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3월/3월 10일

제1회 노동절 행사 거행

산풀내음 2017. 1. 7. 19:34

1959 3 10,

1회 노동절 행사 거행

 

1959 3 10일 제1회 노동절 행사가 거행됐다. 대한노총이 발족되면서 근로자의 노고를 범국민적으로 위로, 격려하기 위한 목적에서였다.

 

 

우리나라는 일제 식민지 시절인 1923조선노동연맹회의 주도 하에 5 1일을 노동절로 해방되기 전까지 기념해 왔다. 독립 직후에는 2 세계 대전이 끝난 시점인 1945년 결성된 전평 1946년 결성된 대한노총 1946년 이후 각각 노동절 행사를 치르게 되었다.

 

1959년 노동조합연합회 결성일인 3 10일을 노동절로 하고 이날 행사를 처음 거행했다. 노동절 행사와 관련해 1957년 이승만은 메이데이는 공산 괴뢰도당이 선전의 도구로 이용하고 있으니 반공하는 우리 노동자들이 경축할 수 있는 참된 명절을 제정하라고 한국노총에 지시했고 이를 한국노총이 수용한 것이다.



 

1954 5 1대한민국 노동절 기념대회에서 대회사를 낭독하고 있다.

 

그 뒤 박정희 정권은 명칭을 근로자의 날로 바꾸었다. 1963년에 제정· 공포된 `근로자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에 의거, 3 10일이 노동절 아닌 `근로자의 날`로 공식 지정됐고, 1964년부터 3 10일 근로자의 날은 법정 유급 휴일이 됐다. 그리고 1994 5 1일 노동절이 공식 부활돼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메이 데이`로 알려진 5 1 `세계 노동일`은 미국의 노동자들이 투쟁으로 자신들의 권리를 쟁취하는 데 성공한 날을 기념하여 정해진 날이다.

 

1884 5 1일 미국의 방직노동자가 8시간 노동제를 요구하며 쟁의를 시작하고, 각 노조가 이에 호응하여 총파업을 단행했다. 2년의 시간이 지난 1886 5 1일 시카고 노동자들이 결성한 '노동조합연합회'를 중심으로 ‘8시간 노동, 8시간 휴식, 8시간 교육을 요구하는 총파업이 전국적으로 전개되었다. 이로부터 세계노동절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시카고에서는 다른 어느 지역보다도 많은 8만여 명의 파업노동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집회가 열렸다. 이날 파업과 집회는 살인적인 장시간 노동에 대항하여 8시간 노동을 보장받기 위한 정당한 요구였지만 경찰과 군대의 발포로 유혈 사태로 번졌다. 53일 매코믹 농기계 회사 근처에서 경찰의 발포가 있었고 노동자 4명이 목숨을 잃었다. 54일 저녁 시카고 시내의 헤이마켓 광장에서는 항의집회가 예고되었다. 이 날 2천여 명의 노동자들이 광장에 모였지만 밤이 되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군중은 해산하기 시작했다. 마지막엔 3백여 명이 남아 수레 위에 선 어거스트 스파이스(August Spies)의 연설을 듣고 있을 때 경찰이 수레를 향해 행진하기 시작했다.

 

어거스트 스파이스(August Spies)

 

그때 폭탄이 터졌고 경찰의 총구 또한 즉시 불을 뿜었다. 최소한 4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고 확인할 수 없는 수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폭탄이 폭발하면서 7명의 경찰 또한 목숨을 잃었다. 시위를 주도했던 8명의 노동자가 체포되었다. 재판은 졸속으로 진행되었다. 증거도 충분하지 않은 가운데 파슨스(Albert Parsons) 7명에게 사형이 선고되었고 다른 한 명에게는 15년 형이 선고되었다. 항의 시위와 탄원이 빗발치면서 이 중 두 명이 무기형으로 감형되었지만 5명 중 하나였던 링(Louis Lingg)이 감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다음날인 1887 1111일 사형을 언도 받은 파슨스와 스파이스, 피셔(Adolf Fischer) 그리고 엥겔(George Engel)은 교수대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