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4월/4월 5일

로젠버그 부부 사형 선고

산풀내음 2017. 2. 13. 20:42

19514 5,

로젠버그 부부 사형 선고

 

1949 8월에 성공한 소련의 원자폭탄 실험은 미국을 당혹감에 빠뜨렸다. 당분간 원폭을 독점하려 한 미국의 계획이 차질을 빚었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미국의 원폭개발계획에 관계했던 영국의 핵물리학자 클라우스 훅스가 소련에 원폭기밀을 제공했다는 혐의로 1950 2월 영국에서 체포됐다. 나치를 피해 영국으로 망명한 훅스는 8년간 소련의 스파이 노릇을 해왔다고 자백했다. 공범자 색출에 나선 미국도 첩보요원 해리 골드(Harry Gold, 1910-1972)와 미국 로스알라모스 연구소에서 일하는 육군 중사 그린 글래스(David Greenglass, 1922-2014)를 용의자로 체포했다.

 

Harry Gold(L) was a laboratory chemist and spy for a number of Soviet spy rings operating in the United States during the Manhattan Project. And David Greenglass(R) worked at the Los Alamos laboratory in New Mexico from August 1944 until February 1946. He provided testimony that helped convict his sister and brother-in-law Ethel and Julius Rosenberg, who were executed for their spying activity. Greenglass served nine and half years in prison.

 

 

그린글래스가 자신의 매형인 줄리어스 로젠버그에게 핵기밀을 제공했다고 실토함으로써 1949 7월에 줄리어스 로젠버그(Julius Rosenberg, 1918-1953)가 그리고 8월에 그의 부인 에셀 로젠버그(Ethel Rosenberg, 1915-1953)가 연행됐다. 핵기밀이 이들 부부로부터 해리 골드를 거쳐 뉴욕주재 소련 부영사에게 전달됐다는 혐의였다. 로젠버그는 한때 공산주의자로 활동한 전력으로 미군 통신대에서 실직한 전기기사였다.

 

Julius and Ethel Rosenberg, separated by heavy wire screen as they leave U.S. Court House after being found guilty by jury.

 

재판은 1951 3월에 시작됐지만, 냉전 고조와 매카시즘 선풍의 영향을 받은 탓인지 이상하리만큼 빠르게 진행됐다. 1951 45, 연방재판소는 범행을 계속 부인하는 로젠버그 부부에게 그린글래스의 증언만을 거의 유일한 근거로 삼아 사형선고를 내렸다. FBI 국장 에드거 후버는 이 사건을세기의 범죄라고 했고, 담당 판사는이들의 배반으로 인류의 역사가 바뀌었다고 주장했지만 세계여론은 들끓었다.

 

교황을 비롯 아인슈타인, 러셀, 사르트르 등 세계의 지성들도 항의서한을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에 보내며 구명탄원운동을 벌였지만 아이젠하워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1953 6 19일 처형 당일, 줄리어스와 에셀 두 사람에게 최후의 면회가 허용됐고 두 사람은 이승에서의 마지막 2시간을 함께 보냈다. 그리고 오후 86, 줄리어스가 먼저 뉴욕주 싱싱형무소 전기의자 위에 앉았고 에셀이 뒤를 따랐다.

이 사건은 드레퓌스 사건 이후 서방세계를 가장 들끓게 했던 사건이었지만 아직까지도 그 실체가 밝혀지지 않아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Ethel and Julius Rosenberg embrace before they were executed by electric chair at the Sing Sing Correctional Facility NYC on the 19th of June 1953 after being convicted of conspiracy to commit

 

 

그리고 2015 8월 줄리어스 로젠버그와 에셀 로젠버그의 두 아들 마이클 미로폴(Michael Meeropol)과 로버트 미로폴(Robert Meeropol)이 뉴욕타임즈에 어머니의 무죄를 주장하는 글을 보냈다. The New York Times 2015 8 10일자에 실린 “The Meeropol Brothers: Exonerate Our Mother Ether Roserberg” 기사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리의 아버지 줄리어스 로젠버그와 에셀 로젠버그는 1953 6 19일 사형에 처해졌습니다. 죄목은 미국의 숙적인 소련에게 미국을 파괴할 수 있는 원자폭탄 관련 정보를 넘겼다는 것이었고, 매카시즘 시대에 가장 화제가 되었던 사건으로 남았습니다.

