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년 2월 15일,
히틀러, 국민차(Volkswagen) 제조계획 발표
히틀러의 두 가지 꿈은 ‘세계정복’ 과 ‘국민차(Volkswagen)’ 보급이었지만, 그는 생전에 후자만 달성했다. 1936년 2월 15일, 그는 1차대전 패전 후 도로 건설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국채를 발행하며, ‘폴크스바겐’ 제조계획을 발표, “전국민에게 차 한대씩 나눠 주겠다” 는 공약을 내걸었다.
즉 히틀러는 독일을 경제공황으로부터 벗어나 번영으로 나아가 세계에서 가장 강한 게르만 제국을 만들겠다는 정치이념의 실현 수단으로 자동차 산업의 발전을 꾀했다. 히틀러는 자동차 전용도로인 아우토반을 건설하고 모든 독일인들이 저렴한 가격에 자동차를 구입할 수 있도록 '국민차'를 만들고자 했다.
정권을 장악한 히틀러는 부자들의 전유물인 자동차의 대중화 시대를 선언하고 ‘KdF-Wagen’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그리고 독일 최고의 엔진니어로 명성을 누렸던 페르디난트 포르쉐(Ferdinand Porsche, 1875-1951) 박사를 담당 책임자로 선정했다.
포르쉐 박사는 히틀러의 프로젝트에 동감을 하면서도 ‘즐거움을 통한 힘-자동차’란 뜻의 ‘KdF-Wagen’대신 국민차라는 의미의 ‘폭스바겐(Volkswagen)’으로 대체할 것을 요구하고 마침내 1938년 폭스바겐이 설립되게 된다.
페르디난트 포르쉐(Ferdinand Porsche)
포르쉐 박사는 히틀러가 요구한 어른 두 명과 세 명의 아이들을 태우고 시속 100km 이상으로 달릴 수 있는 자동차 개발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폭스바겐의 엠블럼은 비틀의 엔지니어였던 프란츠 라임스피스(Franz Reimspiess)가 W자 위에 V자가 조합해 공모한 것이 선정되면서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22 Jun 1934: Ferdinand Porsche agrees to embark on Hitler's Volkswagen project, hijacked from Jewish engineer Josef Ganz.
포르쉐 박사가 개발한 독일 국민들을 위한 첫 자동차는 그 유명한 비틀(Beetle)이다. 비틀은 히틀러가 생존해 있던 1938년 10월에 완성되지만 본격적인 생산을 위한 공장건설 당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해 중단되었다. 다만 대전 중에는 독일 육군의 군용차량으로 개량되어 생산되었다.
1938년 4월 28일 히틀러 49세 생일 선물로 증정된 폭스바겐
Three of the original 1938 model Volkswagen "People's Cars" on display at a ceremony in Germany in which Hitler laid the cornerstone of a new factory
전쟁이 끝난 1945년부터 민간용으로 본격적인 생산이 되었다. 그리고 이후 25년 동안 포르셰 박사의 디자인과 엔진 방식이 그대로 유지되며 총 2100만대가 판매됐다. 이는 단일 모델로는 세계 최다 판매 기록이다. 비틀의 시대는 새로운 타입의 승용차가 속속 개발되기 시작한 1974년부터 막을 내리게 된다.
비틀이라는 이름이 처음 사용된 것은 1968년 미국에서 광고를 만들 때 일종의 애칭으로 딱정벌레라는 의미의 비틀이라고 부르게 되면서부터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공식적인 명칭으로는 사용되지 않다가 1998년에 ‘뉴 비틀’을 발표하면서 이전의 것이 공식적으로 비틀로 불리게 되었다.
나찌의 폭스바겐 갖기 저축장려 캠페인 포스트
1939년 광고
New Beetle 광고
1954년 7월 16일
촬영된 VW 조립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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