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2월/2월 5일

찰리 채플린의 영화 ‘Modern Times’ 개봉

산풀내음 2016. 12. 10. 20:27

19362 5,

찰리 채플린의 영화 ‘Modern Times’ 개봉

 

 

 

 

 

 

찰리 채플린의 마지막 무성영화 `모던 타임스`1936 2 5일 개봉됐다. 영화는 컨베이어 벨트에 얽매인 노동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시계에 지배되는 현대 자본주의 문명 속에서 인간이 겪는 소외를 날카롭게 파헤친 것으로 평가받았고 이를 통해 널리 이름을 알렸다. 무성영화로 언어의 장벽을 넘어 작품성을 인정받은 그는 4년뒤 자신의 작품 중 최초의 유성영화인 위대한 독재자를 제작, 개봉하게 된다.

 

 

Modern Times

The Great Dictator

 

배우출신의 알콜중독자인 부친과 정신병원을 전전한 모친 사이에서 태어난 찰리 채플린(Charlie Chaplin, 1889.4.16. ~1977.12.25.)의 어린시절은 늘 불우했다. 채플린이 뉴욕 연극무대를 거쳐 헐리우드에 진출한 것은 헐리우드가 영화도시로서의 틀을 갖춰가던 1913년이었다. `키드` `시티라이트`(1931)에서 따스한 인간애의 중요성을 강조한 채플린은 전체주의가 휩쓸던 1940 `위대한 독재자`를 통해 시대의 잘못된 조류에 정면으로 대항했다. 그는 2차대전이 끝난 뒤 냉전 분위기속에서 공산주의자로 몰려 1952년 미국에서 추방되었으나 미국으로 다시 돌아와 1977 88세로 사망했다.

 

오늘날까지 헐리우드의 전설로 남아있는 그는 영화를 통해 물질만능주의(살인광의 시대, 1947)와 히틀러의 파시즘(위대한 독재자, 1940)을 신랄하게 비판한 문명 비평가이기도 했다. 교육을 받지 못해 글도 읽지 못했던 가난한 신문팔이 소년에서 세계적인 백만장자 스타로 떠오른 그의 삶은 어떤 드라마보다 더 극적이라는 감탄을 받아왔다.

 

하지만 그의 여성 편력은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그 자신이 "평생 동안 연애했던 여성이 2000명은 된다"는 다소 과장스런 발언을 한 바 있다. 특히 채플린은 10대 소녀에게 집착하는 '로리타 콤플렉스(Lolita Complex)'를 갖고 있었는데, 영화 촬영 중 빈번히 어린 여배우와 사랑에 빠지곤 했습니다. 소설 로리타도 채플린이 19살 연하의 리타 그레이와 결혼한 것을 바탕으로 쓰여졌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4번 결혼, 3번 이혼하여 11명의 아이를 두었는데, 4명의 아내 중 3명이 결혼 당시 10대였다. 이들은 모두 어리고 아름다운 여배우였으며, 덕분에 채플린은 사교계에서 '병아리를 잡아먹는 독수리(Chicken Hawk)'라는 비난을 듣기도 했다. 부인과의 나이 차이가 많이 났기 때문에 당연히 자식과의 나이 차이는 엄청났다. 채플린과 70살이나 차이나는 딸도 있다.

 

첫 부인 밀드레드 해리스(Mildred Harris)는 유명 아역배우였다. 채플린은 그녀가 15살 때 연애를 시작, 소녀가 16세 채플린이 29세였던 1918년 결혼했다. 채플린의 첫 아이였던 노먼을 낳았지만 3일 후에 사망했고, 그 뒤로 계속된 불화 끝에 1920년에 이혼했다. 해리스는 채플린이 다른 소녀들과 바람을 피우는 것을 견딜 수 없었으며 그가 '섹스 중독(sexual addict)'이었다고 주장했다.

 

 

밀드레드 해리스

 

두번째 부인은 영화키드에서 천사 역을 맡았던 아역 스타 리타 그레이(Lita Grey). 그녀와 찰리는 그녀 나이 13살에 만나 역시 1924년 결혼 당시 16세였고 채플린은 35세였다. 1925년과 1926년에 각각 시드니와 찰스 두 아들을 낳았지만, 1927년에 이혼했다. 이혼 소송 결과 채플린은 리타에게 60만 달러, 아들들인 시드니와 찰스에게 각각 10만 달러씩 총 80만 달러의 위자료를 지불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리타 그레이는 1992년 인터뷰에서 "찰리는 아침에 어린 소녀가 자기 옆에서 깨어나 있는 것을 보고 싶어했다"고 폭로했다.

 

 

 

채플린과 리타 그레이

 

채플린의 세번째 부인은 유일하게 20대였으며 이혼 경력이 있는 여성이었다. 폴렛 고다드(Paulette Goddard)는 영화 모던 타임스에서 만나 1936년 비밀리에 결혼했을 때 채플린은 47, 고다드는 26세였다. 비교적 순탄한 결혼생활을 유지했으나, 1942년 이혼했다.

 

 

폴레트 고다드

 

채플린의 마지막 부인 우나 오닐(Oona O'Neill, 채플린과의 나이 차이 36)은 배우로서의 경력보다는 노벨상 수상 극작가인 유진 오닐(Eugene O'Neill)의 딸로 더 유명하다. 채플린은 영화 캐스팅을 위해 찾아온 우나에게 첫눈에 반했고 그녀가 18, 채플린이 54세였던 1943년 결혼했다.

미국을 대표하는 극작가였던 유진 오닐은 외동딸이 '아버지보다 한 살 어린(유진 오닐 1888년생, 채플린 1889년생) 여자 관계 복잡한 남자'의 네 번째 아내가 되는 것을 결사 반대했고, 두 사람이 결혼하자 죽을 때까지 딸과 의절했다.

 

두 사람은 아들 셋과 딸 다섯을 낳으며 행복한 결혼 생활을 누렸다. 아버지뻘인 남편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우나는 1977년 채플린이 사망하자 슬픔에 잠겨 술에 의지해 살아가다 1991년 췌장암으로 사망했다.

 

 

우나 오닐

 

아내들과의 로맨스이외에도 채플린 인생에는 무수한 10대 소녀들이 있었다. 채플린의 맏딸인 제랄딘 채플린(Geraldine Chaplin)은 아버지의 로리타 컴플렉스를 아래와 같이 회고했다.

"아버지는 소녀들을 사랑했다. 어리면 어릴수록 더 그러했다. 그는 소녀들에게서 티없고 순수한 젊음과 아름다움을 보았다. 아버지는 로맨티스트였다."

 

 

채플린의 맏딸인 제랄딘 채플린(Geraldine Chaplin)

 

 

찰리 채플린의 잘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

https://www.youtube.com/watch?v=yr6oR10N5Qk&t=29s

 

https://www.youtube.com/watch?v=9N5t6rmUCO8&t=3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