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3월/3월 2일

콩코드기 첫 시험비행에 성공

산풀내음 2016. 12. 28. 21:46

19693 2,

콩코드기 첫 시험비행에 성공

 

영국과 프랑스가 공동 개발한 콩코드기 시험비행이 1969 3 2일 처음 실시돼 성공했다. 프랑스 남부 툴루즈에 있는 아에로스파시알사 활주로를 이륙한 콩코드 001기는 29분간 프랑스 상공을 날았다.

 

First flight of Concorde - Concorde 001 2nd March 1969. BAC Picture

 

그러나 그보다 몇 달 앞선 1968 12월에 러시아의 초음속 여객기투폴레프(Tupolev) TU-144’ 140명의 승객을 태우고 음속보다 2배 빠른 마하2의 속도를 돌파하자 콩코드 연구진의 마음이 급해졌다. 그래서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한 끝에 1969 10 1일 시험비행 45번째 만에 초음속비행에 성공했고 이어서 1970 11 4일 시험비행 102번째 만에 마하2(시속 2,155km)를 기록했다.

 

Tupolev Tu-144, 구 소련의 Tu-144 항공기는 콩코드보다 3개월 먼저인 196812월 31 첫 시험비행에 성공했고 1975년 우편과 화물 운송 목적으로 운항하기도 했지만 실제 여객기 상용비행은 콩코드 여객기(1976)보다 늦은 197711월 1에 시작했다.

 

1903년 미국의 라이트 형제는 동력에 의해 하늘을 나는비행기라는 기계를 최초로 발명하였다. 그리고 11년이 지난 1914년 러시아는 최초로 여객기를 개발해 16명의 승객을 태우고 상업적인 운항을 시작했다.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군사적 목적으로 비행기의 기술은 급속도로 발전하였다.

 

세계대전 후 미국은 최초로 초음속 전투기를 제작하였고 세계 여객기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등 미국의 비행기 산업은 급속도로 성장하였다. 이에 영국항공기법인 BAC와 프랑스 쉬드아비아시옹(Sud-Aviation)사는 1962 11 29일 양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 초음속 여객기를 개발하기로 결정했다. 역사적으로 다툼이 그치지 않았던 영국과 프랑스지만 미국의 독주를 막고 유럽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손을 잡은 것이다.

 

이듬해 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은 비행기의 이름으로조화, 협력, 화합이라는 의미를 지닌 단어콩코르드(Concorde)’를 제안했고, 영국의 의견을 반영해 결국 끝의 e가 빠진 영어 단어콩코드(Concord)’로 확정됐다가 나중에 다시 e가 붙었다그리고 1966년 최초의 시험용 모델콩코드 001’이 탄생했고 1969 3 2 29분 동안의 시험비행에 성공했다.

 

 

1976 1 21일 상업운행을 개시함으로써 콩코드기는 민간 항공여행의 초음속 시대를 열었다. 25년간 가장 빠르고 안전한 여객기로 평가 받아온 콩코드기는 2000 7 25일 파리 북부지역에 추락, 승객과 승무원 109명을 비롯해 현장의 주민 4명까지 113명의 목숨을 앗아가자 콩코드기의 안정성에 논란이 일어나 운항을 1년이나 중단했고, 2001 9.11테러 이후로 항공 승객이 급감하자 결국 2003 5 30일 뉴욕-파리간 비행을 마지막으로 그 막을 내렸다.

 

콩코드 항공기 최악의 항공사고 20007월 25, 파리 샤를드골공항을 이륙하던 콩코드 항공기 랜딩기어에 다른 항공기에서 떨어진 금속조각이 박히면서 폭발해 탑승자 109명 전원과 지상에 있던 희생자 포함해 113명이 사망한 사건이다.

Air France Concorde crashed 25 July 2000, killing 113 people

 

콩코드기는 기술적인 면으로는 성공을 거두었을지 모르지만 상업적인 면에서는 실패하였다. 1970년대에 있었던 석유 파동은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었다콩코드기는 연료를 시간당 2 5600리터(보통 항공기의 승객 1인당 연료 소비량의 세 배)나 먹어 치우기 때문이다. 또한 항속 거리가 단지 6900킬로미터 정도로 제한되어 있고 탑승할 수 있는 승객의 수가 100명 정도로 적다는 것 역시 콩코드기에 부담이 되었다. 따라서 항공사 입장에서 볼 때 콩코드기는 수지 타산이 맞지 않았다. 그 밖에도 소음과 비싼 항공요금 문제는 보급에 큰 장애가 되었다. 항공권 가격이 수천 달러나 되었기에 이를 감당할 수 있는 고객층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운항 초기 영국항공의 기내식 메뉴 : 1969년산 돈페니뇽 샴페인, 캐비어, 랍스터 카나페, 필레스테이크, 로크포로 치즈 드레싱 샐러드, 디저트로 크림 딸기... 그리고 기내식은 아니지만 서비스로 하바나 시가(담배)가 제공되기도 했다.


최초 콩코드 좌석 수는 모두 100개였다. (에어프랑스는 나중에 안전 문제 때문에 8석을 제거해 92석으로 운용했다) - 전반부 40, 후반부 60

콩코드는 유명인들이 특히 선호했다. 배우인 조앤 콜린스(Joan Collins)는 하도 많이 콩코드를 이용해서 나중에는 콩코드 홍보대사로 불리기도 했다. 앨튼 존,  재거, 엘리자베스 테일러, 숀 코너리 등의 콩코드 사랑도 유별났다. 한편 미국 가수이자 프로듀서였던 다이아나 로스(Diana Ross)는 콩코드 비행기 탑승 전 자신을 보안검색하던 담당자를 폭행해 체포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