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4월/4월 4일

쿠바인 1만 여명 아바나 주재 페루대사관에 몰려 들어 망명 요청

산풀내음 2017. 2. 11. 23:21

19804 4,

쿠바인 1만 여명 아바나 주재 페루대사관에 몰려 들어 망명 요청

 

195812 30일 정부군을 완전히 무찌런 카스트로(Fidel Castro, 1926- )는 쿠바혁명을 달성하여 미국이 20년 동안이나 지지한 쿠바의 독재자 바티스타(Fulgencio Batista, 1901-1973)를 제거했다. 혁명을 완수한 초기에는 카스트로와 미국과의 관계는 그런대로 괜찮았다. 그러나 카스트로는 예전의 독재자들과 달리 미국에 도적적이자 점차 관계는 악화되었다.

 

 

혁명 당시 쿠바의 경제적 상황은 미국의 다국적 기업과 손을 잡은 일부 자본가들이 모든 경제자원을 독점하여 빈부격차가 매우 심했다. 대부분의 쿠바 인민들은 매우 초라한 집에서 살고 있었다. 혁명정부는 모든 국민이 자기 집을 소유하도록 도시 거주민들은 부동산을 하나만 가지도록 제한하고 그 이상은 정부가 몰수하여 집 없는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월세로 집값을 상환하도록 했다. 외국재단과 대지주가 소유한 토지는 국유화하고 누구도 일정량 이상 토지를 소유하지 못하도록 했으며 모든 기업을 국유화 했다.

 

 

1961 1월 케네디가 대통령이 되면서 미국은 쿠바와 외교관계를 끊고 쿠바 여행을 금지시켰으며 쿠바 설탕 수입을 아예 중단했다. 취임 3개월 후 쿠바를 침공하면서 카스트로 체제의 전복을 꾀한다. 쿠바 침공은 미국과 소련 사이의 미사일 위기를 낳았고 냉전은 극에 달했다.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바라던 쿠바 혁명정부는 이 침공으로 미국에 대한 모든 기대를 접고 사회주의로 선회했다.

 

In 1961, a U.S.-organized invasion of 1,400 Cuban exiles is defeated by Castro

 

카스트로의 쿠바혁명이 성공하자 기득권을 잡고 있었던 수많은 상류층들은 대대적으로 쿠바를 탈출했다. 그 수는 1962년까지 20만 정도를 헤아렸다. 1963년 케네디는 탈출하는 쿠바인에게 특혜를 주는 쿠바조종법을 만들었다. 사회주의를 표방한 쿠바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없는 많은 수의 사람들이 탈출을 시도하자 카스트로는 1965 9월에 마탄사스의 카마리오카(Camarioca) 항을 개방해 마음 놓고 떠날 수 있도록 했다. 11월까지 약 15만에 이르는 사람이 떠났고, 미국이 항공편을 제공하자 12월부터 1971 10월까지 26만여 명이 쿠바를 떠났다.

 

1980 44일 쿠바 정부가 아바나에 있는 페루 대사관의 경비 병력을 철수시키자 만 명이 넘는 난민들이 대사관으로 밀려들었다. 그러자 카스트로는 갑자기 떠날 자는 모두 떠나라고 선언하면서 쿠바를 탈출하고 싶은 쿠바 인민들을 또 떠나게 했다. 그 시기가 1980 415일부터 10월 말까지였다. 이를 Mariel Boatlift라고 하며 이때 떠난 쿠바인의 수는 전체 인구의 1%를 상회하는 12 5천 명 정도였다.

 


페루대사관에 몰려들어 망명을 요청하는 쿠바인들

 

난민이 급증하고 5 6일까지 18천명의 쿠바인이 플로리다로 몰려들자 카터대통령이 이날 플로리다주에 비상사태를 선언했다. 플로리다는 도착한 난민과 미국 전역에서 마중 나온 가족으로 북새통을 이뤘다. 미국정부는 이제까지 난민을 불법입국으로 간주해 벌금을 부과하며 가입국을 허용했지만 전면수용으로 방침을 변경했다. 쿠바가 출국을 묵인한 것은 악화된 식량사정을 해결하고 반체제 인사를 추방하고 싶어했기 때문이었다.

 

혁명이 성공한 후 미국으로 망명한 쿠바의 기득권 세력들의 수는 1959년에서 1965년 사이에 50만 명에 달했다. 1980년에 떠난 12 5천명 등 카스트로 정권 50년 동안 총 100만여 명의 쿠바인이 해외로 망명했다. 여기에는 전과자를 포함한 하층민도 많았다. 그러나 미국은 쿠바의 고급 인력에게는 좋은 조건으로 일자리를 제공했으나 하층민은 달가워하지 않았다. 카스트로는 미국이 계속 망명을 부추길 경우 무제한으로 쿠바인을 미국으로 보내겠다고 하자 클린턴은 어쩔 수 없이 이민협정을 체결하여 불법이민을 금지시켰다.

 


1980년 쿠바인들이 새우잡이 배를 타고 쿠바를 탈출해 미국 플로리다 키웨스트에 도착해 환호하고 있다.


In May 1980, Fort McCoy was designated as a Resettlement Center for Mariel refugees. Approximately 15,000 Cubans were housed through October.

쿠바 난민을 위해 마이아미에 설치된 임시 수용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