맞게 되었다. 독립언론 르몽드의 신화는 반세기 만에 막을 내린 것이다. 이는 인터넷의 보급에 따른 전세계적 종이 신문의 위기와 맥을 같이 하는 것이었다.

 

르몽드는 프랑스 저널리즘의 상징같은 존재였다는 점에서 미디어 업계에 던진 파장이 컸다. 그런데 매각협상에서 책정된 르몽드의 가격은 신문업계에 또 다른 충격을 던져줬다. 컨소시엄은 르몽드의 출판·인쇄부문에 6700만유로, 웹사이트에 6300만유로의 값을 매겼다. 그럼 신문 가격은 얼마였을까요? 르몽드가 자랑해온 영향력 있는 신문은 겨우 1000만유로로 매겨졌다는 것이다. 가디언은 “신문의 브랜드 가치에 대한 신화도 이번 매각으로 함께 팔려나갔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