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 3월 12일,
간디 2차 비폭력 저항운동(소금행진, Salt March) 시작
1930년 3월12일, 인도 서부 아메다바드시. 당시 61세 이던 간디(Mohandas Karamchand Gandhi, 1869-1948)가 390㎞ 떨어진 단디 해안을 향한 여정에 나섰다. 목적은 영국의 소금세 신설에 대한 저항. 인도인의 소금 생산을 금지하고 영국산 소금 40㎏당 1루피씩 세금을 부과하자 직접 소금을 만들기 위해 전통 염전을 향해 떠났다. 식민지 수탈에 온 몸으로 맞선 것이다.
People gather on the banks of the Sabarmati River to hear Mahatma Gandhi speak before starting out on the Salt March in 1930
간디가 해안가에 도착한 것은 25일 만인 4월 6일. 출발 당시 78명이던 일행은 수만 명으로 불어났다. 25일 동안 간디는 바닷가를 향해 걸어 가면서 거쳐가는 마을에서 연설을 하고 시민들과 대화를 나누며 야외에서 잠을 자고 최소한의 음식만을 취하면서 행진했다. 인도인들은 영국경찰들이 내리치는 곤봉에 맞아 쓰러져 가면서도 해안가에 도달했다.
간디가 영국의 소금법을 위반하며 소금 한 주먹을 집어 들자 영국군 지휘관 하나가 발포 명령을 내렸지만 어느 누구도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 비폭력 저항운동의 백미로 꼽히는 소금행진의 정점이다.
인도인들이 조성한 소금 밭은 영국 군경의 군화 발에 뭉개졌다. 61세의 간디와 그의 아들이 감옥에 갇혔어도 인도인들의 정신은 짓밟혀지지 않았다. 이를 계기로 인도의 해안에서는 소금을 다시 생산했으며 소금법 위반으로 6만 명의 인도인이 투옥되었다.
영국에 대한 복종 대신 갈수록 저항운동의 불길이 번지자 영국은 1931년 ‘자가 수요를 위한 소금은 생산을 허용한다’는 명분 아래 소금세 신설을 백지화했다. 인도의 저항운동과 국산품 애용 캠페인(스와데시)도 뿌리를 내렸다. 인도 독립의 기반이 놓여진 셈이다.
간디는 모든 인도인들부터 존경 받았을까? 그렇지 않다. 배우고 돈 있는 사람들은 현실론을 앞세워 영국에 대한 협조를 주장하며 간디를 비난했다. 과격저항세력은 ‘비폭력=굴종’이라며 그를 해치려 들었다. 간디 암살도 이들 손으로 저질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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