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3월/3월 12일

세르비아 총리 조란 진지치 피살

산풀내음 2017. 1. 9. 21:10

2003 3 12,

세르비아 총리 조란 진지치 피살

 

옛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철권 통치를 종식시키는 데 기여하고 세르비아에 서구 민주주의 체제를 정착시키려 노력했던 조란 진지치(Zoran Djindjić, 1952-2003) 세르비아총리가 12일 오후 12:25 정부청사 도착 후 하차하던 중 청사 앞 건물에서 피고 요바노비치가 발사한 총탄에 쓰러졌다.

 

 

관련자 12명이 체포되었고 2007 5 23일 유죄판결을 받았다. 특히 총리암살을 총 지휘한 밀로라드 울레멕(Milorad Ulemek, 특별경찰부대(JSO) 지휘관 출신) 및 직접 총리에 총격을 가한 즈베즈단 요바노비치(Zvezdan Jovanovic, JSO 부지휘관 출신)는 각각 40년 형을 선고 받았고, 나타 메사로비치(Nata Mesarovic) 주심판사는 판결문을 통해, 범인들은 밀로세비치가 설립한 비밀경찰 전직요원과 발칸지역 마약밀매단으로 구성된 조직범죄단 제문파(Zemun Clan) 일원으로, 이들의 암살 동기는 진지치 당시 총리가 민주개혁의 일환으로 본격적인 조직범죄 척결작업을 시작함에 따라 그 동안 제문파가 자행해온 살해, 납치, 마약밀매 등이 처벌될 것을 우려하는 한편 밀로세비치의 2000년 실각 및 2001년 헤이그 ICTY로의 이송 등으로 인해 와해되어 가는 급진 민족주의 세력을 회복하고 ICTY 기소전범들의 추가적인 ICTY 인도를 막고자 함이었다고 발표했다.

 

진지치 총리가 더 나은 미래를 가져다 줄 것으로 믿었던 세르비아인들은 그의 갑작스런 죽음에 큰 충격을 받았으며 일부는 개혁정책을 펴다 젊은 나이에 암살당한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과 흡사한 운명의 그를 `세르비아의 케네디'라고 부르며 애도했다.

 


장례식에 참석한 국민들

 

세르비아민주야당(DOS) 지도자인 진지치는 지난 2000 10월 독재자 슬로보단 밀로세비치(Milosevic) 유고 대통령을 축출하고 민주적인 정부를 수립하는 데 기여했다. 그는 유고 민주화 혁명 당시 18개 정당연합체를 이끌면서 세르비아 민주당(DSS)의 보이슬라브 코슈투니차를 대통령에 당선시켰다. 진지치는 그 해 12월 총선에서 승리해 2001 1 5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유고에서 비공산 정권을 이끄는 연방 산하 세르비아공화국 총리에 취임했다.

 

Serbian opposition leader Zoran Djindjic waves to supporters at an opposition rally against then Serbian President Slobodan Milosevic in the Serbian industrial town of Nis, some 250 kilometers south of Belgrade, in this Jan. 8, 1997 file photo. Djindjic - a key leader of the revolt that toppled former President Slobodan Milosevic in October 2000 - was assassinated Wednesday, March 12, 2003.

 

진지치는 이 과정에서 친()서방적인 급진개혁과 부패척결을 강력히 추진, 일반 국민들로부터는세르비아의 존 F 케네디라는 찬사를 들었으나, 민족주의자들과 밀로셰비치 시절의 기득권층으로부터는 강력한 반발을 샀다. 그리고 급진적인 개혁 성향의 진지치 총리와 점진적인 개혁을 주장하는 코슈투니차 대통령은 옛 유고 전범 처리 문제부터 이견을 보이기 시작해 민영화 등의 경제정책에 이르기까지 사사건건 대립하는 양상을 보였다. 특히 진지치 총리는 전 독재자 밀로세비치의 사법처리와 전범재판 회부를 둘러싸고 코스튜니차 대통령과 갈등을 빚었으며 코슈투니차 대통령의 DSS는 진지치 정부의 개혁정책에 반기를 들면서 연정에서 탈퇴하기도 했다.

 

 

1952 81일 보스니아 세르비아계 공화국인 스르프스카의 보산스키 사마츠에서 육군 장교의 아들로 태어난 진지치는 베오그라드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으며 1970년대에 크로아티아 및 슬로베니아 출신 반체제 학생들과 반공운동을 주도하면서 공산당의 권력 독점 포기를 요구했다. 이 결과 수 개월간 투옥생활을 한 후 독일로 망명 길에 올라 1979년 독일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귀국 후 대학강단에서 철학을 강의하다가 1989년 민주당(DS) 창당 멤버가 됐다. 1990년 공산정권 몰락 후 처음 실시된 복수정당이 참여하는 민주적 총선에서 그는 세르비아 의회에 진출했고 2년 후 민주당 당수로 선출됐다. 진지치는 90년대 중반 밀로셰비치의 권력기반이 약해졌을 때 2차 대전 후 최초의 비공산계 베오그라드 시장에 당선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