 

지난 2008년부터 우리 형제는 부모님의 사건을 다시 법정으로 가지고 갔습니다. 아버지가 간첩행위를 했지만 원자폭탄 관련 정보를 넘기지는 않았고, 양친 모두 사형을 선고받을 만한 죄를 짓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린 상태였습니다. 지난달, 이제는 고인이 된 우리의 외삼촌 데이비드 그린글래스의 대배심 증언록이 공개되면서 우리의 시도는 새로운 전기를 맞았습니다. 어머니가 기소된 가장 큰 이유는 아버지를 배신하기를 거부했기 때문이었음을 공개된 문서들이 잘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1951년 재판 당시, 어머니에게 불리한 증거는 대부분 남동생인 데이비드 그린글래스와 그의 부인인 루스의 증언에서 나왔습니다. 당시 그들은 에셀이 남편을 도와 데이비드에게 간첩 행위에 참여할 것을 요구했고, 루스에게도 남편을 설득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했다고 증언했습니다. 이후 1945 9월의 한 모임에서 데이비드가 줄리어스에게 원자폭탄의 단면도를 건냈고, 거기에 적혀있던 데이비드의 자필 메모를 에셀이 타자기로 옮겨 적었다고도 증언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공개된 문서를 보면, 데이비드는 1950 8월 대배심 앞에서 문제의 모임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에셀과는 이 문제로 이야기를 한 적이 전혀 없다고 증언했죠. 같은 시기, 루스 역시 대배심 증언에서 문제의 모임을 언급하지 않았고, 특히 줄리어스에게 특정 자료를 전한 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바로 다음날 데이비드는 1945년 가을, 뉴욕의 어딘가에서 줄리어스에게 단면도 스케치를 넘겼다고 말을 바꾸었고, 법정에서 이를 반복하면서 구체적인 장소까지 말합니다. 루스의 증언과 정면으로 대치되는 부분이죠.

 

수십 년 후, 데이비드는 뉴욕타임즈 기자에게 자신이 아내를 보호하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털어놓습니다. 우리는 데이비드와 루스가 우리 부모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기 위해 9월의 모임을 만들어냈다고 믿고 있습니다. 미국과 소련의 기록들을 면밀히 분석한 결과, 소련이 루스에게 코드명까지 주면서 스파이로 인정했고, 그녀가 KGB에 자료를 넘길 계획을 갖고 있었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어머니가 혐의를 받기 시작한 것은 아버지가 구속된 후였습니다. 당시 법무부 고위 인사도 FBI에셀 로젠버그를 기소할만한 증거가 충분하지는 않지만, 남편을 잡아넣기 위해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재판 시작 1달 전, 검찰도 의회 앞에서에셀 로젠버그의 혐의점이 뚜렷하지는 않지만, 본보기로 무거운 형을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어머니가 아버지의 활동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던 것은 사실로 보입니다. 소련 정부의 전문에 등장하는리버럴(줄리어스의 코드명)과 그의 아내와 같은 부분이 어머니도 간첩 행위에 개입했다는 증거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지금 와서 돌아가신 부모님이 서로 어느 정도까지 비밀을 털어놓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기록을 통해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첫째, 어머니를 기소하기 위해서는 그린글래스 부부의 거짓말이 필요했다는 점, 둘째, KGB가 에셀 로젠버그에게 코드명도 부여하지 않았고 스파이로 여기지 않았다는 점, 셋째, 검찰이 아버지의 자백을 이끌어내기 위해 어머니를 볼모로 잡았다는 점입니다.

 

우리의 어머니 에셀 로젠버그는 간첩이 아닙니다. 당시 우리 정부는 아버지의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어머니를 이용하려 했고, 그 시도가 무산되자 거짓 증언을 발판삼아 어머니에게 없는 죄를 뒤집어 씌웠습니다. 국가적 위기 때는 국가의 안보를 위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식의 사고가 9/11 테러 이후 오늘날의 미국에도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이 불편한 진실입니다. 정부는 이제라도 에셀 로젠버그의 무죄를 인정하고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