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1년 3월 12일,
신문만화 ‘개구쟁이 데니스’ 첫 발표
‘블론디’와 함께 미국의 대표적인 신문만화로 명성을 떨친 ‘개구쟁이 데니스(Dennis the Menace)’가 1951년 3월 12일 첫 선을 보였다. 처음부터 16개 신문에 동시에 실리는 순조로운 출발이었다가, 그 해 말에는 100여 개의 신문이 그의 만화를 실을 정도가 됐다. 작가 케첨(Hank Ketcham, 1920-2001)이 2001년 81세로 숨지기까지 19개국 언어로 번역돼 48개국 1000여 개 신문에 실렸다. 만화의 성공에 힘입어 미 CBS방송이 제작한 TV연속극은 1959년부터 5년간 방송됐고, 1993년에는 영화로도 제작돼 인기를 이어갔다. 만화책도 5000만부 이상이나 팔려나갔다.
미국의 데니스
작가 케첨(Hank Ketcham, 1920-2001)
금발에 주근깨투성이의 얼굴을 한 만화 주인공 데니스는 작가의 네 살배기 진짜 아들 데니스가 모델. 어느 날 그의 부인 앨리스가 “당신 아들은 참 개구쟁이예요”라고 푸념한 것이 만화의 모티브가 됐다. 하지만 만화가 탄생하는 데 기여한 세 사람 중 아내는 1959년 약물 과다복용으로 숨지고 아들 데니스와는 생전에 왕래를 끊다시피 할 정도로 사이가 멀어졌다. “사람들이 30초 동안 개구쟁이 데니스를 즐겁게 보고 그 신문으로 생선을 싸도 만족”이라는 게 케첨의 만화철학이었다.
그런데 행커 케첨의 발표 5일 뒤인 1951년 3월 17일 영국의 스코틀랜드 댄디에서 데이비드 로우(David Law, 1908-1971)도 같은 제목의 ‘Dennis The Menace’를 발표했다. 두 데니스 사이에는 1) 이름이 같다는 점, 2) 줄무늬 옷을 입었다는 것, 3) 장난꾸러기 라는 점 등에서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자연스럽게 표절의혹이 제기되었다. 행크 케첨은 평소 줄무늬 옷을 즐겨 입는 아들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고 밝혔고, 데이비드 로우는 당시 데니스를 연재했던 잡지 '비노'의 인기 캐릭터였던 '미니'가 입던 줄무늬 옷을 데니스에게 입혀 친숙함을 주려 했다고 한다. 둘은 서로의 데니스가 표절이 아닌 우연의 일치로 생겨난 것으로 생각하고 서로의 시장에는 진출하지 않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영국의 데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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