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2월/2월 15일

소련, 아프가니스탄 철수 완료

산풀내음 2016. 12. 17. 08:31

19892 15,

소련, 아프가니스탄 철수 완료

 

1973년 쿠데타로 왕정을 붕괴시키고 공화국을 수립한 아프가니스탄은 쿠데타의 연속으로 정권이 계속해서 교체되는 가운데, 친소좌익이 부상하고 있었다. 1978 4월 누르 모하메드 타라키가 쿠데타를 일으켜 친소정권을 수립했다. 타라키 정권은 국내정국을 안정시키지 못하고 반대세력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1979 8월 수상 하피줄라 아민이 일으킨 쿠데타로 살해됐다. 아민은 `아프가니스탄의 티토`를 자처하며 소련의 내정간섭을 비난하고 소련의 지원을 거절했다. 그러나 아민이 취약한 국내 지지기반과 불안한 경제상태로 흔들리자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에 직접 개입하기로 결정했다.

 

1979 12 27일 소련군은 공육 양면으로 5개 사단을 동원,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여 아민 정부군 제압하고 아민 정권의 체코슬로바키아 주재 대사였던 바브락 카르말로 하여금 친 소련 정부를 수립함으로써 아프가니스탄을 소련의 위성국으로 만들어 버렸다.

 

국제적으로 미국을 중심으로 서방 세계의 대소 곡물 수출 금지 및 고도 기술 수출 정지, 아프간 인접국 파키스탄에 대한 군사적, 경제적 원조재개 등 대소 보복 정치가 이어졌으며, 유엔에서는 각종 대소, 대 아프간 정책이 계속되어 채택되면서 냉전이래 미-소 최악의 상태로 이어졌다.

 

아프가니스탄 내부적으로는 반정부 투쟁을 주도하고 있던 이슬람 저항 세력 6개파는 비록 통합되지 못하고 각자 독립적으로 활동하여 부족한 점은 있었으나 소련의 침공으로 인하여 국민들의 공감과 내심적 동조를 확보함으로써 소련군과 괴뢰 정권을 향한 항전을 계속해 나갔다.

 

소련군의 대대적인 침공 이후 아프간의 수도 카불에서는 시위 형태로 국민적 항전이 거세지고, 이슬람 저항 세력 6개파는 1980 1월 아프가니스탄 해장 이슬람 연맹을 결성하고 이슬람 형제국의 지원을 받으며 아프간 전국에서 소련군, 친소정부군에 대한 무장 항전을 이어갔다.

 

소비에트는 침공 당시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 원리주의를 과소 평가하여 무자헤딘의 저항이 계속되자 난처한 입장되었고, 또한 서방권 국가들의 보복 조치와 국제적으로 비난을 당했으며 아프가니스탄은 양쪽의 공방전으로 인해 초토화 되어 버렸다.

 

1985년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소비에트 공산당 서기장으로 취임함으로써 대서방 외교를 추진, 아프간 주둔 소련군의 부분적 철군을 언급하는 등 대서방 협상을 제의하였다. 1988 2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유엔의 중재로 아프간-파키스탄 간접평화회담이 개최되었고, 당시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이 회담에서 양측이 합의에 이르면 소련 군대를 철수시킬 것을 약속하여 4월 아프가니스탄 평화협정이 조인되었다. 그해 5월부터 소련군은 아프간에서의 철수를 시작하여 1989 2 15일 소비에트 연방 군대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완전히 철수함에 따라 이 전쟁은 끝나게 되었다.

 

장갑차를 타고 이동중인 소련군

아프간 전쟁당시 소비에트 군과 친소정부와 싸운 아프가니스탄 해방 이슬람 연맹 병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