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에 오늘, 4월/4월 9일

최악의 사법살인 사코와 반제티 사형선고

산풀내음 2017. 2. 18. 22:53

19274 9,

최악의 사법살인 사코와 반제티 사형선고

 

1920 4, 미국 보스턴 근교의 한 제화회사에서 경리직원과 경비가 살해되고 16000달러가 털리는 살인강도사건이 발생하자 제화공 니콜라 사코와 생선장수 바르톨로메오 반제티가 용의자로 체포된다. 경찰은 명확한 물적 증거도 없이 두 사람이 이탈리아에서 온 이민자고 1차 대전 참전을 거부했던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라는 사실에 주목, 두 사람을 범인으로 몰고 갔다. 전후 불경기와 과격해진 노사분규, 이에 따른 사회불안을 과격분자와 공산주의자에게 전가하려는 당시의 사회분위기에 편승한 것이었다.

 

검사 프레더릭 G. 캐츠먼은 이들을 사건의 범인으로 기소하였다. 이들에게서 현금은 발견되지 않았으나 범행에 사용된 총기가 발견되었고 여권을 소지한 점으로 보아 범행 후 해외로 도주계획을 세웠다고 주장했다.

 

재판이 벌어지는 내내 자신들은 그저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현장 근처를 우연히 지나갔을 뿐이라며 결백을 주장했다. 또한 검찰 측이 증거로 제시한 사코의 모자는 정작 사코에게 맞지 않는 크기였으며, 범행에 사용되었다는 총기 역시 조작됐다는 의혹이 일었다. 증인들의 진술 역시 모호하거나 번복되기 일쑤였다. 정상적인 재판이었다면 사코와 반제티는 당연히 무죄 석방되었겠지만, 판사 웹스터 세이어는 노골적으로 배심원들에게 사건과 아무 관련없는 애국주의와 이념을 호소하였고 유도신문을 자행해 일부러 피고인에게 불리한 재판을 진행했다.

 

A prison guard sits with (left to right) Bartolomeo Vanzetti and Nicola Sacco, who were convicted of murdering a paymaster.

Bartolomeo Vanzetti and Nicola Sacco, with his wife Rosina Sacco, waiting in the prisoners

 

이런 와중에 1925 11월 셀레스티노 마데이로스라는 죄수가 사코와 반제티 사건의 진짜 범인이 로드 아일랜드에 본부를 둔 조 모렐리 갱단이라고 밝혔다. 사건 당시 두목인 조 모렐리와 또 다른 범인이 살인강도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이에 변호인 프레드 H. 무어는 마데이로스의 증언을 증거로 제출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판은 점점 불리하게 돌아갔다.

 

1921 7 14, 배심원은 사코와 반제티에게 1급 살인 유죄를 선고했다. 이후 본격적으로 미국은 물론 전세계가 불공정한 재판에 분노를 표시했다. 파리에서는 미국 대사의 집이 파괴되고 구명운동을 벌이던 데모대에 폭탄이 터져 20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시인 아나톨 프랑스와 아인슈타인 등 세계 지성인들도 나서최악의 사법살인이라며 항의하자 메사추세츠 주지사는 사형집행을 연기하고 특별위원회를 설치했다. 하지만 위원회가 내린 결론도 마찬가지였다.

 


 

1927 4 9, 두 사람에게 사형이 선고됐다. 그 해 8 23일 전기의자에 앉아 죽음을 맞은 두 사람의 무죄가 공식 확인된 것은 1977년 메사추세츠 주지사가 이들의 무고를 인정하면서였다. 둘은 그림과 노래로도 명예가 회복됐다. 화가 벤 샨이 그린 ‘사코와 반제티의 수난’(1931∼1932)과 미국의 현실참여가수 훌리 니어가 부른 ‘누가 이들을 기억하랴?’가 그것이다

 

1927 828일 사코와 반제티 장례행렬에 20만명이 운집해 두 사람의 죽음을 애도했다. ‘보스턴 글로브’는 ‘현대에 와서 가장 대단한 장례식 가운데 하나’라고 보도했다

 

사코는 자신의 아들에게 마지막 편지를 남겼다.

"울지 말거라, 단테야! 네 어머니가 일곱 해 동안 고생하면서 많은 눈물을 흘렸지만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단다. 그러니 아들아, 울지 말고 씩씩하게 어머니를 위로해 주고 소중한 이들을 사랑하고 곁에서 보살펴 드려라. 네 어머니와 함께 조용한 시골길을 산책하며 여기저기 피어 있는 들꽃을 꺾고 나무 그늘에서 쉬렴. 항상 기억해라. 행복한 유희 속에서 젊음을 보내기보다 박해당하고 희생하는 이들을 도와라. 네 용감한 마음과 선량함이 그들에게 기쁨을 주리라 믿는다. 인생에서 너는 더 많은 사랑을 발견할 것이고, 사랑 받게 될 거야."

 

반제티 '뉴욕 월드'와의 인터뷰에서 마지막 말을 남겼다.

"이런 일이 없었다면 나는 길거리에서 무시당하면서 내 삶을 살다 마쳤을 것이다. 내세울 것 없고 이름 없는 실패자로 죽었을 것이다. 평생 살아오는 동안 우리는 우리가 지금 죽어 가면서 하고 있는 일을 하리라고 기대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관용을 위해, 정의를 위해, 사람이 사람을 이해하는 날을 위해 싸우고 있다. 마지막 순간은 우리 것이다. 그 고통은 우리의 승리이다!"