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2월/2월 15일

히틀러, 국민차(Volkswagen) 제조계획 발표

산풀내음 2016. 12. 17. 08:18

19362 15,

히틀러, 국민차(Volkswagen) 제조계획 발표

 

히틀러의 두 가지 꿈은세계정복국민차(Volkswagen)’ 보급이었지만, 그는 생전에 후자만 달성했다. 1936 2 15, 그는 1차대전 패전 후 도로 건설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국채를 발행하며, ‘폴크스바겐제조계획을 발표, “전국민에게 차 한대씩 나눠 주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즉 히틀러는 독일을 경제공황으로부터 벗어나 번영으로 나아가 세계에서 가장 강한 게르만 제국을 만들겠다는 정치이념의 실현 수단으로 자동차 산업의 발전을 꾀했다. 히틀러는 자동차 전용도로인 아우토반을 건설하고 모든 독일인들이 저렴한 가격에 자동차를 구입할 수 있도록 '국민차'를 만들고자 했다.

 

정권을 장악한 히틀러는 부자들의 전유물인 자동차의 대중화 시대를 선언하고 ‘KdF-Wagen’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그리고 독일 최고의 엔진니어로 명성을 누렸던 페르디난트 포르쉐(Ferdinand Porsche, 1875-1951) 박사를 담당 책임자로 선정했다.

포르쉐 박사는 히틀러의 프로젝트에 동감을 하면서도즐거움을 통한 힘-자동차란 뜻의 ‘KdF-Wagen’대신 국민차라는 의미의폭스바겐(Volkswagen)’으로 대체할 것을 요구하고 마침내 1938년 폭스바겐이 설립되게 된다.

 

페르디난트 포르쉐(Ferdinand Porsche)

 

포르쉐 박사는 히틀러가 요구한 어른 두 명과 세 명의 아이들을 태우고 시속 100km 이상으로 달릴 수 있는 자동차 개발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폭스바겐의 엠블럼은 비틀의 엔지니어였던 프란츠 라임스피스(Franz Reimspiess) W자 위에 V자가 조합해 공모한 것이 선정되면서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22 Jun 1934: Ferdinand Porsche agrees to embark on Hitler's Volkswagen project, hijacked from Jewish engineer Josef Ganz. 

 

포르쉐 박사가 개발한 독일 국민들을 위한 첫 자동차는 그 유명한 비틀(Beetle)이다. 비틀은 히틀러가 생존해 있던 1938 10월에 완성되지만 본격적인 생산을 위한 공장건설 당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해 중단되었다. 다만 대전 중에는 독일 육군의 군용차량으로 개량되어 생산되었다.

 

1938 4 28일 히틀러 49세 생일 선물로 증정된 폭스바겐

Three of the original 1938 model Volkswagen "People's Cars" on display at a ceremony in Germany in which Hitler laid the cornerstone of a new factory

 

전쟁이 끝난 1945년부터 민간용으로 본격적인 생산이 되었다. 그리고 이후 25년 동안 포르셰 박사의 디자인과 엔진 방식이 그대로 유지되며 총 2100만대가 판매됐다. 이는 단일 모델로는 세계 최다 판매 기록이다. 비틀의 시대는 새로운 타입의 승용차가 속속 개발되기 시작한 1974년부터 막을 내리게 된다.

 

비틀이라는 이름이 처음 사용된 것은 1968년 미국에서 광고를 만들 때 일종의 애칭으로 딱정벌레라는 의미의 비틀이라고 부르게 되면서부터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공식적인 명칭으로는 사용되지 않다가 1998년에 뉴 비틀을 발표하면서 이전의 것이 공식적으로 비틀로 불리게 되었다.

 

나찌의 폭스바겐 갖기 저축장려 캠페인 포스트

1939년 광고

New Beetle 광고

1954 7 16일 촬영된 VW 조립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