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12월/12월 20일

필리핀 여객선 도나파즈호 유조선과 충돌… 4375명 사망

산풀내음 2016. 11. 10. 20:42

1987 12 20,

필리핀 여객선 도나파즈호 유조선과 충돌… 4375명 사망

 

1987 12 20. 도나파즈호(MV Doña Paz)는 수도 마닐라에서 크리스마스 휴가를 보내려는 승객들을 한 배 가득 싣고 레이테섬을 떠나 마닐라로 향하던 중이었다. 대다수 승객이 잠자던 오후 10 30분에 8,800톤 가솔린을 적재한 유조선 벡터호와 충돌하며 폭발했다. 대부분의 가솔린이 새어나오며 불이 붙었고 벡터호와 도나파즈호는 불길에 휩쓸렸다. 근처 바닷물까지 이 불길에 휩쓸리면서 온도가 급속도로 올라가 불바다에 수온이 급격히 높아지면서 바닷물까지 끓어오르기 시작했고, 결국 모두가 즐거워야 할 성탄절 휴가여행은 생지옥이 되고 말았다.

 

1987년 사고 당시

 

1963일본의 오노미치조선소에서 만들어져 일본의 류큐카이운(유구해운琉球海運. 해외에선 RKK해운으로 더 잘 알려짐)에서 굴리던 배로, 일본에서 활약할 때의 이름은 히메유리마루(ひめゆり丸)호였다. 1975필리핀에 팔렸으며 처음 만들어질 당시 탑승 가능 인원은 608명이었다. 필리핀에서 처음 지어진 이름은 돈 술리피치오 호 였고 개조를 거치며 탑승 가능 인원이 초기 설계의 두 배에 가까운 1,189명이 되었다. 1979 6 5, 승객 1,164명을 태우고 가던 길에 화재가 일어나 반파되었다. 그러나 기적적으로 1명도 죽지 않고 모두 구조되었다. 이 배를 그대로 건져올려 고쳐서 도냐 파즈 호로 개칭하고 1981년부터 재운항한다! 덤으로 탑승 인원이 1,450명으로 개조되었다.

 

일본 선박 히메유리마루 시절

1984년 사고 전 도나파즈호

 

그러나 지옥같은 사건이 벌어지던 이 날은 정원의 3배이자, 진수 때의 7배가 넘는 무려 4,388명이라는 가공할 숫자의 사람이 타게 되었다. 바로 도나파즈호의 소유주인 술피치오 선박회사가 불법적으로 암암리에 표를 계속 팔았기 때문이었다.

 

사람이 이리도 많았던 이유는 입석표가 무척 값이 쌌기 때문이었다. 비행기나 안전운행을 하는 다른 배의 삯과 비교할 수 없었기에 가난한 서민들이 엄청 몰렸고 사망자 대다수가 필리핀 사람이었다. 당시 승선객이 하도 많아서 타길 포기해 목숨을 구한 몇몇 관광객도 있었다.

 

도나파즈호에서는 4,388명에서 단 24(비율상 겨우 0.55%), 벡터 호에서는 13명 가운데 2명만 살아남았다. 모두 4,375명 사망. 그리고 생존자 모두 지독한 중화상을 입었다. 20세기, 아니 인류 역사상 벌어진 여객선 침몰사고에서 사망자가 가장 많은 참극으로 손꼽힌다. 사망자 수가 더 많은 빌헬름 구스틀로프호 사건이나 우키시마호 사건 같은 참극도 있지만 전시 상황에서 벌어진 인재였다. 도나파즈호 사건은 비전시 상황에서 가장 많은 사상자가 생긴 참극이었다.

 


 

더 큰 비극은 이 바다에는 상어가 가득하다는 점이었다. 사건 이후 상어들이 몰려와 죽은 시체들을 먹어치우기 시작하여 수색에 나선 수색대는 총으로 상어를 쏘면서 시체들을 인양해야 했다. 당시 현장에 있던 이들의 증언에 의하면 시체들은 화상으로 훼손이 심했고, 화상을 입지 않아도 펄펄 끓는 물에 죽은 시체가 가득했다고 한다.

벡터호나 도나파즈호나 선장 및 승무원들이 거의 죽은 탓에 두 선박업체와 감사에 소홀히 한 정부기관에게 책임 소재를 묻는 비난이 쏟아졌다.

 

그야말로 필리핀 건국 이래 최악의 대참사인지라 당시 코라손 아키노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방송을 해야했고 보상금으로 부랴부랴 2,500만 페소(2010년대 미국 달러로 55만 달러)가 편성되었다. 필리핀에선 큰 액수이지만 보상금이라고 하기에는 턱도 없이 부족한 돈이었으니 불만이 터져나왔다. 결국 슐피소와 벡터호 소유주이자 세계 굴지의 정유회사중 하나인 칼텍스 그룹에게 소송이 제기되었다. 피해자들은 무려 12년이나 지난 1999년에서야 승소하게 되었다.

 

도나파즈호 사고가 인재 중에 인재인 이유는 정원초과 이외에도 여러가지가 있다.

1) 구명조끼가 들어 있는 라커에는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2) 선장은 자신의 방에서 야동 TV로 보고 있었다. 다른 승무원들은 맥주를 마시며 TV를 보고 있었다가 배가 침몰하자 우왕좌왕하면서 그들도 대부분 살아남지 못했다. 배 모니터를 지키던 선원은 수습선원 1명뿐 이었다.

3) 폭발이 일어나자 놀란 몇몇 선원은 아무런 말도 없이 전원을 내렸다. 그야말로 암흑천지가 되어버리자 사람들은 도무지 어디로 나갈지 몰라 어둠 속에서 우왕좌왕했다. 폭발과 함께 불이 벌어지자 놀라 마구 나가다가 그 와중에 밟혀 죽는 이들도 속출했다.

4) 겨우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왔지만 구명정도 제대로 갖추지 않았다. 승객들은 불타는 바다 위로 뛰어내려야 했고 게다가 바다에는 상어가 가득했다.

5) 덤으로 다른 배인 벡터호는 운항 허가도 받지 않은 상태였고 자격을 갖춘 선원조차 없었다.

이러다보니 당시 외신들은 이런 상황에서 생존자가 있다는 게 기적이라고 할 정도였다.

 

안전불감증이 부른 선박사고 들,

http://news.joins.com/article/144874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