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12월/12월 20일

러시아 체카(KGB 전신) 설립

산풀내음 2016. 11. 10. 20:20

1917 1220,

러시아 체카(KGB 전신) 설립

 

현재의 FSB(러시아 연방보안국)와 구소련의 KGB(국가보안위원회)의 전신인 체카(반혁명과 파괴행위를 다루는 전 러시아 비상위원회, Cheka)가 폴란드 출신의 볼셰비키 혁명가 펠릭스 제르진스키(1877-1926)에 의해 1917 1220일 설립됐다.

볼셰비키가 일으킨 10 혁명 이후 각지에서 이에 반대하는 세력이 일어서자 레닌은 한달후 1917 12월 체카의 설립을 지시했다. 제르진스키가 이 작업을 맡았으며, 10월 혁명을 주도했던 "페트로그라드 군사혁명위원회"에 소속되어있던 "반혁명 분쇄를 위한 특별위원회" "반혁명 방해공작 대처를 위한 국가특수위원회"로 바꾸고 권한을 확장했다.

 

제르진스키는 폴란드 귀족 가문 출신으로 마르크스 계열의 리투아니아 사회 혁명당에 가입하고 폴란드-리투아니아 왕국 사회 민주주의라는 단체를 창립하기도 하였다. 당연히 이 때문에 수많은 세월을 감옥에서 보냈다. 2월 혁명으로 석방된 그는 폴란드 혁명을 구상하다가 볼셰비키에 감화되어 여기에 가담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블라디미르 레닌 4월 테제를 크게 지지했고, 10 혁명 때는 페트로그라드의 봉기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레닌은 제르진스키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여 반혁명세력 척결을 위한 방법을 구상케 했는데 이것이 바로 체카의 모습으로 구현된 것이다.

  

펠릭스 제르진스키(1877-1926)

Members of the presidium of VCheKa (left to right) Yakov Peters, Józef Unszlicht, A. Ya. Belenky (standing), Felix Dzerzhinsky, Vyacheslav Menzhinsky, 1921

 

체카의 목적은 모든 반혁명 기도를 분쇄하고, 볼셰비키에 반대하는 모든 이들을 혁명재판소에 회부하는 것이었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물리력으로는, 감금, 식량배급카드 몰수, 반동분자 명단 발표와 같은 수단을 사용한다고 천명하였다. 볼셰비키는 10월 혁명 직후에는 처형과 같은 극단적 무력사용을 자제했다고 한다.

 

설립 당시부터 체카는 볼셰비키 공산정부의 체제수호와 공안을 책임진 주된 무력이었다. 1921년 체카의 산하부대인 "공화국 국내 수비대" 200,000명의 병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 부대는 굴라그 및 강제노동수용소의 감독, 식량징발, 공산정부의 정적 탄압, 농민 및 노동자의 반란 진압, 붉은군대 휘하부대의 탈영방지나 반란 진압 등을 담당하였다

 

체카에 의해 처형된 사람들이 얼마나 되느냐에 대한 추정치는 학자에 따라 다르다. 가장 적은 수치는 제르진스키의 부하였던 마르틴 라치스가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공화국에서만 한정해서 추정한 1918년에서 1920년 사이의 12,733명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수치가 크게 실제보다 축소 발표된 것이라고 추정한다. 체임벌린(W. H. Chamberlin)의 추정치는 5만 여명이다. 많게는 25만 명에서 50만 명까지 추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체카란 명칭은 시대에 따라 KGB, 다시 FSB로 바뀌었지만 이곳에서 근무했던 사람들은 주로 `체키스트`라 불렸다. 체키스트는 누구라도 재판없이 체포, 투옥, 처형할 수 있었기에 구소련 시절 사람들에게 공포와 증오의 대상이었다. 구악(舊惡)의 대명사 체카와 KGB가 무너진 것은 1991년 발생한 소련 쿠데타와 함께 체카 설립자 제르진스키의 동상이 무너지면서부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