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3월/3월 10일

그레이엄 벨, 세계 최초로 전화실험 성공

산풀내음 2017. 1. 7. 19:20

1876 3 10,

그레이엄 벨, 세계 최초로 전화실험 성공

 

동영상으로 시청하시고자 하시면, 아래의 링크를 눌러주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KaW_H9M0gvU&t=77s

 

1876 2 14일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Alexander Graham Bell, 1847~1922)과 엘리샤 그레이(Elisha Gray, 1835~1901)는 두 시간 차이로 전화 발명 특허를 신청했다. 결과적으로 미국 특허 사무국은 먼저 신청한 벨에게 전화 발명 특허를 주었다. 당연히 그레이는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레이엄 벨()과 엘리샤 그레이()

 

그리고 벨이 마침내 1876 3 10일 세계최초로 전화실험에 성공했다. 전화선을 타고 처음 흐른 말은 "웟슨군, 이리로 와주게. 자네가 필요하네`라는 절규에 가까운 목소리였다. 전화통화의 마지막 실험을 위해 실험장치 앞에 앉았던 벨이 전원으로 사용하던 배터리용 황산그릇을 잘못 건드려 황산이 그의 옷에 쏟아지는 바람에 그는 엉겁결에 실험하려던 통화의 내용을 잊고 첫마디를 이렇게 다급하게 외쳤던 것이다. 웟슨군은 그의 실험조수로 이날 실험통화를 위해 2층 실험실에 대기 중에 있던 상태였다.

 

 

 

 

이후 벨은 진동판의 크기와 종류, 자석의 형태 등을 바꿔가며 실험해 1877년 영구자석을 사용한 전화를 제작하는데 성공했다. 이는 현재의 수화기에 가까운 모델이다. 같은 해 5월에는 5개 은행이 가입한 세계 최초의 교환국(交換局)이 설립됐다.

 

1847년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태어나 1870년 미국으로 이민 온 벨은 농아자 교사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농아의 의사소통을 위한 기기개발에 관심을 쏟았다. 26세에 보스턴대학 발성생리학과 교수가 된 그는 농아자에게 `소리를 보여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얇은 막을 이용, 소리를 전달할 수 있는 기기개발에만 전념해 마침내 이날 전화통화에 성공했다.

 

1922 82일 그가 사망했을 때 미국의 전화시스템은 1분간 침묵을 지켰다. `전화의 아버지` 그레이엄 벨의 서거를 추모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전화발명가라는 벨의 타이틀은 126년 만에 박탈당했다.

이전까지는 벨이 전화 발명자로 알려졌으나, 이탈리아의 발명가 안토니오 무치(Antonio Meucci, 1808~1889)가 최초의 전화 발명가였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진 것이다. 무치는 자석식 전화기를 발명한 뒤 특허를 내기 위해 웨스턴유니언전신회사(Western Union Telegraph Company)와 의논하는 동안 설계도와 전화기 모델을 잃어버렸다고 한다. 이후 벨이 무치가 발명한 것과 비슷한 전화기로 특허를 취득했다는 것이다. 당시 무치는 소송을 제기했으나 패소했다.

 

하지만 역사는 결국 제자리를 찾아주었다. 2002 6월 미국 의회는 공식적으로 안토니오 무치를 최초의 전화 발명자로 인정했다.

 

 

 

 

Antonio Meucci and his invention (first phone)

 

엘리샤 그레이와 벨의 전화 발명이 얼마나 비슷한지 보여주는 자료. 흰색 박스 안은 그레이가 1876 2 14일 미국 특허청에 제출한 비밀 서류로 발명 특허권 보호 신청서 3쪽에 실린 도안 중 일부. 바닥의 노트는 그레이엄 벨의 실험 노트 중 1876 3 9일자의 기록으로 미국 특허청에서 돌아온 바로 다음 날 세계 최초로 전화 통화에 성공했다고 기록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